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 계획대로 되고있어"
2000년대는 '짤방'이 새로운 문화로 등장했다가 일상 속으로 스며든 시기다. '짤방'이란 '짤림 방지'의 줄임말로, DC인사이드 등의 커뮤니티에서 게시글이 삭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추가하는 갤러리와 관련된 이미지를 뜻한다. 소위 '합필갤(합성필수요소 갤러리)'로 대표되는 짤방은 이곳에서 생산되고, 다양한 변형을 만들어내며 인터넷 문화 그 자체를 만들어냈다. 2000년대 초반 '개죽이'와 '싱하형'의 시대를 맞으며 본격적으로 이 인터넷 문화는 대중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아직 웹툰이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이전이었던 당시는 DC인사이드와 같은 커뮤니티들이 짤방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창구였다.
DC인사이드에서 꽃피운 인터넷 문화, 즉 밈(Meme)은 곧 당시의 엽기문화를 각색하는 창구이기도 했다. 사진과 카메라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였던 DC인사이드(놀랍게도 DC는 Digtal Camera의 줄임말이었다)는 포토샵 등의 이미지 툴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었고, 자연스럽게 합성사진과 같은 '놀이'가 주를 이루었다. 거기에 게시판 형식이 합쳐지며 자연스럽게 인터넷 유희가 글에도 접목되게 된다. 심지어 이 중에는 소위 "삼체"로 불리는 놀이가 대중에게 퍼져나가 온라인에서 이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투로 대유행했다.
이런 인터넷 문화는 2008년을 기점으로 쇠락기를 걷기 시작한다. 소위 '막장 갤러리'의 탄생과 인터넷 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이 대두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커뮤니티로서의 DC인사이드의 기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포털들은 DC인사이드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즐길 수 있었던 서비스중 하나인 '웹툰'을 연재하는 대가로 원고료를 주기 시작했고, 덕분에 짤방의 생산-소비권력은 웹툰에게로 일부 넘어오게 된다. 이때 등장한 대표적인 웹툰들이 <마음의 소리>, <이말년씨리즈>, 그리고 <골방환상곡> 등의 웹툰들이다. 이런 웹툰들은 생활툰의 요소를 빌려 무맥락적, 만화적 과장을 통한 폭력성 등을 이용해 짤방으로써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삼”체 처럼 실생활에 깊이 파고든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바로 <골방환상곡>의 ‘엄친아’와 <마음의소리>에서 나온 ‘차도남’이 그것이다. 이 당시 밈은 이미 대중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이미지로 소비되는 짤방의 권력이 일부 이양된 2008년, DC인사이드에서는 '빠삐놈'이 대유행했다. 이전에 유행했던 '팥죽송'이나 '뚫훍송'과는 소비양상이 달랐다. 이전의 두 곡이 원곡의 음원은 그대로 두고 플래시 애니메이션이나 이미지 변환 등을 통해 소비되었다면, 빠삐놈은 음원 자체를 짤방처럼 사용했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만을 남긴 채,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다수의 커뮤니티들은 힘을 잃어간다. 바로 스마트폰의 등장 때문이다. 모바일시대 초기에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가 힘을 얻으면서 다시 이미지 짤방의 시대-캡쳐가 용이한 짤방의 시대가 열린다. 바로 병맛웹툰의 전성기다. 병맛웹툰은 앞뒤 맥락을 잘라도 그 맥락을 소셜미디어에 옮겨놓는 본인이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말년의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당시에 어떤 기사의 댓글이나 정치글에도 쓸 수 있었다. 하물며 ‘와장창’이야 더 말할것도 없다.
마치 레고처럼 조립할 수 있는 특징 덕분에 병맛 웹툰은 인터넷 밈의 적극적 생산자이자 효율적 소비자로 자리매김한다. 트위터에서도, 페이스북에서도, 어디에서나 사용 가능한데다 스마트폰에서 캡쳐해서 사용하기 편했고, 남들이 잘라놓은 이미지를 다운로드 받으면 바로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장점 덕분에 이미지 기반의 ‘짤방’은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2018년, 모바일 시대가 찾아온지 8년 가까이가 지났다. 마침내 병맛웹툰의 쇠락기가 찾아왔다. 기술의 발전이 게시판 중심의 커뮤니티의 쇠락을 불러왔다면, 무선통신의 발전은 이미지 기반의 짤방-인터넷 문화의 쇠락을 가져오고 있다. 바로 유튜브의 성공 때문이다.
2018년 9월, 네이버의 조회순 정렬에서 ‘병맛’장르는 상위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수요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병맛’의 주 소비층은 이미 유튜브, 아프리카 등지로 옮겨가 있었다. 이미 맥락 없는 폭력과 슬랩스틱은 아프리카 시대부터 공존해왔으나, 그 “문화”의 향유자가 웹툰발 밈의 향유자보다 많고 대중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미 생활 깊숙히 파고든 웹툰은 이모티콘, 광고 등의 다양한 활용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웹툰은 분명 인터넷 밈의 주류였다.
그러나 이제 탈 웹툰의 시대가 열렸다.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매체가 인터넷 밈을 주도할 수 있다는걸 보여주는 예시가 등장했다. 바로 마미손(매드클라운 아님)의 <소년 점프>다. 빠삐놈의 성공이 보여준 '음성으로서의 밈'의 진화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수많은 개사버전이 유튜브에 넘쳐나고, 오리지널은 2300만 뷰를 넘겼다. 빠삐놈이 음성을 가지고 노는 수준의 CPU가 대중화 된 것을 의미했다면, 소년점프와 다른 수많은 개사버전을 통한 밈의 확산은 영상편집이 가능한 CPU가 대중화 되었음을 의미한다. 소년점프는 "이 모든 것이 마미손의 계획이다"라고 말하며 맥락없는 자신감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모르면서도 알고 있지만, 아는척을 하지 않는다. 이는 침착맨(3류 만화가 이말년과는 다른)이 이미 게임 스트리머이자 유튜버로 등장할 때 한번 보여준 모습이다. 인터넷 문화의 향유자들은 이런 흐름에 굉장히 익숙했고, 또다시 등장한 슈퍼스타에 엄청난 환호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 병맛만화가 가지고 있는 '무맥락적 코미디 요소'와 '엽기'를 가지고 단숨에 승기를 잡아버린 셈이다.
해외에선 이미 이런 사례가 있다.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강남스타일>은 적어도 국내에선 대중문화, 가요로 소비되었으나, 해외에선 인터넷 밈으로 소비됐다. <PPAP>는 그 흐름의 절정이었다. 어쩌면 무맥락적인 코미디의 권력이 이미지에서 영상으로 넘어가는 것은 예고된 흐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010년대 초 방황하던 모바일-스마트폰 유저들을 잡은 것이 “병맛 웹툰”이었다면, 이제는 “병맛 영상”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병맛”을 대표하던 작가들이 스트리밍 서비스, 유튜브 등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까지가 "병맛" 만화의 등장부터 쇠락, 그리고 새로운 스타의 탄생까지를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웹툰이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업체들은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 재산)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병맛" 콘텐츠는 지적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영화나 드라마로의 미디어믹스 등이 어렵기 때문이다. 서사구조로의 완결성을 가지고, 미디어믹스 등으로 더 넓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분야의 원천콘텐츠로서의 만화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앞으로의 만화는 더욱 탄탄한 이야기, 미디어믹스가 가능한 원천콘텐츠로서의 가치가 높은 만화들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인터넷 문화를 창출했던 웹툰은 이제 본격적으로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시험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