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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훈 Dec 05. 2021

삶을 지키는 노력


  올해 무척 바빴다. 갑자기 담당 업무가 바뀌면서 해야 할 일의 양도 중요도도 부쩍 올라갔다. 게임으로 치자면 쉬운 판을 깨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갔는데 난이도가 갑자기 확 올라가서 자꾸 죽기만 하는 상태였다. 


  일의 양도 양이지만 부담감과 두려움이 더 컸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지 못해서 회사에 폐를 끼치면 어떡하지? 잘못된 보고를 해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실책을 하는 건 아닐까? 같은 염려와 걱정이 계속 나를 짓눌렀다. 그런 생각을 일을 오래 붙잡고 있게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일은 밤으로 주말로 옮아갔다. 




  일과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휴식, 여가는 줄어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퇴근하고 나서 기타를 치고 일기를 쓰며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해왔는데 올해부터는 그런 생활이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퇴근하는 시간이 늦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잠깐만 쉬어볼까 하고 누웠다가 스르르 잠들기 일쑤였다. 살기 위해 일한다기보다 일하기 위해 사는 삶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상반기에 공과 시간을 들였던 프로젝트의 결과가 괜찮게 나왔다. 리뉴얼한 제품의 매출은 성장했고 리뉴얼에 맞춰 준비한 몇 가지 프로모션이 나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오랜만에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내 생각과 의도가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지는 건 기획자로서 보람 있는 순간이었다. 


  하반기가 되면서 다시 보통의 생활로 돌아왔다. 칼퇴까지는 아니었지만 9시, 10시까지 야근하지는 않았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자 그 에너지는 다시 글을 쓰고 기타를 치고 사람을 만나는 데 쓸 수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브런치 글을 매주 한 편씩 (물론 빠뜨린 적도 있지만...) 적기 시작한 것도 하반기부터였다. 조금 숨통이 트이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팀장님의 이직으로 그 자리를 내가 맡게 되었다. 바라지 않던 자리였다. 지독한 개인주의자 중 한 명으로서 나는 내가 할 일만 열심히 하며 살고 싶다. 이왕이면 그 일을 주체적으로 하고 싶고. 누군가의 일에 참견하고 잔소리하고 관리하는 건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팀장이 되면 고민의 양은 몇 배 늘어나게 된다. 실무의 양이 그에 비례해서 증가하진 않겠지만 맡아야 하는 브랜드의 가짓수가 증가하는 만큼 풀어야 할 숙제도 늘어난다. 일은 다시 삶을 잡아먹을 것이다.      




  다시 바빠지기 시작한 나날을 마주하면서 이런 결심을 했다. 휴식에도 노력을 쏟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좋은 휴식의 방법이지만, 분주한 나날 속에서 보내는 공백의 시간은 무기력한 휴식이 되기 쉽다. 그러니 즐거움으로 긍정적인 기운을 채우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필요한 법이다. 


  매일, 매주, 매월의 즐거움에 관해 생각해본다. 매일 한 시간 정도는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기타를 잡고 어설픈 연주라도 해보는 것. 주말이 되면 에어프라이어에 갓 구운 크로와상을 먹고 막 내린 커피를 마시며 사색하는 척 멍을 때리는 것. 그러다가 이런 짧은 글이라도 써보는 것. 매주 금요일이면 연인과 불금까지는 아니더라도 맛있는 술과 안주를 기울이며 훈훈한 금요일 정도는 보내는 것.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꼭 가고 싶었던 맛집을 찾아가고 보고 싶었던 공연을 찾는 것.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순간이고 빡빡한 일상에 어떻게든 틈을 찾아 끼워 넣고 싶은 것들이다. 


  지난 상반기에는 일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때의 경험을 거울삼아 앞으로의 시간은 너무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잘 잡아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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