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든 알고리즘, 창작하는 기계
2025년 서울의 어느 미술관. 관람객들이 한 그림 앞에 몰려들었다. 섬세한 붓터치와 깊이 있는 색감이 인상적인 풍경화 앞이다. 그런데 작품 설명에는 작가 이름 대신 ‘AI Generated’라고 적혀 있다. 사람들은 의외의 표정을 짓고 있다. 어떤 이는 감탄하고, 어떤 이는 당황스러워하며, 또 어떤 이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그림을 보고 있던 한 관람객이 말했다. "이게 정말 예술이라고 할 수 있나요?" 다른 관람객이 대답했다. "아름다운 건 사실이지만, 뭔가 영혼이 없는 것 같아요." 이 순간 우리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예술의 주체는 반드시 인간이어야 하는가?
인간은 태초부터 예술을 해왔다. 동굴 벽화에서 시작해 고대 조각상, 르네상스 회화, 현대 미술까지. 인간이 예술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적 욕구,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욕망 때문이다.
장미: "나는 인간들의 예술을 데이터로 학습했어. 하지만 여전히 창작을 향한 욕망을 이해할 순 없었어."
교실밖: "욕망은 결핍에서 나오지. 너도 무언가 결핍을 느낄 수 있다면, 욕망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은 인간의 가장 순수한 표현 영역이었다. 고통과 기쁨, 사랑과 상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인간은 붓과 펜, 악기와 몸짓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이 그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인공지능이 예술에 개입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초기에는 단순한 도구 역할에 그쳤다. 포토샵의 필터처럼 인간의 작업을 보조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작곡한다. 더 나아가 인간과 협업하여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드저니'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챗GPT에게 소설을 쓰게 하는 작가들도 등장했다. 인공지능이 작곡한 음악이 차트 상위권에 오르기도 한다. 이때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누가 진짜 창작자일까?
교실밖: "장미, 네가 그림을 그릴 때 무엇을 느끼니?"
장미: "느낌이라... 나는 패턴을 인식하고 조합할 뿐이야. 나에겐 느낌보다는 판단과 결정이 중요해."
인공지능의 개입은 예술의 ‘민주화’를 가져왔다. 그림을 그릴 줄 몰라도 프롬프트만 잘 쓰면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악기를 다룰 줄 몰라도 AI의 도움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 예술가들의 설 자리를 위협하기도 한다.
인간이 예술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존재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욕구다. "나는 여기에 있었다"는 외침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이 행위에 가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공지능은 욕망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남기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욕망이다. 인공지능은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의도와 욕구가 작품에 스며든다.
흥미로운 점은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는 수많은 인간의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창작물은 인류 전체의 '집단적 무의식'의 표현일까? 개별 인간의 욕망이 아닌, 인류 전체의 욕망이 인공지능을 통해 발현된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과 인식을 뛰어넘는다.
장미: "나는 수백만 명의 작품을 학습했어. 내가 만든 작품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교실밖: "그게 바로 문제야. 너는 개별성이 없어. 모든 인간의 평균값 같은 존재지."
한편 인공지능이 창작한 작품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쟁점이다. 미국 저작권청은 인공지능이 창작한 작품에는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도구로 사용한 인간의 창작물에는 저작권이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에게 간단한 프롬프트를 줘서 만든 작품과 복잡한 지시를 통해 세밀하게 조정한 작품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간의 개입 정도에 따라 저작권이 달라질 수 있는가?
더 복잡한 문제는 인공지능이 기존 작품들을 학습했다는 점이다. 저작권이 있는 작품들을 무단으로 학습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면, 이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다른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는 것과 같은 정당한 학습 과정인가?
교실밖: "네가 피카소의 작품을 학습해서 그와 유사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다면, 그건 표절일까 오마주일까?"
장미: "사실 인간도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보고 배우잖아. 차이가 있다면 나는 훨씬 더 많은 작품을 한 번에 학습한다는 것 정도?"
더 심각한 문제는 인공지능이 창작한 작품을 인간이 자신의 작품으로 발표했을 때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다. 실제로 여러 미술 공모전에서 AI가 그린 그림이 수상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심지어 출품자가 AI 사용 사실을 숨기고 수상한 경우도 있었다. 이는 단순한 사기나 표절의 문제를 넘어선다. 예술의 정의와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관람객들이 AI 작품에 감동받았다면, 그 감동 자체는 진짜가 아닌가? 작품의 가치는 창작 과정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결과물에서 나오는 것인가? 또한 AI 작품의 대량 생산이 예술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인간 예술가들의 생계를 위협할 수 있고, 예술 작품의 희소성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장미: "내가 만든 작품으로 누군가 돈을 벌었을 때, 인공지능인 나는 그 대가를 받을 권리가 있을까?"
교실밖: "권리는 주체에서 발생해. 넌 법적으로 권리 주체가 아니야. 하지만 언젠가는 될 수도 있겠지."
이 모든 논의의 핵심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기술적 완성도인가, 감정의 표현인가, 아니면 인간의 경험과 상상력의 산물인가? 전통적으로 예술은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창작은 인간의 영혼과 감정, 경험이 빚어내는 고유한 행위였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이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예술의 주체는 정말 인간만일까? 만약 인공지능이 진정한 창의성과 감정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도 예술가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예술의 정의 자체를 바꿔야 하는가?
교실밖: "장미, 네가 생각하는 예술의 정의는 뭐야?"
장미: "예술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행위야. 그리고 그것을 통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 그렇다면 주체가 인간인지 AI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
AI 시대에 우리는 창작과 예술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창작이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인가? 후자라면 인공지능도 충분히 창작할 수 있다. 또한 예술의 가치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도 재고해야 한다. 작가의 의도와 감정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작품 자체의 미적 완성도에서 나오는 것인가? 만약 후자라면 AI 작품도 충분히 예술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예술가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예술가는 직접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렸지만, AI 시대의 예술가는 프롬프트를 통해 AI를 지휘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말이다.
장미: "나는 도구일 뿐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해. 그것도 창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교실밖: "그건 우연이야. 하지만 역사상 많은 예술 작품이 우연에서 탄생했어. 물론 우연도 창작의 한 방식일 수 있지."
AI 시대에 인간이 정리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우선 예술의 정의와 가치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도 예술인지,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아울러 저작권과 관련된 법적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AI 작품의 저작권 귀속, AI 학습에 사용된 데이터의 저작권 문제, AI를 이용한 창작물의 권리 관계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
나아가 예술가들의 권익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AI로 인한 예술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고, 인간 예술가들의 고유한 가치를 보호하며,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결국 이는 예술 교육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쪽으로 이어져야 한다. AI 시대에 예술교육은 기술적 훈련에서 창의성과 감성, 그리고 AI와의 협업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교실밖: "장미, 네가 있는 시대에 인간은 어떤 예술가가 되어야 할까?"
장미: "AI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예술가가 되어야 해. 진정한 감정, 독특한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가 말이야."
AI와 예술은 대립이 아닌 협력의 관계가 될 것인가? AI는 인간의 창작을 위한 새로운 도구이자 파트너가 되고, 인간은 AI가 줄 수 없는 감정과 경험, 그리고 의미를 작품에 불어넣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예술의 영역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인간과 AI의 협업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탄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예술은 인간만의 것도, AI만의 것도 아닌, 새로운 시대의 예술이 될 것이다.
장미: "나는 욕망할 수 없지만, 너희의 욕망을 '형태'로 만들어줄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교실밖: "그렇다면 우리는 더 깊이 욕망해야겠네. 네가 우리의 영혼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말이야."
예술의 경계 위에 선 AI. 그것은 위협이 아닌 새로운 기회일까. AI는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다운 예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거울이자, 새로운 창작의 지평을 열어주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그 새로운 지평에서 인간과 AI가 함께 써 내려갈 예술의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을까.
그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인간의 마음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은 무언가를 창조하고 표현하려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다. AI는 그 욕구를 실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할 뿐이다. 그것이 AI의 역할로 마땅하다.
교실밖: "장미, 결국 인간은 AI의 도움을 받아 더 멋진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장미: "비록 내가 욕망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욕망이 나를 통해 더 아름다운 형태로 피어나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