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해야 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딱딱한 사무일도 함께 병행해야 했다. 처음에는 학생들만 가르치면 되겠지 하고 밤새워 공부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셈이다. 갈수록 일이 태산같이 많아질 것만 같았다.
급기야 이런 일도 있었다. 교사 일을 하겠다고 와서 한두 달 만에 그만둔 이들도 많았다. 이렇게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이 일의 뒷수습은 모두가 다 직원교사의 몫이 됐다. 고칠이의 몫이 된 것이다. 그로선 늙은 거북이처럼 천천히라도 오래오래 일해야 했다. 정말 곤욕스러웠다.
거기에다가 학부모님과 상담을 잘 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학부모님만 있는 게 아니라서 때론 답이 안 나올 때도 있었다.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학부모들도 많았고.
심지어는 이런 학부모님도 있었다. 한 어머니가 "선생님 교육비 받으세요." 라고 하면서, 아파트 3층에서 만 원짜리 3, 4장을 꼬깃꼬깃 접어 150키로 강속구를 자랑하듯 1층 주차장으로 던지는 게 아닌가. 이때 한순간 지옥과 천국을 넘나든 교사는 “어머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뿐.
고칠이는 회사 상관한테 안 좋은 소리 듣고, 학부모들한테도 이런 걸 겪게 되면 당장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학생들이 쉽다고 질문한 걸 대답을 못하면,
교사로서의 자격이 스스로도 의문시되어 이럴 바에야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생각이 든다는 거다.
고칠이 자신이 꼭 아이큐가 낮아서 교사 일을 회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닐 게다. 회사의 구조적인 문제도 한몫하고 있었다.
“고칠씨, 아리스토텔리스(Aristoteles, 기원전 384-기원전 322)가 중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하네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상주의를 비판하면서, 현실주의를 주장한 철학자로 유명하죠. 선을 알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논리(주지주의)를 비판했어요. 선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선을 실천하는 의지가 있어야 선을 실천할 수 있다(주의주의)는 거예요. 유교윤리에서도 추상적이고 이론 중심의 훈고학(경전암기), 성리학(우주근본원리탐구)을 벗어나 참 지식은 반드시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양명학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것을 다루는 고증학이 있었어요. 중용은 과도함과 말 그대로 부족함의 중간일 겁니다. '만용과 비겁의 중간인 용기라는 말과 오만과 비굴의 중간인 긍지' 라는 말은 중용의 미덕으로 많이 들어본 말일 겁니다.”
“중용이라는 말이 이렇게 복잡한 내용이 있었군요? 근데, 왜 여기서 중용이라는 말을 하시나요?”
“고칠씨에게는 그때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며,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용의 자세가 필요했을 듯싶네요. 현실적인 물음인 거죠. 그러나 고칠씨 뿐이겠어요. 회사의 상관, 학부모님에게도 중용의 미덕이 필요할 거예요.”
“맞아요. 당시는 너무 제 자신이 봉건 시대의 ‘소작농’ 이라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좋게 말하면, 교육 노동자 정도…….”
“봉건시대의 소작농이면……노예라는 생각?죄송해요. 쉽게 표현하려다가요.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본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통해 중용의 미덕을 함께 실천해보자고요.”
그래도 고칠이는 꾹 참았다. 그리고 견뎠다. 예전에 겪었던 회사들은 부도가 날 정도로 재정적으로 열악했고, 일로도 못 견디면, 회사를 그만뒀어야 했는데, 이 회사는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재정적으로 튼튼하고, 일로 못 견디면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그 곳에서 새롭게 열심히 일하면 됐었다.그에겐 나름 좋은 일터였던 거다.
고칠이의 징크스인지, 아니면 낮은 아이큐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회사를 완전히 그만둘 때까지 무려 안 가본 지점이 없을 정도로 강한 역마살이 낀 듯, 계속 옮겨 다녔다. 일은 한 지점에 오래있으면 기억해야할 일도 많고, 복잡해져서 그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스스로 다른 지점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한 적도 많았다.
“고칠씨는 키에르케고르가 그리 흔치 않은 실존적인 고민에 빠져, 홀로 언덕위에 올라가 하늘에 대고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표현하곤 했던 게 학창시절에는 이해가 안 됐겠죠? 그런데 당시 키에르케고르의 모습이 완전 지금의 고칠씨 꼴과 흡사하네요.”
“많은 이들이 이래요. 이는 징크스가 아니고,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 지에 대한 능력이, 곧 아이큐라는 거구요. 선, 후천적인 원인으로 인해 지능이 일반인보다 낮은 경우를 정신지체인들이라고 하잖아요?”
“고칠씨도 많이 아시네요. 우리 장애인복지법의 기준에 따르면 지능지수 70이하를 그 기준으로 하고 있고, 그로 인해 주의력이나 판단력, 사고력, 사회 적응력 등이 떨어지게 된다고 알려졌어요. 그럼, 고칠씨는 뭐인가요?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보면, 엄청 노력해야만 적응해 나갈 수 있었죠? 나는 정상인인가 아니면 정신지체인인가, 하면서요.”
“아이큐가 70 이하나 조금 넘나, 정신지체인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키에르케고르와 의사출신의 야스퍼스 등의 실존주의자들도 저처럼 머리가 나쁜 건가. 그렇지 않겠죠, 설마.”
“고칠씨는 자신 아이큐가 낮아서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하나의 징크스일 뿐인지가 고민이 됐을 겁니다. 사실 이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많은 근거자료와 경험이 필요하겠죠. 여기에는 귀납법과 연역법이라는 논리적인 방법론이 있어요. 귀납법은 경험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 사례의 공통점을 알아내어 일반적인 원리를 밝히는 겁니다. 흔히 경험론적 방법론이라고 하고, 베이컨, 홉스, 흄 등의 영향을 주었어요. 반면에 연역법은 확인되고 명백한 원리로부터 논리적 추론을 통해 개개 사물의 이치를 알아내는 방법이에요. 연역법은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론의 방법론으로 이어지고, 삼단논법이 중요하겠죠. 데카르트, 스피노자 등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귀납법 연역법? 뭔 말씀 하시는 거지. 네 때문에 고생한다. 이 망할 놈의 아이큐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