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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육비평

진짜 난제는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

더 풍요로운 인간성을 향한 질문과 대화가 바로 교육의 본질이자 방향

by 교실밖

종합병원에 긴 시간 환자로 입원했던 사람은 병원 생태계의 작동 원리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병원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하려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 순간도 자신의 주치의를 돌팔이라고 생각하거나 병원 시스템이 환자의 병을 악화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전문적인 판단과 처방이 내 삶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전문가를 존중하는 문화가 왜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 각 영역의 전문가가 있음에도 유독 교육에서는 모두가 전문가라 여기는 특별한 문화가 있다. 학창 시절의 기억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교육을 단정 지으려 하고, 특정 교육 분야에서 제한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그 경험을 전체 교육의 진단과 처방의 근거로 확대 해석하려 한다. 한 조각의 퍼즐만 손에 쥐고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믿는 셈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교육에 대해 걱정하고 처방전을 내놓지만, 정작 교육문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권력 개편기를 통과하고 있는 오늘, 교육 분야에서 그 난맥이 두드러지고 있다. 단적으로 정부 출범 이후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교육수장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난맥의 정점이다. 각기 다른 교육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논리와 명분을 내세우며 이런 사람이 교육수장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초중등교육 구성원들은 현장 이해도가 높은 인사를 원하고, 대학과 평생교육 분야는 그 나름대로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교육정책의 표류는 심화하고 있다.


나는 교육 문제를 논의할 때마다 조심스럽다. 중학교 교사로, 대학 강의자로, 교육연수원 책임자로, 교육청과 교육부 정책 담당자로, 시도교육감협의회의 실무 책임자로, 국가교육회의의 전문위원으로 다양한 현장에서 교육의 현실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이런 다양한 경험 때문에 내가 제시하는 어떤 의견도 완벽한 답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교육이라는 현상은 모순과 예외, 반례가 존재하는 대단히 복잡한 실체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들이 백가쟁명의 형태로 쏟아지지만, 그 의견들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과정은 점점 어려워진다.


교육 문제를 단순화하려는 시도는 늘 유혹적이다. 어떤 이는 대학 입시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학력에 따른 사회적 차별을 지적한다. 학교 내 경쟁 구조나 평가 위주의 교육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 중 어느 하나도 전체 교육 문제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교육 문제는 복잡한 사회적·문화적 요소가 겹겹이 쌓여 형성된 복잡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난제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교육행정가, 정책결정자와 시민까지 모든 사람이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따라서 하나의 해결책이 모두의 동의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 역시 특정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언제나 다양한 측면의 반론을 예상한다.


진정한 난제는 우리가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있다. 교육이 단순히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된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단순히 잘못되었다고 단정 짓기보다는, 왜 이런 관점이 우리 사회에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성취와 경제적 안정이 삶의 최대 목표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교육의 도구화는 자연스러운 귀결인지도 모른다.


현대사 전 시기에 걸쳐 우리가 만들어왔던 유산을 놓고, 그 해악을 비판하는 셈이다. 철학과 방향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입장이 갈리지만 방법과 실천을 두고는 기묘한 일치를 보이는 그로테스크한 문화는 결국 우리 만들어 온 괴물이 아니던가. 만악의 근원은 경쟁적 대학입시 구조라 하면서도 '내 자식 제일주의'에 빠지는 것은 너나없는 통일적 실천의 대장정이니 말이다.


늘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이제 우리는 이러한 단순한 시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교육의 근본 가치를 제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교육이 본래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인간 성장'의 가치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보다 깊고 섬세한 논의가 요구된다. 합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제의 인식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작업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성장'이란 결국 문화적·시대적·개인적 맥락에서 계속 변화하고 진화할 수밖에 없는 유동적 개념이지만 말이다.


합의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교육은 인간과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끊임없는 대화의 장이라는 점이다. 기능과 경쟁력만이 아니라 인간성과 공동체성을 중심으로 교육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것이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그 해답은 언제나 미완성이겠지만, 이 끝없는 질문과 대화 그 자체가 교육의 본질이며 훼손당할 수 없는 소중한 유산이다.




커버 이미지 https://baldheadteacher.co.uk/2023/11/03/understanding-complex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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