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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n 01. 2020

지훈이의 캔버스(1)

3월 학교, 그리고 지훈이

새 학기의 첫 시간, 교실의 앞문과 뒷문으로 아이들이 몰려 들어왔다. 2학년으로 진급해 내가 맡은 반으로 배정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교탁 앞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아무 자리에나 앉아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정식 자리 배정은 다음 시간에 할 겁니다."  


내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웅성거리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떤 아이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학급을 둘러보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자리에 앉지 않고 교실 귀퉁이에 서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떨어져 벽을 등지고 있던 아이가 내게로 왔다. 그리고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명찰을 보고 이 아이의 이름이 지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 네가 지훈이구나... 네 자리는 교탁 앞에 정해줄 테니 일단 오늘은 아무 데나 앉거라."

지훈이는 얼마간은 안심이 되는 표정으로 자리를 골라 앉았다. 어수선했던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도 빈자리를 찾아 모두 앉았다. 개학날의 첫 순서는 담임 시간이었다. 개학 관련 공지와 학급 안내 사항을 몇 가지 알려준 다음 청소를 하고 나면 첫날의 일과는 끝나게 돼 있었다. 내일 시간표를 일러주고, 이번 주 말에는 반장 선거와 동아리 반 편성이 있으니 어느 반에 들어갈지 생각해 두라고 말했다. 오늘은 첫날이니 청소는 할 것 없이 그저 자기가 앉았던 자리만 정돈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지훈이도 주섬주섬 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를 들고 복도로 나갔다. 또래보다 작은 몸집이었다.    

- 지훈이는 한쪽 귀를 듣지 못해요. 그것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서 약간 소외됐었죠. 보청기를 권해 보았으나 내키지 않나 봐요. 아이는 착해요. 다른 아이들 신경 안 쓰고 혼자 잘 놀아요. 주로 낙서를 많이 하죠. 아무래도 잘 듣지 못하니 공부는 좀...  그래도 맨 앞에 앉혀주시면 좋겠어요.   

반 배정이 끝난 후 1학년 때 지훈이의 담임이었던 박 선생이 내게 일러준 말이었다. 교무실로 내려와 새로 받은 
명렬표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맨 오른쪽에는 번호가 매겨져 있고 그다음 칸에는 서른네 명의 아이들 이름이 있었다. 그다음 네 칸은 비어 있었다. 새로 배정된 학생들은 여자 아이들이 열다섯, 남자아이들이 열아홉 명이었다. 그중에는 일 학년 때 '학년 짱'이라 불린 학생의 이름도 있었다. 잠시 현기증이 났다. 하필 이 아이가 왜 내 반에 들어왔지? 내 반에 들어온 이상 나와 같이 일 년을 보내야겠지만,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면 들어오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평범한 교사에게 반 배정을 통하여 어떤 아이들을 맡느냐 하는 것은 일 년짜리 '운' 같은 것이었다.

반 편성을 할 땐 
보통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각반에 골고루 배치하여 성적 편차가 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썼다. 1등 하는 아이는 1반에, 2등은 2반에... 이런 식으로 10반까지 배치하고 다시 10반부터 역순으로 1반까지 성적순으로 배치하게 되면 학급별 성적 편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징계받은 사실이 있거나 함께 있으면 학급 아이들에게 피해가 될 것이라 판단되는 아이들은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바꾸어서 한 반에 여러 명이 몰리지 않게 배치하였다. 그렇게 배치하고 학급별 명렬표로 만들어 편지 봉투에 담아 제비를 뽑는 식으로 새 담임을 배정하였다. 그러니 내가 어떤 아이들을 맡게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운이었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과 더불어 멋진 학급활동을 해야지 하는 마음도 조금씩 옅어지던 차였다. 그저 큰 사고 없이 한 학년을 잘 마무리하기 바라는 마음이 컸다. 젊은 교사 시절 아이들과 했던 뒤뜰 야영도, 삼겹살 파티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작년에 2학년을 맡았던 최 선생이 아이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다가 한 아이가
 손에 화상을 입는 일이 있었다. 이 문제로 아이의 부모가 학교에 몇 차례 다녀 갔고 최 선생은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치료비는 어찌어찌 안전공제회에 신청을 해서 감당을 할 수 있었지만 아이의 부모는 왜 정규수업이 끝났는데 아이들을 집에 보내지 않았냐고 항의했다. 학원도 두 시간이나 빼먹었다며 공부에 손해를 보았다고 했다. 게다다  손에 화상을 입어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놓았으니 한동안 글씨도 못 쓸 것이라면서 공부 걱정을 했다. 외고 준비를 하는 자녀에겐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최 선생도 교장도 시달렸다. 교장은 최 선생의 열정을 높이 사면서도 문제가 될만한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교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정규 교육활동 외에 학급별로 이뤄지는 활동을 자제할 것을 권했다.

- 학급 활동 많이 하면 좋지요. 아이들도 좋아하고... 나도 젊었을 때는 아이들하고 등산도 하고, 학교 운동장에 텐트 치고 밤새도록 놀고 그랬어요. 근데 요즘 부모들 잘 알잖아요? 무슨 사소한 사고라도 있으면 곧바로 학교에 책임을 물어요. 저는 말이죠. 그저 선생님들 아무 탈 없이 이 학교에 계시다가 다른 곳으로 옮기시는 것, 바라는 게 그겁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그래야 또 제가 선생님들 보호해드릴 수가 있고... 학급운영비는 가급적 교육활동에 쓰시되, 직접 무엇을 만들어 먹는 것보다는... 뭐 주변에 아이들 좋아하는 햄버거나 피자집도 있지 않습니까? 그걸 시켜먹는 것도 좋을 것 같고...  학급문고를 구입하시거나, 또 뭐...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것... 그런 걸로 하시면 좋아요. 


작년 직원회의 시간에 교장이 했던 말이었다. 교장은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부탁한다고 말했다. 특히 '안전'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땐 또박또박 '안'자와 '전'자에 힘을 주어 발음했다. 최 선생을 포함하여 일부 교사들은 나를 찾아보았다. 뭔가 한 마디 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발언하기 싫었다. 공감이든 거부든,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드러나게 되는 교사들의 성향이 반갑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땅히 그것에 관하여 문제의식을 가진 교사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난 교장이 그 말을 하기 이전에 아이들과 하는 이런저런 학급활동에 흥미를 잃어가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어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개선 의지이거나 정의감이거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교장 선생님, 저희들 걱정해주시는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 도대체 바람직한 교육활동이 뭡니까. 이것저것 안전을 이유로 다 못하고... 아이들이 자랄 때 위험 상황은 조금씩 다 있지 않습니까? 적당하게 위험 상황에 노출도 되고 하면서 극복하는 방법도 배우고 그런 게 교육이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피자나 시켜먹고 있으면 그게 무슨 교육입니까. 학급활동은 교사와 학생들이 잘 협의해서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옛날에는 보통 이런 말이 한 번 나오면 최소한 간헐적인 박수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엔 여기까지였다.  오히려 상당 수의 교사들은 교장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괜히 발언을 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 그래 어차피 애들과 뭐 하고 그런 것도 귀찮고 피곤한데 교장이 저렇게 딱 정리해주니 좋잖아? 뭐 의지만 가지고 아이들 지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그저 안전빵이 최고야.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교장 입장이라도 교사들을 보호하고 싶어 할 거야...  

학교의 분위기는 점점 이렇게 변해갔다. 새 명렬표를 두어 번 끝까지 훑었으나 지훈이의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앞부분에 있다는 것, 일 학년 때 학년 '짱'이었던 아이의 이름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 것 외에 다른 아이들의 이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반 전체 아이들의 이름을 빨리 외우는 것이 좋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것은 점점 힘들었다. 아마 학년 짱과 지훈이를 비롯한 몇 명의 아이는 내일 당장 이름과 얼굴을 외울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아이들은 며칠 정도, 어떤 아이들은 한 달은 걸릴 것이다. 또 몇 아이들은 몇 개월이 지나도록 이름과 얼굴이 헷갈릴 수도 있다. 

개학 이튿날 조회 시간에는 자리 뽑기를 했다. 
나는 분필을 들어 칠판에 34명의 자리 배치도를 그려놓고 자리마다 번호를 매겼다. 그리고는 한 명씩 나와 젓가락 제비를 뽑았다. 젓가락의 끝에는 번호가 1번부터 34번까지 쓰여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먼저 양해를 구했다.

"여기 지훈이는 귀가 좀 불편하여 수업을 알아듣기가 힘들다고 하니 교탁 앞에 앉았으면 하는데, 혹시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

이렇게 물었으나 아이들은 그 문제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었다. 
제비를 뽑으면서 어떤 아이는 탄성을 지르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지훈이 옆에는 여학생이 앉게 됐다. 그렇게 서른세 명이 제비를 뽑았고 자리 배치는 끝났다. 아이들은 책상과 의자를 살폈다. 일 년 동안 자기가 쓸 것이기 때문에 몸에 맞지 않으면 조절도 해야 했고, 또 파손된 것은 목공실로 보내 수리를 부탁해야 했다. 이제 저 책상의 오른쪽 위에는 진지한 명조체로 학번과 이름이 적힌 이름표가 붙을 것이다. 동시에 사물함의 주인도 정해졌다. 사물함에도 이름표가 붙을 것이다. 성질 급한 아이는 벌써 자신의 사물함에 자물쇠를 달았다. 

학기초 사무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교사들의 정신을 빼놓았다. 새롭게 만난 아이들을 위한 교과수업 준비, 수업과 평가 방식을 안내, 공부를 위한 모둠 편성도 했다. 공강 시간에는 각종 제출 자료들을 만들어 냈다. 25년의 경력은 무엇을 빨리 내고, 무엇을 천천히 내도 될지를 판단하여 일을 조절하게 했다. 신임교사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계속 옆 자리 선배 교사에게 물었다. 학기초 교무실 풍경은 늘 분주하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내 경우 상담할 때 필요한 환경조사서는 따로 받지 않았다. 그 대신 학급활동 시간에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는 자료를 작성하게 했다.

생활부에서는 학생들의 사진 명렬표를 내라고 재촉했다. 업무관리 시스템
에서 컬러로 출력한 사진에 이름과 집전화번호, 휴대폰번호를 입력하여 사진 명렬표를 만들었다. 사진이 빠진 아이들은 따로 불러 휴대폰 카메라로 교무실 벽을 배경으로 즉석 사진을 찍어 인쇄하여 붙였다. 서른네 명의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가 A4용지 한 장에 모두 들어갔다. 조악한 품질의 사진, 그리고 무표정한 사진 속 표정들, 흡사 어느 이발소나 허름한 식당에 붙어 있는 지명수배자 명부와 꼭 닮았다. 생활부에선 40 학급이나 되는 전체 학급의 이 명부를 수합하여 비치할 것이다. 아이가 사고를 쳐서 빠르게 신원을 파악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또 '공범'들을 잡아야 할 때 이 명부가 쓰였다. 교직 25년을 넘기고부터 이런 절차들이 무의미하게 생각되었고 무기력증 같은 것이 찾아왔다


3월 한 달은 매우 빠르게 지나갔다. 그 사이 학급 정부회장 선거가 있었고, 학생회장단도 꾸려졌고, 학부모 총회까지 마무리됐다. 3월 3주쯤에 열리는 학부모 총회는 학기초 업무의 큰 매듭이었다. 이때를 위해 줄달음치듯 학교 업무는 정신없이 전개됐다. 이때를 위해 환경 구성도 했고, 대청소도 해야 했다. 학부모 총회 날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였다. 학부모들은 교실 뒤편에서 교사의 수업과 자녀의 태도를 동시에 살폈다. 어떤 학부모는 교사의 수업 방식이 내 자녀에게 유리한 방식인지를 셈 하였다. 학부모 총회가 끝나고 학급의 임원 학부모를 선임하고 학교운영위원회까지 구성되면 비로소 학교는 일상을 찾았다.

교사들은 학기초 긴장을 늦추고 조금 여유를 찾았다. 학년협의회와 교과협의회, 그리고 부서협의회가 이어졌다. 협의회라고 해봐야 현안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3월 말이 되자 교사들은 다른 학교로 전출된 교사들을 방문했다. 일종의 관례 같은 것이었다. 5년마다 학교를 바꾸면서 교사들은 마음 맞는 동료들과 관계를 이어갔고, 학교가 서로 달라진 후에도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렇게 일 년에 한두 번씩 만나면서 새로운 학교 이야기, 교장 이야기, 아이들과 학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지훈이의 3월은 교과 교사들의 지적이 넘쳤던 시기였다. 잘 듣지 못하여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찼던 지훈이는 그 답답함을 낙서로 풀었다. 녀석의 교과서 여백, 공책, 그리고 책상은 온통 낙서 천지였다. 교과를 담당한 교사들은 바로 교탁 앞자리에 앉아 낙서만 하고 있는 지훈이를 나무랐다.

"너는 맨 앞에 앉아서 공부는 안 하고 낙서만 하는구나... 과제는 하지도 않고 그림만 그리고... 너 좀 혼나야 하겠다..." 

하루에도 지훈이는 거의 모든 시간에 교사의 주의 주는 말을 들었다. 수업은 재미가 없었고, 한 번 흥미가 떨어지니 이제는 어떤 말도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아이들은 지훈이가 말을 못 알아들어 답답하다고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청기를 할 순 없었다. 언젠가 엄마가 알아본 보청기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2백만 원짜리는 보통이고 귀에 쏙 들어가는 최첨단 보청기는 3백만 원도 넘었다. 공부도 못하면서 그런 비싼 것을 귀에 꽂고 다니긴 싫었다. 학교에는 어울려 지낼 만한 친구가 없으니 심심했고, 선생님들은 눈만 마주치면 지적만 하는 통에 우울한 나날이 계속됐다. 낙서를 할 땐 그나마 다른 것은 좀 잊고 거기에 몰두할 수 있었다. 지훈이는 매 시간 낙서를 했고 매시간 지적을 받았고, 때론 벌을 섰다. 교실 뒤에 나가서 멍하니 서 있는 벌도, 교과서를 어디부터 어디까지 베껴오라는 과제 아닌 과제도 했다. 

4월 초, 학교에는 연두의 물결이 넘치기 시작했다. 바쁜 3월은 끝났고 중간고사는 아직 한 달 정도 남아 있는 시기, 그리고 대기는 한층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져서 수업도 근무도 할만한 시간이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평소에 자주 대화도 하며, 친하게 지냈던 젊은 교사, 이미영 선생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자리로 왔다. 

"선생님 반에 강지훈이라고 있잖아요? 그 아이 좀 어떻게 지도해주세요. 아주 맨 앞자리에서 공부는 안 하고 낙서만 하는 통에 신경이 쓰여서 제가 수업을 할 수가 없어요. 쪽지 시험도 맨날 다 틀리고... 제 말도 듣지 않아요. 저기 그리고요..."

이미명 선생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조금 더 가까이 내 앞으로 다가와 낮고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제가요. 바로 생활부에 넘기려고 했는데요. 그래도 선생님에게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아 글쎄 이 녀석이 제가 판서하고 있을 동안에... 칠판에다 여자 나체 그림을 그렸어요. 아이들은 웃고, 어찌나 민망한지... 너 두고 보자... 그리고는 바로 나왔어요. 전 수치심을 느꼈어요. 샘이 그놈 혼내주실 거죠?"

이미영 선생은 분이 풀리지 않는 얼굴로 국어 시간에 있었던 일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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