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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Jul 16. 2021

서울 촌년의 강남 적응기

강북에서 온 여자

서울 토박이로 태어나 지금까지 나에게 서울은 서대문구다. 잠깐 다른 지역에도 살기도 했었지만 어언 30년의 생활을 모두 한 동네에서 보냈기 때문에 같은 서울이라 하더라도 다른 곳은 조금 낯설다. 내가 살아온 서대문구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동네다. 꾸준하게 발전을 해서 높은 아파트와 좋은 건물들이 아주 많이 들어서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스러움이 정감 있게 남아있다. 내가 서대문구를 좋아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근처에 높고 낮은 산들도 많고 한강도 가까워서 산책하기에도 좋다. 시장도 활성화되어 있어서 살 부대끼며 사람 사는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서울이지만 다소 시골 같은 느낌이랄까. 여하튼 그런 인간적인 느낌이 참 좋다. 


물론 정반대의 이미지인 곳도 있다. 바로 강남이다. 나름 오랜 시간 서울에 살았음에도 강남은 나에게 미지의 도시다. 살아본 적은 없지만, 온갖 잡소리를 들어서인지 뭔가 차갑고 냉소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치솟은 빌딩과 아파트들에 기가 죽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혹은 내가 밟고 있는 땅값이 어마 무시하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늘 조심스러워지는 동네다. 그래서 그런지 강남은 그다지 정이 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어우 강남은 절대 안 가지


살고 있던 집과 강남은 거리도 상당하다.  그렇다 보니 사실 강남에서 약속이 생기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참석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1년 에 한 번 강남에 올까 말까? 일이 있을 때 빼고는 강남으로 올 일이 없었다. 회사는 더더욱 생각도 안 했다. 잠깐 몸담고 있던 회사가 강북으로 이사를 하기 전에 논현동에 사무실이 있어서 두어 달 강남 출퇴근을 해봤는데, 역시나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는 결론만 확고해졌다. 당시 친구들에게도 '돈 있어도 강남은 못살겠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내가 지금 서울시 강남구에 살고 있다. 정신 차려보니 구청에서 주소 이전을 하고 있었다. 순전히 회사 때문이다. 하아. 지금 생각해도 미친 짓이다. 이직을 결정하고, 퇴사를 하고,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기까지 꼬박 한 달. 정확하게는 25일 걸렸다. 이게 될까 싶었는데 나는 결국 해내고 말았다. 


지금은 이사를 한지 또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어언 2개월 정도를 강남에 살아보니 낯선 강남이 조금은 익숙해지면서 동네를 둘러보게 됐다. 나름 재미있는 인사이트가 도출됐다. 아직 강남 라이프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걸음마 수준의 인사이트이긴 하지만. 


살찌는데 1도 지장이 없는 동네, 강남


강남이라 좋은 점

1. 유명 프랜차이즈의 신메뉴를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다. 

가끔 저녁을 먹기 위해 배달앱을 켜서 주문 메뉴를 살펴본다. 그런데 처음 보는 메뉴가 눈에 띈다. 나름 배달앱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라서 웬만한 것들은 익숙한데 메뉴 자체가 생소한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분명 같은 프랜차이즈인데도 불구하고 이 동네에서만 보이는 메뉴들이 있다. 이럴 때는 검색찬스를 무조건 이용해야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시범으로 강남점 몇 곳에서만 판매를 하거나, 강남이 본점이라 본점에서만 가능한 것들이었다. 한정된 메뉴들이 있으니 놓치고 싶지 않다. 조용히 주문 버튼을 누른다. 강남에서도 몸무게를 적립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동네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번외) 

맛집이 배달된다. 그냥 맛집 말고, 여기 와서만 먹을 수 있는 맛집!! 일단 나에게 놀라운 것은 쉑쉑 버거였다. 

30분을 줄 서서 먹던 쉑쉑 버거를 집에서 배달로 먹을 수 있는 동네라니!! 충격적.


2. 없는 게 없다. 

살다보면 급하게 뭔가가 필요할 때가 있다. 당장 사야하거나, 당장 가봐야 하거나 등등. 변수가 생길때마다 동네에 없어서 곤란했던 경우가 있다. 강남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찾으면 거의 다 있다. 그것도 걸어서 10분 거리거나 혹은 버스로 2~3 정거장 정도면 된다. 강남이 인프라가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물론 근처에 없는 것들도 있다. 근데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스세권, 맥세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심혈관내과도 코앞에 있다. 나는 혈압이 좋지 않아서 최근에 한 번씩 혈압을 체크하고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고 있다. 이런 특수 병원은 많지 않아서 집 근처에는 당연히 없고, 항상 집에서 먼 곳으로 알아봤었는데 여기서는 슬리퍼 신고 나갈 수 있다. 정말 놀라운 동네다. 


3. 외제차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동차를 잘 모르는 나는 차를 볼 때 '큰 차가 좋은 차고, 색깔이 화려하면 돈이 많이 들겠구나?' 그 정도가 전부다. 자동차 이름과 브랜드를 찾아보게 된 것은 이 동네와서 처음이다. 가장 큰 이유는....얼마짜리인지 알아야 내가 좀 더 조심해서 운전을 하기 때문이다ㅎㅎㅎㅎ 근데 보다 보니 재미있어졌다. 물론 내 기준에서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그거 나온 지가 언젠데?'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에 흥미롭다. 출퇴근에 오고 가는 차만 봐도 시간이 순삭이다. 


하루는 유튜브에서만 보던 집 한 채 값의 롤스로이스도 처음 봤다. 근엄한 사장님이 뒷자리에서 내리는데 모든 사람들이 인사를 하는 모습을 출근길에 보게 됐다. 오. 한 번사는 인생 저렇게 살아봐야 되는데. 이번 생은 틀린 듯 하다. 


강남에서도 택시는 사랑입니다. 단, 요금은 책임 못집니다.


강남에서 놀란 점

1. 집 값이 살벌하다. 

서대문구에서 살던 집을 처분하고 강남으로 넘어왔는데 같은 값임에도 집의 퀄리티가 다르다. 원래 내가 살던 집의 컨디션을 생각하면 지금 가진 돈에서 최소 1.5억은 더 얹어야 했다. 물론 1.5억이 최소 금액이다. 이만큼을 얹는다고 해서 좋은 집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서대문구의 매매 가격이 여기서는 전세로 탈바꿈한다. 서대문구에서도 좋은 집은 엄청 비싸지만, 그런걸 제외하고 평균으로 따졌을 때의 비교다. 아파트는 당연히 꿈도 못 꾼다. 돈이 넉넉하지 않은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부동산도 4~5곳 만난 것 같고, 2주 동안 20곳 정도의 집을 봤다. 마음에 드는 곳도 있었지만, 금액이 맞지 않았다. 금액이 맞는 곳은 당연히 퀄리티가 맘에 들지 않았다. 


지금 집을 오게 된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회사도 걸어서 갈 수 있다. 직주근접 개꿀이다. 


2. 강남도 사람 사는 동네다. 

나는 강남에 대한 선입견이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색안경을 벗고 살아보니 똑같은 동네다. 친절할 사람은 친절하고, 냉정할 사람은 냉정하다. 근데 그건 어느 동네나 마찬가지다. 괜히 긴장하고, 겁먹었던 것 같다. 


3. 24시간 러시아워다. 

'이 시간에는 괜찮겠지?', '에이 지금은 안 막힐 거야?' 그런 거 없다. 24시간 내내 차가 많다. 출퇴근 시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주말에도 집 앞은 늘 차가 많다. 가끔 운전해서 나가면 막히는 곳은 항상 막힌다. 어디서 이 많은 차들이 온 것일까 궁금할 때도 있는데, 이제는 나름 익숙해져서인지 '오늘도 막힐 거야'하고 나간다. 그럼 역시나 막힌다. 그래서 강남에서는 급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권한다. 물론 나는 그걸 알고 10분 일찍 나와서 택시를 탄다. 알럽 택시❤️ (3800원에 갈 수 있는 거리를 5000원에 가게 될 수 있으니 선택은 자유다. 시간 역시 5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지금도 강남에 적응 중이다. 적응이라기보다는 정을 붙이려고 노력 중이다. 살다 보니 사람들이 왜 강남이 편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풀과 물이 없는 동네, 도심 한가운데 살아보는 것이 처음이라 낯선 것도 사실이다. 조금씩 익숙해지겠지. 한 1년 지나면 내 나름 분석한 내용들도 바뀌어 있을지 모르겠다. 그 때는 알럽 강남!!을 외치고 있을지도 모를테지. 


어쨌든, 서울 촌년은, 오늘도, 강남에서 열심히 살아본다. 

사람 사는 거 어디나 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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