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칠이는 적은 양의 메모리만 저장되는 자신의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내 아이큐 77. 과연 이걸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운 좋게 여기까지 왔는데, 내 머리가 따라 줄 수 있을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견뎌야지. 우리 집을 생각해야지. 갈수록 집이 어려워지는데.'
그런데 그의 머리속에서 긴 여행 끝에 중고차 엔진에서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찍찍' 하는 '쥐새끼'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러고나서 한 달은 견뎠다. 월급명세서를 받았다.
‘으악! 쥐꼬리다!’
'어떡하지. 민법 공부도 힘들고, 거기에다 쥐꼬리 월급, 아빠한테는 미안하지만, 월급이 적다고 하고, 회사 그만두자. 민법도 정말 쥐나고, '쥐쥐' 의 연속이잖아.'
그는 그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의 원망의 눈빛을 받은 채, 결국 졸업과 함께 취업한 첫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다. 그래도 속은 시원했다.
“민법아, 안녕.”
그 후 공무원 준비나 대학원 진학 등은 싫어 다시 곧바로 취업한 곳. 그곳은 L음료회사이다. 그래도 예전 직장 보다는 월급은 좀 더 줬지만, 마치 슈퍼마켓 관리하듯 물건 값을 계산하면서 매장관리를 하는 고칠이 모습이 스스로 지쳐 보여서 여기도 그만두고 말았다.
남들은 모를 것이다. 물건 값 계산이 그에겐 얼마나 곤욕스러웠는지.
이 회사 지점장은 고칠이가 식품을 진열하면서 식품목록 종이를 한 손으로 꾸기고 있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지었다네.
세 번째로 취업한 곳은 D광고기획 회사다. 엄청 멋진 곳이 아닐까. 혹시 멋진 연예인도 보는 거 아닐까. 어흠.
한 달 동안 광고를 배우면서 일했다. 광고문구 작성하는 것이 가장 주된 일이었다. 남들은 재밌다, 고 하는데, 고칠이는 머리 빠개지는 일이라며, 또 다시 언제 그만둘까 그러고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일한 월급마저 통장으로 안 들어오고 있는 거다. 이건 또 뭐야. 일했으면 돈을 줘야 되는 것 아닌가.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출근하려는 찬란한 아침 일찍 말이다. 말 그대로 햇빛만은 찬란했던 것이다.
회사의 한 여직원은 다급한 어조를 감추지 못했다.
"회사가 자금 사정이 어려워서 부도 처리될 것 같다.”는 간단한 말 한 마디를 남겼다.
광고회사에 취직했다고 했을 때, 우리 집 식구 다 기뻐했는데, 결국 아빠처럼 부도를 맞은 회사에 취업한 것이다!
“누구나 삶은 쉽지 않은데, 고칠씨도 여러 힘든 일을 겪으셨군요. 동양에서는 이상사회를 정의내릴 때, 공자는 대동(同)사회, 노자는 소국과민(小國寡民)사회로 제시했어요.”
“이상사회가 있긴 하나요?”
“학자들은 책상위에서나마 이상사회를 꿈꿨어요. 대동 사회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는 공동체를 말하고, 소국과민사회는 '작은 나라에 적은 국민(백성)' 이라는 뜻으로 문명의 발달이 없고 무위와 무욕의 이상사회를 뜻합니다. 서양에서는 플라톤이 지혜로운 사람, 즉 현명한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했고, 루소는 직접 민주주의에 의해 스스로 다스리는 사회를 이상사회로 제시했어요. 또한 그는 빈부의 격차가 생길 경우 빈부의 차이가 없는 소농으로 이뤄진 민주적 이상사회를 주장했어요.”
“저에겐 돈이 제일 힘들어요.”
“돈이 모든 가치를 함축해요. 마르크스도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 평등한 사회를 이상사회로 제시했어요. 바쿠닌은 국가 권력기관의 강제수단을 철폐하고, 정부나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를 말했어요.”
“돈 때문에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하나보네요.”
“돈 때문에 전쟁도 나고, 서로 싸우고 그러잖아요. 한마디로 이들 학자나 정치인들은 이상사회 조건을 '공평한 경제제도'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보장' '다양한 삶의 양식을 인정하는 관용적이고 다원적인 사회'를 말한 거겠죠.”
“이상사회라는 게 참 어렵네요.”
“고칠씨도 아마 이상사회 조건으로 자신의 입장을 인정하고 포용해 주는 다원적인 사회와, 부도 없는 경제적인 공평한 사회를 원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