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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Jul 11. 2021

싸늘함을 온기로 채워준 너

집에 있기 싫었는데, 자꾸 집에만 있고 싶게 만드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털이 복슬복슬한 아이가 엉덩이를 씰룩이며 온 집을 휘젓고 다녔다. 강아지가 너무 무서웠던 나는 친구에게 붙잡아달라고 사정사정을 했고, 친구는 이 쪼만한 아이가 뭐가 무섭냐며 번쩍 들어 올려 거실로 보냈다. 나는 그 사이에 와다다다 달려서 친구 방 침대 위로 폴짝 올라갔다. 혹시나 이 아이가 침대로 올까 봐 무서워서 이불까지 덮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인지라 친구 집은 이후에도 몇 번을 더 갔다. 여전히 그 복실이 녀석은 꼬리를 마구 휘저으며 현관에 서 있는 내게로 달려왔고, 나는 여지없이 친구에게 "야야야야야야야" 소리를 지르며 당장 이 귀엽고 앙증맞은 아이를 내 옆에서 치워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고 또 간절한 눈빛으로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그때 그 아이는 '초코'라는 이름의 요크셔테리어였다. 아직도 그 아이의 발톱이 장판 위를 터치했을 때 나는 파열음을 잊을 수가 없다. 타다타다타다타다. 그 소리가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귀여운 그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어서 친구 방 문을 빼꼼히 열고 쳐다보길 무한 반복했다. 같이 있고 싶지만, 같이 있기는 싫었던. 딱 그 기분이었다. 


다시는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하지 마!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이었나.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몇 날 며칠 엄빠를 졸라댄 적이 있다. 엄마는 결사반대였고, 아빠는 마음이 조금 녹아가고 있을 무렵. 아빠의 흔들리는 눈빛을 캐치한 나는 단전에서부터 애교를 끌어올려 아빠를 공략했다. 결과는 대성공. 아빠는 지인이 이민을 가면서 강아지를 데려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우리가 데려와서 기르자고 이야기했고, 엄마도 결국 항복했다. 나와 동생은 아빠가 돌아오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저녁도 먹지 않고 있었다. 


창 밖으로 아빠가 주차하는 소리가 들렸고, 현관으로 점차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발자국이 한 발 한 발 다가올 때마다 내 심장이 요동쳤다. 어떤 생명체가 우리 집에 오게 될지 너무 궁금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아빠가 강아지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캐리어의 문이 열리자 삐쩍 마른 아이가 쏜살같이 뛰어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치와와였던 것 같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식탁 위로 올라갔다. 내 동생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을 번갈아 쳐다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밥을 먹는 동안 치와와 녀석은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돌아다녔다. 나는 빨리 밥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지만, 강아지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나의 실수였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갑자기 이 아이가 내 발을 핥았다. 그대로 시간이 정지했다. 엄빠가 괜찮다고 물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나는 곧 저 조만한 녀석에게 잡아 먹힐 것 같았다. 그렇게 그 아이는 우리 집에 온 지 8시간 만에 견주 베테랑인 엄마의 친구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 집에서 20년 가까이 살며 행복한 삶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엄마는 절대 강아지의 '강'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강아지는 금기어가 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는 엄마가 애기였을 때 동네 개에게 물렸던 기억이 있었고, 그 트라우마로 개를 정말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이 너무 간절하게 원해서 엄마도 트라우마를 극복해 보고자 도전하려고 했었다고 했다. 감동스러우면서도 미안했다. 


엄마, 나 강아지 키워도 될까?


엄마의 장례가 끝나고 가장 힘든 순간은 매일 밤에 잠을 청하는 일이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함이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모든 방에 불을 다 켜고, 노래까지 켜놨는데도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은 지속됐지만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조심스럽게 강아지를 입양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그러다 이내 말을 번복했다. 엄마를 떠나보낸 빈자리에, 언젠가는 나보다 먼저 떠날 생명체를 들이는 것은 리스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초보 견주인 나에 대한 우려도 덧붙였다.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선뜻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49제가 지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행여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엄마가 나를 보러 집에 못 오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병원에 있으면서 그렇게 집을 가고 싶어 했던 엄마였는데, 강아지 때문에 집에 한 번 못 들른다면 나는 또 엄마에게 죄를 짓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달 여가 지나고, 회사로 복귀를 했을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집에 혼자 들어와 저녁을 먹는데 싸늘한 그 느낌이 온몸을 감싸는 기분이었다. 보일러를 켰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싸늘함이 있었다. 소파에 혼자 앉아있는데 엄마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엄마의 빈자리를 내가 다른 생명으로 채워도 되겠냐고. 싫다고 질색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근데 엄마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래도 네가 힘든 것보다는 그게 좋을 것 같다고. 


그렇게 어느 날 꾸꾸가 우리 집 현관으로 들어왔다. 

아프지 마 꾸꾸야

처음 꾸꾸가 우리 집에 온 날을 잊지 못한다. 꾸꾸를 위해서 보일러를 일찍 틀어놓고 집 온도를 맞춰두었고, 울타리와 밥그릇, 방석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기다렸다. 하지만 설렘의 순간도 잠시. 꾸꾸는 밤새도록 앓는 소리를 하며 기침을 해댔다. 새벽 시간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아침이 될 때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가니 감기에 걸렸다고 한다. 고작 3개월이 조금 넘은 아이인데 아프다고 하니 너무 걱정이 됐다. 특히 아파서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 데려온 아이인데, 괜히 우리 집에 왔다가 병을 얻은 것 같아 미안함과 죄책감이 너무 컸다.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돌아오는 내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주변에서는 어릴 때에는 자칫 환경만 바뀌어도 그럴 수 있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생각보다 꾸꾸의 상태는 심각했다. 내 마음은 당연히 편하지 않았다. 동물병원을 마치 제 집처럼 드나들기를 2주 정도 됐을까. 꾸꾸가 고비를 넘기고 건강을 되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3주가 지나서야 꾸꾸는 다시 우리 집으로 왔다. 


꾸꾸야, 누나랑 함께여서 행복하니? 


꾸꾸가 말을 할 수 있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지금 나와하는 나날이 행복한지 말이다. 꾸꾸와 함께한 지 햇수로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나는 꾸꾸 눈치를 본다. 화를 냈다가 놀라는 것은 아닌지, 뭘 잘못 먹은 건 아닌지, 내가 잠깐 외출을 하면 너무 외로운 것은 아닌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해 주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것 투성이인 가족이라 꾸꾸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말이다. 나의 이기심에 데려온 아이이니, 적어도 나 때문에 불행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친구들은 가끔 농담으로 "나는 다음 세상에 꾸꾸로 태어나고 싶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꾸꾸의 마음도 그런지 진심 매일매일 궁금하다. 


사실 게으름의 대명사였던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니 내가 꾸꾸를 선택했다기보다는 꾸꾸가 나를 선택해 주었기에, 나는 꾸꾸에게 온전히 내 마음을 의지하고 있다. 썰렁한 나의 보금자리에 세상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준 은인인 셈이다. 앞으로 나의 독립생활에서 큰 마음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꾸꾸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뒤를 돌아봤다. 내 등 뒤에서 바닥에 놓인 최애의 CD 케이스를 이로 잘근잘근 부시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꾸가 너무 고맙고.........고맙.....고..............응? 너 지금 입에 있는 그거 뭐야? 뭘 부순거야?...하아.....꾸꾸야 그만...................


집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산책 중인 아가 꾸꾸


방으로 못 들어오게 쳐둔 울타리에서 문 열어달라고 시위 중인 아가 꾸꾸(아가 같지 않은 앙칼짐은 덤)


사고 치기 직전 숨 고르기 중인 아가 꾸꾸......저기에 오줌 쌌.........(다시 생각해도 아찔ㅜ)
이제 제법 컸어요! 유치원에서 실컷 뛰어놀고 지쳐서 쉬는 요즘 꾸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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