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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Mar 27. 2022

세계적인 석학들은 무엇에 동기부여되는가

- 유안 A. 애슐리 저, <게놈 오디세이>에 대한 서평





세계적인 석학의 가치관, 태도, 생각, 일상을 책 한 권으로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은 새삼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번에 읽은 <게놈 오디세이>에서도 여지없이 그런 사실을 느낄 수 있었고, 책을 통해 관찰한 저자의 태도에 공감되는 부분, 배우는 부분이 많았기에 매우 유익한 독서였다고 자평한다.


<게놈 오디세이>의 저자인 유안 A. 애슐리 박사는 스탠퍼드 대학교 의학 및 유전학 교수이며, 미진단 희귀질환 네트워크의 공동의장이었고, 유전체 분석과 심근병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유안 A. 애슐리 박사는 이 책의 서문에서 그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이유에 대해(그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우리 환자와 그 가족들이다. 구성원은 다양하지만 모두 유전병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중략) 그들은 내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이유다. 그들은 자신을 세상에 나게 한 유전체로부터 평생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의 유전체를 더 잘 이해하고 더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할 수 없다. 설사 이번 치료가 실패하더라도, 그들을 꽉 안아주면서 방법을 찾을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안심시키는 게 우리의 일이다.
- 게놈 오디세이, 16~17면


유안 A. 애슐리 박사는 이 책의 주인공을 환자와 그 가족들이라 칭하며, 그들이 바로 자신이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이유라고 한다. 한 마디로, 유안 A. 애슐리 박사는 유전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일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유명 대학 교수고, 이력이 화려하고, 학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이런 외적 지표로 애슐리 박사가 어떤 사람이지 설명하기 쉽겠지만,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일평생을 바친 사람"이라는 표현이 그에게 가장 영광스럽게 여겨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또 한 명의 내가 좋아하는 대가의 책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일단 눈가리개를 하고서,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우리가 학문의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결코 자기 내면에서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문에 문외한인 모든 사람들로부터는 조롱을 당하는 저 기이한 도취, 저 열정, ”네가 태어나기까지는 수천 년이 경과할 수밖에 없었으며“, 네가 그 판독에 성공할지를 ”또 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것이니 다른 어떤 일을 하십시오.
- 막스 베버, 전성우 역, <직업으로서의 학문>, 34면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뮌헨의 대학생들에게 한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베버는 학문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하는 대학생들에게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내 운명이 달려 있다"는 소명의식이 없다면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것이니 다른 일을 하라고 한다.


이런 지독한 소명의식. 요즘 시대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태도인 만큼, 더욱 빛나게 느껴진다. 꼭 어느 분야의 장인, 마스터가 아니더라도,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런 사람들은 "지구가 멸망하기 하루 전에 무엇을 할 거냐"라는 질문에 "평상시처럼 내가 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답할 것만 같다. 


셜록 홈스는 (수동적 행위인) '보기'가 (능동적 행위인) '관찰하기'와 엄연히 다르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 게놈 오디세이, 158면


나는 감히 저들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말하지 못한다. 특히 어린 자식이 신경계 증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처지의 가족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이름도 모르는 병을 앓는 심정을 외딴 섬에 버려진 기분에 빗댄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미진단 희귀병이라는 섬에 다리를 놓아 이들을 회의감과 외로움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이다. 의사의 입을 통해 정확한 진단명을 들을 때 환자는 그렇게 희망을 얻는다.
- 게놈 오디세이, 170면


저자가 '셜록 홈스'를 언급하며 수동적 '보기'와 능동적 '관찰하기'를 언급한 것처럼, 소명의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 자신의 고객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면밀히 관찰하고 한 발 앞서서 살핀다. 최소한으로 해야할 일을 하고 마는 것이 아닌, 최선을 다해 고객과 파트너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까지 먼저 생각하고 행동한다. 


전문성은 단순히 지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위와 같은 태도에서도 비롯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와 같은 유안 A. 애슐리 박사 환자들의 리뷰를 보며, 나는 내 의뢰인들에게 어떠한 변호사인지 상념에 잠기는 밤이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2017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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