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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connect Dec 16. 2019

경력 단절된 여성들이
다시 일할 수 있기를 바라요.

#어차피 살거 재미있게 #씨프로그램 회계 및 경영지원 담당자 박진희


경력 단절된 여성들이 자신을 탓하지 않고 다시 일할 수 있기를 바라요.



박진희 (씨프로그램 회계 및 경영지원 담당자)

박진희는 벤처 기부 펀드 씨프로그램의 회계 및 경영지원 담당자다. 영리 기업과 비영리 단체에서 두루 일하며 회계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은 것은 물론,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키워오기도 했다. 출산과 육아를 거치지 않고 경력 단절을 겪은 비혼 여성으로서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여성들에게 좋은 참조점이 되기를 원한다. 





그동안 거쳐온 커리어 패스를 알려주세요.


외국계 광고 회사에서 회계 일을 오래 했어요. 복지도 급여도 나쁘지 않았지만, 일의 강도가 너무 세서 장기근속이 어렵겠더라고요. 게다가 급여를 책정하는 데 성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우수사원으로 선정돼서 인센티브를 받은 건 저인데, 매해 급여 상승 폭이 더 큰 건 같은 직급의 남성이었어요. 한 가정의 가장이니까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몸과 마음이 피로해지다가 회사에 변화가 있을 때 그만두고 국경**의사회(국제구호단체)라는 NGO로 이직했죠. 비영리 단체에서의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어떤 점이 특히 좋았나요?


다른 여러 업종의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영리 기업에서 일할 때는 직원들끼리 서로 피곤하게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으로 일하자’라는 암묵적인 원칙이 있어서 짧게, 약간은 독하게 말하는 습성이 있거든요. 국제구호단체에서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를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특정한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캠페인을 벌이고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조직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였죠. 그러다가 그린**(국제환경단체)가 서울사무소를 연다고 해서 지원했고, 그곳에서 3년 반 정도 일했어요. 씨프로그램에 입사하기 전 마지막 직장이었죠.



마지막 직장을 그만두게 된 이유가 있었을까요?


근무 조건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국제단체라서 국내법 준수가 우선되고 다른 나라의 지부와의 형평성도 맞춰야 하는 등 조건은 좋은 편이었어요. 예를 들어 초과근로는 1.5배의 보상휴가로 사용할 수 있었죠. 그런데 그만둘 때쯤 상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사실 NGO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급여를 보는 게 아니라, 그 NGO가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생각했을 때 그 상사는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에 반하는 사람인 것 같았어요. 불합리하고 권위적인 의사결정과 부당한 인사결정을 하는 등의 일이 축적되어 단체에 많이 실망하게 됐죠. 고생하면서 일을 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1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지냈어요. 갑자기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이후 2년 정도는 공방을 열어서 바느질 강습도 하고 소품도 팔았어요. 



다시 일을 구하려고 했을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여성이 40대 중후반 정도 되면 정말 잘나가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커리어가 끝나더라고요. 일을 더 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저 역시도 잘 나갈 때는 헤드헌터들이 늘 연락을 줬지만, 그렇다고 커리어에서 정점을 찍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나이가 좀 더 드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연락이 뚝 끊겼어요. 영리 기업과 NGO에도 입사 지원서를 몇 차례 넣어봤지만 제 경력이 워낙 길고 나이가 많다 보니 쉽지 않더라고요. 상심했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포기하고, 공방을 다른 방식으로 해봐야 할지 고민하게 됐죠. 그러다가 위커넥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씨프로그램에 지원했어요. 씨프로그램은 영리 기업이면서 아이들의 미래에 투자하는 회사라는 게 특이하더라고요. ‘재미없는 분야는 아니겠구나, 내가 일을 금방 그만두거나 흥미를 잃지는 않겠구나’ 싶어서 지원을 결정하게 된 거죠.





실제로 유연 근무를 경험해보니 어떤가요?


풀타임으로 근무하면 아무래도 일을 많이 하게 돼요. 영리든 비영리든 업무가 회계 쪽이다 보니 야근도 많은 편이었고요. 심지어 중간 관리자가 되면 다른 사람들을 케어해야 하기 때문에 제 일만 끝났다고 퇴근을 해버릴 수도 없어요. 그런데 씨프로그램에서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하루 네 시간만 딱 근무하면 되니까 초반에는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출근해서 빨리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하고 퇴근하게 되더라고요. 스위치를 빨리 껐다 켰다 하는 게 힘들었는데, 다행히 입사 후 5개월쯤 지났을 때 자연스레 가능하게 됐어요.



예전에 일했던 조직들보다 규모가 작은 회사이기도 한데, 업무적으로 다른 점은 없었을까요?


시스템이 아주 달라요. 제가 입사하기 전까지 씨프로그램에는 회계 담당자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외주를 주긴 했지만 회사 내부의 일들을 세세하게 상의하면서 회계 업무를 처리하기는 아무래도 불편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회계 전반, 명함 제작과 명절 선물 챙기기 등의 총무 업무, 노무 쪽의 부분적인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어요. 씨프로그램은 영리 법인이지만 비즈니스 자체는 비영리 쪽이거든요. 제가 비영리 조직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니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대표님께 지원해 드리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죠. 회사가 5인 이상 10인 미만 사업장이 되면서 적용받는 근로기준법이 바뀌었는데 거기에 대해 안내도 하고요. 



씨프로그램에서 일하면서 변한 부분도 있는지 궁금해요.


저한테는 이 업계가 굉장히 낯설었어요. 영리 기업과 비영리 단체에서 일해봤지만, 소셜벤처라든가 스타트업은 경험해보지 못했거든요. 사회적 이슈는 비영리 단체나 정부에서만 다룬다고 생각했어요. 씨프로그램에 온 이후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들을 실제로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도 삶과 커리어를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일들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사실 저는 한국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지 않은 비혼 여성이니까요. 게다가 유연근무제로 이런 소셜벤처에서 일하는 건 더더욱 흔치않은 경우죠. 이런 삶의 형식도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제가 그동안 관심 가졌던 여성들의 다양한 삶에 관해 뭔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다른 비혼 여성들에게 좋은 참조점이 될 수 있겠네요.


저는 비혼으로서의 삶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지금 함께 사는 고양이 두 마리 말고는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깜냥이 되지 않거든요. 제가 일을 하면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직장을 옮길 때나 여행을 갈 때 등 모든 일에서 순전히 제 감정과 느낌, 판단만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도 있고요. 물론 경제적 능력이 중요하니까 돈은 지금보다 조금 더 벌어야겠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죠. (웃음) 



커리어를 다시 시작하거나 전환하고 싶은 위커넥트의 후보자들에게도 한마디 전해주세요.


저 같은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경력 단절 여성’의 카테고리 안에 존재하지 않아요.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까 사회에서는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람이 되더라고요. 공포와 분노가 컸어요. 죽지 않고 어떻게든 이 사회에 존재해야 하는데, 그럴 때 위커넥트를 만난 게 큰 위안이 됐어요. 저는 위커넥트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되면 좋겠어요. 자의로 경력이 단절되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결혼 때문이든 부조리한 상사 때문이든 결국은 사회나 조직의 문제인 건데, 대부분의 여성들은 ‘내 인내심이 부족한 건가?’라고 자기 탓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이유로든 경력이 단절 된 여성들이 자신을 탓하지 않고 위커넥트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해나갈 수 있기를 바래요. 나를 지원해주고 손잡아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너무 중요하니까요. 자매님들에게는 연대가 필요합니다. (웃음)






인터뷰: 황효진

황효진은 더 나은 여성의 삶을 위한 콘텐츠 플랫폼 ‘헤이메이트’의 콘텐츠 코디네이터다. 웹매거진 <텐아시아>와 <아이즈>에서 기자로 일했고, 에세이집 <아무튼, 잡지>를 썼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 여덟 명의 인터뷰집 <일하는 여자들>, 두 여성 프리랜서의 생존 실험 에세이 <둘이 같이 프리랜서>를 기획/공동집필 했다. 셀럽 맷, 윤이나 작가와 함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여성의 관점에서 이야기해보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 <시스터후드>를 진행 중이다.




* 더 많은 위커넥트 파트너스 인터뷰는 위커넥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econnect.kr/posts?category=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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