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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민지 Aug 11. 2020

대리님 덕분입니다.

[한 달 쓰기] Day 11


신입 때 운이 좋게 정부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내 나이는 24-5살쯤이었던 거 같은데 당시 상대해야할 분들이 임시 피크제에 들어가는 내부 부장급 임원분들, 혹은 40-60대 연령대의 경영 컨설턴트분들이었다. 나는 어릴때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큰아버지 연령대 친척분들과 같이 지내본 경험이 없어 처음에는 그 분들을 상대하기가 무척 어려웠던 것 같다.


당시엔 전화 업무가 많았었다. 하지만 막상 받으면 절반이 컴퓨터를 잘 못다루셔서 물어보시는거였다. 본인들의 회사 직원들도 있을텐데 굳이 다른 회사 직원이었던 나한테 물어보시는거면 그래도 내가 좀 더 편하셨나보다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시시콜콜 굳이 전화안해도 될 내용들, 내부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분들도 전화하시는 분들이 꽤 많았다.


초반엔 좋은게 좋은거지하며 그 분들의 요구사항들을 최대한 수용하여 도와드렸다. 하지만 자꾸 내가 받아주니 통화시간이 계속 늘어났고 사업 담당자랑 통화하기 너무 어렵다고 컴플레인성 통화도 함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내가 점점 더 스트레스를 받아하자, 윗 사수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민지씨, 300명 컨설턴트들 일일히 다 맞춰줄 수 없어요. 민지씨가 할 수 있는 만큼 그 선에서 최선을 다해주세요. 



회사생활하면서 이때 처음 거절하기를 배웠던 것 같다. 물론 처음엔 쉽지 않았다. 왜 전에 해줬으면서 지금 안해주냐며 떼를 쓰는 분들도 계셨고, 또 화를 내시는 분들도 있었다. 이때가 사업시작 초기쯤이었고, 1년 단위 사업이라 연말까지 그 분들과 관계 유지하며 잘 끌고 가려면 사업을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사업 마무리 단계인 워크샵을 진행하게 되었다. 매일 유선과 메일로만 업무 진행을 하다가 300명의 컨설턴트분들을 뵙는 건 처음이었다. 실제로 뵙을 땐 큰아버지 나이대분들이 많으셨고, 초면이었지만 다들 먼저 알아보시고 인사해주셔서 워크샵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당시 워크샵을 진행한 뒤 사업에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했었는데 서류 취합을 내가 맡게 되었다. 그 날은 하루종일 서 있었던 날이라 피곤하기도 했고 빨리 집에 가고픈 생각밖에 없어서 얼른 정리하고 가야지했는데 설문조사 마지막 항목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위민지 대리님 덕분에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위민지 대리님 덕분입니다” 



손글씨로 또박또박 쓴 내용들을 본 순간, 마음이 따뜻해지는걸 느꼈다. 비록 업무적이긴 했지만, 사회에 나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느끼게 된 것 같다. 그 이후로 앞으로 일을 계속하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도움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어떤 형태의 말이든 상관없다. 회사 업무적으로든 일상에서든 내 능력이 되는 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아주 가끔 마음 따뜻해지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 것만으로도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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