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칠이는 적응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인지 회사의 여러 지점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보니, 스스로가 아이큐가 낮아서 그러겠거니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약간은 의기소침해 있었다. 학창시절이었으면, 아마 한강다리 여러 번 갔다 올 일이지만, 이젠 체념한지 오래였다.
그는 회사로부터 "일명 학습지 '맹꽁이'를 학부모님께 팔아라." 라는 특명을 받았다. 그는 예전 같았으면 회사의 특명을 받게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와 회사퇴직에 대한 심적 압력이 밀려왔는데, 이번만은 좀 자신 있어 했다.
고칠이는 적응력이 부족해 여러 지점을 옮겨 다니면서 학부모들의 여러 다양한 특성을 겪었고, 소위 인맥도 탄탄해져서 조금만 노력해도 학부모들이 반갑게 이 책 학습지 '맹꽁이' 를 사주실 듯싶었다.
더욱이 이 학습지 '맹꽁이' 가 학생들의 공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성껏 편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니, 더욱 더 자신감이 넘쳤다. 아이큐가 낮은 그가 조금 쭉 읽어봐도 이해가 될 수 있을 정도니, 이 책 저자는 고칠이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그의 직감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완전 대박이었다. 고칠이는 회사에서 갑작스레 ‘떠오르는 스타’ 가 되었다. 인생 지금까지 살면서 이 같이 높은 순위에 오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학창시절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중상위권을 못 벗어났는데, 이 회사에 와서 '학습지 맹꽁이' 판매실적이 지역본부 10위 안에 들었던 것이다!
“고칠씨는 결국 해냈네요! 자신의 아이큐가 낮아도 여러 경험들을 한 것이 큰 능력으로 작용했나 보네요. 그리고 고칠씨는 자신이 단지 돈을 잘 벌고 성공하기 위해서만 '학습지 맹꽁이'를 마케팅한 건 아닐 거예요. '학습지 맹꽁이' 그 자체가 나름대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무조건적으로 더욱더 열심히 일하게 된 것 같아요.”
“네, 당시 제 자신이 이렇게까지 잘 해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어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니 잘 해보자는 결심은 했고요.”
“그래요. 어떤 행동을 명령하거나 다짐할 때 조건이 붙어서 하는 경우를 독일의 관념론자 칸트(I.Kant, 1724-1804)는 가언명령이라고 정의했어요. 그리고 말과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인 무조건적인 명령의 형태를 정언명령이라고 했고요. 고칠씨는 가언명령을 생각한 건 아닐 거예요. 그런데도 '학습지 맹꽁이'가 학생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 선한 입장에서 정언명령을 따른 것일 거예요. 그게 대박이라니.”
그 후 이 회사 국장이 불렀다. “고칠씨는 팀장으로 자리를 굳히게 됐고, 서울 본사에 가서 상장을 받게 됐다."며 악수를 청하셨다. 항상 못마땅하게만 고칠이를 여겨온 국장의 모습과는 완전히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고칠이는 회사에서 뿐 아니라, 집에 가서도 큰 인정을 받았다. 아빠 엄마 누나 동생 가릴 것 없이 축하해줬다. 게다가 판매 보너스가 큰 액수라서 집에 경제적인 보탬이 되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었다.
그는 그 다음날 아침에 자신감도 넘치고 기분도 좋아져 일찍 일어났다. 우울감은 말끔히 사라진 것 같았다. 엄마는 언제 일어나셨는지 벌써 아침 밥상을 차려놓고 계셨다.
엄마가 고칠이에게 “벌써 일어났구나, 좀 더 눈 좀 붙이련. 오늘 사장님께 상장을 받는 날이라며?"
고칠이는 눈시울이 젖었다.
“엄마, 늦기는 했지만, 저 장가도 가고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이 날은 그가 학창시절에 받은 개근상을 제외하곤 난생 처음으로 '우수상장' 을 받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고칠씨는 장남이라서 그런지 자신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가정의 행복도 생각하고 있네요. 가정도 하나의 사회라고 본다면, 고칠씨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전체 이익을 조화시키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러한 제 특성도 어딘가에 적용되나요?”
“음, 이를 공리주의라고 불러요. 이 생각은 몇몇 자본가의 이익은 극대화 되는 반면 노동자계급은 그렇지 못한 생활을 하게 되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나왔다고 하네요. 공리주의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이란 원리는 도덕과 입법의 원리로 제시됐어요.”
“공리주의요? 알죠. 대학 다닐 때도 교양 수업 시간에 배웠고요.”
“그런데 벤담(J. Bentham, 1748-1832)은 쾌락을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했으나, 밀은 쾌락은 양적인 차이도 있지만 질적인 차이도 있다고 주장했어요. 밀(JS Mill, 1806-1873)의 말이 좀 더 맞을 듯싶네요.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순위로 매겨 더 행복하다고 만은 못할 거니까요.
“돈 많이 벌면 기분이 무지 좋아지는데요?”
“밀의 이런 말이 생각나네요.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
“말도 안돼요. 우리 가족은 돈 때문에 고통 속에 늘 있었다고요!”
"그건, 고칠씨가 잘 못 판단 한건 아닌가요? 무슨 말이냐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행복의 최고 기준이 맞잖아요! 계속 지금까지 그렇게 돈이 중요하다 하셨잖아요! 갑자기 말을 바꾸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