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77 아이큐77 제5화 01 '교사직이 운명?'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by 이윤영

제5화


01


고칠이는 부도난 광고회사를 어쩔 수 없이 그만두고, 한두 달을 집에서 이리저리 빈둥대며 지냈다. 아마도 이때 몸무게가 어림잡아 5-10키로는 늘었을 듯싶다. 몸이 왠지 무겁고 그랬으니깐 말이다.

아빠는 그의 모습을 보고 항상 안타까워 한숨만 연이어 몰아쉬셨다. 엄마는 해도 안 되는 고칠이의 모습이 불쌍해 보이셨는지 종종 신선한 사과나 배를 깎아서 위로해 주시곤 하셨다.

고칠이는 너무 놀아서 엄마 보기에도 미안했다.

“엄마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그는 잔뜩 움츠러들었고, 그의 얼굴은 근심으로 뒤덮여 진한 어두운 갈색 빛으로 보였다.

가끔 “앞이 안 보여." 라는 말만을 고칠이 자신도 모르게 내뱉고 있었다.

그는 혼란스러워 했다. 이렇게 하다가는 폐인이 될 듯싶었다. 길거리에 널려 있는 지역정보지의 구인광고를 뒤적거렸다. 아빠도 고칠이의 앞길이 걱정되셨는지 이리저리 알아보시고 있는 듯했다.

아빠는 며칠이 지나 약간은 미소를 머금고 집에 성큼 들어오셔서 먼저 고칠이를 목청껏 부르셨다.

"친구 딸이 있는데, 그 딸이 D학습지 회사에서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쳐서 3년 만에 큰 평수의 아파트 한 채를 샀데. 고칠이 너도 그 회사에 들어가라.“

아빠는 고칠이에게 대놓고 명령하시는 거다. 그때만큼은 아빠의 눈이 고칠이의 눈 속으로 매섭게 들어오셨고, 아빠의 손은 어느새 그의 어깨를 토닥이셨다.

그는 아빠의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맞받아쳤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라고요?“


고칠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반색했다. 그가 지금까지 지내온 모습을 보면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수리 외국어 등을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은 고칠이가 교사가 된다니, 오줌 누며 지나가는 개도 웃을 정도라는 거다.

하지만 아빠는 고칠이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


“고칠이 너도 배우면서 가르치라.”


아빠는 짤막한 무게 실린 말씀만 남기시고, 그의 손은 고칠이 어깨 위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아침에 다시 얘기하자는 식이셨다.

아빠는 정말 냉혈인간 같았다. 고칠이는 아파트 사는 것도 좋지만, 하루도 못 견디고 그만둘 회사로 보였다.

그런데 고칠이 동생이 뭔가 알아봤는지, 이러는 거다.


아빠가 말씀하신 그 회사가 신문도 내고 있고 케이블 방송사도 있는 우리나라 재계 10위 안에 드는 회사라나 뭐라나. 또 학생들을 1, 2시간씩 가르치는 게 아니고, 관리만하면 된다나 뭐라나. 동생은 한마디로 수학의 인수분해 정도 할 줄 아는 고칠이 형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정작 고칠이는 밤새 잠 하나 못 잤다. 결론은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도 없는데, 아빠랑 동생 믿고 가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 회사에 출판 분야, 교육 분야 중에 망설이다가 결국은 직원교사로서 여러 관문을 뚫고 어렵게 취업하게 됐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인자한 교사로서 말이다.

공부도 하길 싫어하는 고칠이가 교사가 됐다고 누군가가 뒤에서 막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젠 어디로도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안도 어려워졌고, 그의 앞길도 보이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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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일은 무수한 원인에 의해 결과로 이끌어져요. 이러한 사상을 '인연' 이라고 하죠. 고칠씨도 다 아시다시피, 주변에 있는 친구나 부모님 모두 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이뤄진 사이 아닐까요.”

“근데, 갑자기 인연이라니요?”

“고칠씨는 자신이 정말 하길 싫어했던 공부와, 관련 된 일과 인연이 되는 순간인 거예요. 인연사상은 연기설이라고 부르는데, 세상만물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 내 자신 뿐 아니라 자연만물, 즉 모든 생명도 중요하다는 거겠죠. 불교에서는 이 인연사상과 관련되어 삼법인과 사성제가 있습니다.

삼법인은 세상의 모든 현상과 존재의 참 모습을 제행무상(모든 것은 항상 변한다), 제법무아(고정된 실체가 없다), 일체개고(인생 그 자체가 고통과 번뇌이다)라고 규정했어요. 사성제는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에서 나타나는 원인과 결과를 말하는데, 고제(집착으로 인해 생노병사라는 괴로움이 생기는 것), 집제(집착하는 것), 멸제(집착과 탐욕을 없애는 것), 도제(열반에 이르는 수행방법)가 있어요. 이 가운데 고제와 집제는 현실세계의 결과와 원인이고, 멸제와 도제는 이상 세계의 결과와 원인이라고 말해요.”


정말 고칠이는 가르치는 일과 인연이 된 것처럼 학창시절보다 더욱 더 열심히 공부했다. 거의 주말은 집근처 시립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수리 뿐 아니라 언어 외국어 모두 소화해내야 학생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고칠이로서는 주변의 여건상 어쩔 수 없이 교사로서 삶을 걸어야 했기에, 이 정도 고생은 겪을 수밖에 없는 거로 판단돼서다.


고칠이가 교사가 될 거라는 건 아마 하늘에 계신 하느님도 몰랐겠지.


“하하, 다 알고 있었노라.”

“당신은 누구시죠?”

“스스로 존재하는, 하. 느. 님.”

“장난 좀 그만치시고요. 동서양에서 바라보는 생각을 말해주세요.”


“동양의 생각은 유교 불교 도교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서양의 생각은 기독교를 보면 알 수 있고요. 동양의 생각은 서양의 기독교와는 이 부분이 다를 것 같아요. 서양의 기독교에서 구원은 여러 입장이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절대자의 몫으로 봐요. 반면에 동양의 생각은 기독교의 구원개념으로 군자 보살 진인 이라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이처럼 동양은 인본주의적이고, 생명존중, 자연과 조화, 선악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다. 개인의 수양을 강조하게 되고 일상생활에 지혜를 준다. 공자의 덕치사상, 맹자의 왕도정치와 개혁사상, 순자의 예치사상 등은 현실에 이러한 사상들을 적용했다.


“교사직이 저에겐 벗어날 수 없는 인연이었다고요? 그렇게 몰아가려고 자연과의 조화를 들먹거리며 동양 서양 종교까지 끌어들여 별 얘길 다하시네요. 아이큐가 바닥인데…… 말도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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