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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n 13. 2021

존엄하게 산다는 것

인간이 인간을 위해 책임을 지는 태도

인간은 존엄성을 가진 존재다.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고유한 성질이 바로 존엄성이다. 보통 인간의 존엄은 윤리학이나 철학의 범주에서 다룰 것으로 생각한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의 저자 게랄트 휘터는 '존엄'과 관련한 담론을 신경생물학의 입장에서 풀어낸다.

현대인들은 언제 나의 존엄이 훼손된다고 생각할까. 타인이 자신을 무시할 때, 내 능력이 보잘것없음을 외부로부터 확인당했을 때일 것이다. 이처럼 나의 존엄은 타인 혹은 외부의 작용에 대하여 내가 느끼는 주관적 감정이다. 그런 까닭에 어떤 사태를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처리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내 의지에 달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늘 외부와의 교감 속에서 자신을 평가할 수밖에 없고,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때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이런 과정에는 개인차가 있어서 사람마다 상황을 견디는 내성에 차이가 있다. 지나치게 자기 존엄을 의식하는 것이 오히려 존엄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너무 의식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뻔뻔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각종 유혹과 약속, 인생을 살면서 꼭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해 가용할 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 게랄트 휘터는 이것을 '내적 표상'을 다루는 문제로 본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 게랄트 휘터, 2019


존엄은 내면에 확신으로 깊게 뿌리 박혀 한 사람에게 인간으로서의 특성을 부여하며 그 고유의 인간됨이 행동으로 표출되도록 만드는 관념이다. 휘터는 이 책을 통해 존엄의 정의를 자연과학적 시각에서 조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산업화 초기에 이르러 손으로 하는 노동, 수공업은 시간 싸움과 규격화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의 정신노동마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오르고 말았다는 것이다.


매 순간 어느 직원이 어떤 일을 얼마나 빨리 처리했는지를 측정하고, 정해진 규격과 세밀하게 짜인 스케줄에 따라 업무가 결정된다. 지금까지 디지털화의 타격을 가까스로 피해왔던 정신노동이 결국 알고리즘의 논리를 따르게 된 것이다.(42쪽)


오늘날 우리가 두뇌의 처리 능력을 넘어선 정보를 폭식하고 있음은 누구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휘터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로 지나치게 분주하며, 쓸데없는 일에 간섭을 하느라 정작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온갖 추측과 편견, 평가와 의도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느끼는 존엄이 훼손되고, 나아가 스스로 혹은 타자에 의해 돌봄을 수행할 수 없는 인간들이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정서적 교감에 대한 비용마저 최소화하기 위해 로봇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인간 고유의 본성이자,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자 상태, 그리고 우리의 상상을 늘 뛰어넘는 그 이상의 무언가. 설령 우리가 믿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존재할 무언가. 바로 그것이 존엄인 것이다. (74쪽)


칸트의 정언명령은 "그대가 하고자 꾀하는 있는 것이 동시에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도록 행하라!"라고 말한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보편화할 수 있는 준칙인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켜서는 안 된다는 칸트의 이 윤리 철학이 근대 법체계의 근본이 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휘터는 '뇌 가소성'에 대하여 말한다. 휘터에 의하면 
뇌 가소성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배움이 가능한, 인간의 거대한 학습능력의 토대가 되는 뇌의 성질이다. 개인의 능력과 신념은 유한하다. 유한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함께 과제를 수행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타자와의 관계는 내 위치를 확인하게 하여 열등감을 높이고 자존감을 해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내 성장을 이룰 수도 있다. 존엄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느끼는 주관적 감정이기 때문에 '내 의지'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휘터는 '실패와 만남'이 주는 의미를 강조한다. 


개인의 신념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실패'다. 지금까지의 인생관과 그에 따른 자아상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깊은 고통을 겪고 나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기 때문이다. (104쪽)


자아가 무너져 내릴 땐 '회복의 희망'을 가져야 한다. 세계와 대응하는 과정에서는 전진과 후퇴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이길 때도 제대로 이겨야 하고, 질 때도 제대로 져야 한다. 지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회복이 더디고, 영영 회복과는 거리가 먼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제대로 지는 사람의 모습은 그것대로 '품위'가 있다. 지는 과정에서 세상의 다른 것을 보고 이해하며 그것을 회복의 에너지로 삼는 사람은 품위를 잃지 않는다. 휘터가 실패보다 더 효과적이고, 한 개인이 형성한 이상과 세계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 만남을 통해 자신의 신념과는 다른 낯선 신념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전한 타인을 만나면서 자아상과 세계관을 확장하고, 비로소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105쪽)


물론 자신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할 땐 실패의 고통이 따른다. 그렇지만 타자와의 만남에서 낯선 신념을 마주함으로써 자신의 사고방식과 이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 휘터는 이를 인류 역사를 관통해온 인간의 근본적인 물음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경험은 우리의 전두엽에 형성되어 있는 자아상 형태의 경험에 추가되고 연결된다.... 이렇듯 한 개인이 스스로 만들어낸 내적 표상은 하나같이 유일한 것이며, 한 인격의 핵심이 된다. 자신의 모든 경험을 연결하고 그 관계성을 파악하는 작업이 성공적일수록, 한 인격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생각이 확장된다. (130쪽)


휘터는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 환경 속에 있으면서 피해 갈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타인에게 이용당하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의도나 목표에 휘둘려 자기 존엄을 상실하는 것이다. 휘터는 
자기 존엄성을 인식한 사람은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에서 성공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휘터는 관계를 통한 경험은 지금껏 그 사람이 형성해온 통찰력과 맞물려, 뛰어난 연상 능력을 가진 의식의 신경망을 통해 처리된다는 것이다. 신경생물학의 관점에서 존엄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뇌의 감정 영역에 뿌리내리고 있던 존엄함에 대한 감정은 그동안 억눌려 있다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다시 신경망이 활성화되며, 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활성화의 결과로 한 사람은 자기 존엄성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존엄성을 인식하는 능력은 그 사람의 재산이나 지위, 명예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존엄함이란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방법, 인간이 인간을 위해 책임을 지는 태도의 문제다. 얼마나 존엄한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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