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이후의 일정을 고민하다 결국 터키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아껴두었던 터키를 간다고 하니 마음이 조급해져 부랴부랴 터키사 공부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ebsi를 틀어서 세계사 강의를 듣고 있자니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도 이 공부를 참 좋아했던 과거의 내가 떠올라 아련해졌다. 기억 저편으로 흐려졌던 내용들이 다시 공부하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니 반갑기도 새롭기도 하더라. 이것이 교육이 힘일까. 어차피 잊히더라도 언젠가 다시 마주한다면 기억해낼 수 있다는 것이.
인도를 떠나고 싶지 않단 생각에 아쉬운 마음만 들끓었지만 비행기표를 취소할 깜냥은 부족했다. 한두 푼이 아쉽던 나였기에 비행기를 취소할 생각 따윈 품지 못하고 그렇게 델리행 기차에 올랐다. 이번 기차도 꼬박 한 밤을 타야 하는 야간 기차였기에 탑승하자마자 사람들은 분주히 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기차로 큰 수모를 당했던 나였는데, 이렇게 편히 인도에서의 마지막 기차를 타고 있자니 마음이 묘했다.
아침 6시에도 델리 역에는 손님을 노리는 수많은 툭툭 기사들이 입구에 빼곡했다. 배낭을 들쳐 맨 나를 보고 3~4명의 기사들이 흥정을 하기 위해 다가왔으나, 인도 여행 1달 차의 짬이 생긴 나는 "우버 우버~"라고 받아치며 미리 불러놓은 우버택시에 탑승했다.
델리의 중심가인 빠하르간지에 도착해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인 백패커 판다로 향했다. 체크인은 오후부터 가능하단 이야기에 휴게실에서라도 쉬어도 괜찮냐고 양해를 구했다. 지저분함이 그득한 휴게실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동물의 분변이 자리하고 있었다. 설마 사람의 것이라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던 터라 개의치 않고 멀찍이 떨어져 앉아 배낭에 기대어 잠을 청했다. 그렇게 자고 있다가 2시간 정도 지났을까, 호스트가 올라와선 추가 요금 없이 이른 체크인을 해주겠다며 침대에 가서 쉬라고 이야기했다. 역시 이게 인도의 No problem이지!
긴 이동 때문에 지친 몸을 침대에 뉘었다. 우다이푸르에서 얻은 물갈이 때문에 은근한 복통은 계속 지속되었으나 그 와중에 배는 고프더라. 먹을 것도 살 겸, 델리에 왔으니 스타벅스에도 가보자! 란 생각으로 거리로 나섰다. 확실히 수도는 수도더라. 다른 도시들과 비교될 정도로 세련된 건물들이 즐비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확연히 달랐고, 무엇보다 나에게 무심한 사람들의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거리를 걸어도 날 쳐다보질 않더라고.
인도에선 어딜 가든 내가 슈퍼스타였다. 그냥 거리를 걷기만 해도 많은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고,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이들은 일상이었다. 처음에는 최대한 경계하고 무시했지만, 수정언니와 주애언니를 만나고 나선 나도 그들의 관심을 받아들이곤 함께 즐기려 했다. 그러한 일상들이 벌써 한 달이 되니 슈퍼스타 대접에도 익숙해져 버렸는데, 이토록 무심한 델리라니! 어떻게 나를 쳐다 안 볼 수 있지? 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의 관심에 갈증이 나다니, 관심병 환자가 다 되어버린 나였다.
도착한 델리의 스타벅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도시에선 볼 수 없었던 커리어맨들도 있었다. 흰 와이셔츠에 노트북으로 업무를 하는 인도인이라니. 생경한 느낌이 가득했으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맛은 한국과 동일해서 놀라웠다. 맛 까지 이렇게 동일하게 관리하다니, 세계적으로 성공한 프랜차이즈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델리의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약 3300원으로 한국 보다 저렴하다. 인도 물가에 비해 비싸지만..
다시 빠하르간지로 돌아와 먹거리를 샀다. 바나나, 과자, 음료수를 사 와서 먹었다. 돈을 아낀답시고 밥을 과자로 때운 적이 많았다. 근데 인도 과자 너무 맛있어서 그렇기도 했다. 버터 과자 진짜 너무 맛있다...
인도의 국민 과자인 Good Day. 여러가지 맛이 있는데 전부 맛있다. 인도에만 있는 탄산음료인 림까도 맛이 독특하니 맛있다.
아무튼 물갈이의 여파로 지치고, 인도 여행 막바지라 기운이 빠져버려서인지 여행을 할 의지가 미약해졌다. 그냥 다 귀찮고 쉬고 싶었다. 저녁에 가려고 했던 악샤르담 분수쇼 일정도 그냥 취소했다. 언젠가 인도에 또 오게 되면 델리를 다시 방문할 터이니, 그때를 위해 남겨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합리화는 남은 이틀간의 델리 일정도 모두 취소시켜버렸다. 델리에서 다녀온 관광명소라곤 스타벅스뿐이었지만, 아쉬움은 없다. 이 곳을 계속 그리워하고, 언젠가 필연히 다시 오게 될 것을 알았기에. 예측한 대로 그 그리움을 안고 이 글을 적고 있다.
인도는 내게 도전의 의미였다. 갠지스 강에서 해답을 찾기 위함도 있었지만, 이 위험한 여행이 나를 단련시킬 것이라 믿었다. 긴 세계여행의 첫 시작을 인도로 시작하여 무사히 마무리한다면, 남은 여정들은 그 무엇이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인도도 혼자서 여행한 내게 무엇이 두려우랴. No proble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