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앞맵시 이복연 Sep 23. 2022

[시장 분석] IT 전문서 시장 오버뷰

IT 도서 시장 분석 시리즈

앞으로 몇 편에 걸쳐서 IT 전문서 시장을 출판사, 기획편집자, 독자 관점에서 분석해보는 글을 쓸 계획이다. 각각의 관점을 매번 명확히 나눠 기술하지는 않고, 꼭 필요할 때만 따로 언급할 계획이다. 이번 글은 그 첫 번째로, 시장 전체를 가볍게 조망해보며 앞으로 전개할 이야기의 물꼬를 터보겠다.


시장 영역을 분류해보자

IT 전문서 시장은 작다. 수십 개의 출판사가 뛰어들어 각축전을 벌이고 있지만, 인지도 면에서 손꼽히는 출판사의 직원 수를 말해주면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물론 너무 적어서.. 그래도 그 안에서도 영역을 나눠 들여다볼 정도의 규모는 된다.


영역을 나누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먼저 아래의 개앞맵시 분류처럼 개발자의 진로를 기준으로 나누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개앞맵시의 IT 전문서 영역 분류  

    공통 분야  

    언어와 컴퓨터 과학 기초    

          기본기 레벨업    

    전문 분야  

          인공지능    

          게임과 그래픽스    

          모바일    

          웹    

          백엔드    

          서버 운영과 데브옵스    


나는 이 분류에 독자, 즉 개발자의 시각을 잘 담아내려 노력했다(물론 빠진 영역도 많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이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펼치는 당사자인 출판사의 주된 관점과는 제법 거리가 있다.


출판사가 시장을 어떻게 보는지는 팀을 어떻게 나누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니, 잘 알 수 있겠지만.. 사실 팀을 나눌 정도로 거대한 출판사는 몇 없다.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출판사는 잘할 수 있는 특정 영역에 집중하거나, 기회가 손에 잡히는 대로 출간하기도 한다. 나는 몇 안 되는 큰 출판사의 조직 구성과 그 외 눈에 띄는 출판사들의 포트폴리오를 기초로 출판사가 바라보는 분류를 나름의 시각으로 그려보았다.


출판사가 바라보는 전문서 영역 분류(일부)  

    입문서  

    실무 기술(대중화 단계)  

    신기술  

    기본기 레벨업  

    교재  

    수험서  

    에세이  

    …  


말했다시피 내 나름의 시각이다. 실제로 이 정도로 세분화해 대응하는 출판사는 거의 없을 것이며,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는 출판사가 대부분일 것이다.


어쨌든 내가 이렇게 나눈 이유는 어느 영역에 속하냐에 따라 출판사와 편집자의 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음 그림을 보자.



앞서의 분류에 언급된 항목들을 ‘기술 안정성’, ‘책 수명’, ‘시장 규모’라는 특성을 축으로 삼아 도식화해보면 이처럼 각각이 점유하는 위치가 크게 다르다(정확한 데이터에 기초한 건 아니니 큰 그림만 보자). 이 외에도 독자의 성향, 저역자 풀, 집필 난이도와 기간 등 여러 관점에서 고민해볼 수 있다.


이처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 도전하여 살아남으려면 전략도 달라야 한다. 앞으로 함께 할 여정의 맛보기 차원에서 몇 가지만 예로 살펴보자.



입문서

입문서도 종류를 나눌 수 있지만, 우선 프로그래밍 언어 입문서만 생각해보자. 그중에서도 경력 프로그래머가 아닌, 프로그래밍에 처음 도전하는 독자를 목표로 하는 책만 생각하자. 이런 책의 목표는 프로그래밍 고수를 만든다거나 바로 실무에 투입될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니다. 프로그래밍과 친해지고 기초 개념을 익혀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해주는 게 목표다.


그래서 쉽고 재밌게 설명하는 데 집중하며, 최신 언어 명세의 첨단 기능은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책의 독자는 다양하다. 나이대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하고, 책을 읽으려는 목적도 다양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프로그래머가 반드시 거쳐가는 길목에 자리한다는 점이다.


이상에서 입문서 영역의 특성을 몇 가지 유추해보자.

    시장이 크다.  

    내용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기초만 다룬다.  

    쉽게 구성하고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네 번째가 신경쓰이긴 하지만, 기술적으로 어려운 건 없어 보이고 매력적인 시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놓친 특성이 있다. 하나씩 보자.


경쟁이 치열하다. 나에게 매력적이면 남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프로그래밍 6개월만 해봐도 책 한 권 쓸 수 있는 게 이 시장이다 보니, 실제로 엄청난 수의 책이 쏟아진다. 그래서 나만의 ‘특색’을 갖춘다는 것도 어렵고, 내 것이 더 낫다고 ‘홍보’하기도 어렵다.


독자들이 질문을 많이 한다. 이 책의 독자들은 프로그래밍 초짜다. 심지어 컴맹인 독자도 많다. 정말 많다. 그래서 기상천외한 질문이 쏟아진다. ‘이 정도는 알겠지’라는 가정이 굉장히 위험한 시장이다. 그렇다고 이런 독자를 외면하면 책 평판이 나빠진다. 진지하게 도전하려면 독자가 쉽게 질문하고 빠르게 답을 얻어갈 수 있는 시스템까지 고려해야 한다(예: 네이버 카페). 그래서 해외의 검증된 원서를 번역해 들여오는 전략도 거의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저자와 편집자는 더 쉽게, 더 친절하게, 더 잘 기억되게 하는 방법을 지속해서 연구/발전시켜야 하며,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전략과 실행력이 필요하다.


진입 장벽이 가장 낮아 보이지만, 실상은 가장 많은 노하우가 요구되는 출판의 첨단 분야인 것이다.


요즘은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메타버스니 하면서 IT를 궁금해하는 일반인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그래서 '비전공자를 위한' 류의, 입문서보다 더 쉬워야 하는 책들도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본격적으로 IT에 뛰어들려는 목적보다는 호기심 충족과 교양 쌓기 목적이 크니 이름을 지어보자면 '소개서' 정도가 되려나? 이 영역은 한창 꿈틀대며 활발히 진화하는 중이니 다음 기회에 정리해보겠다.


신기술

‘신기술’ 영역은 문자 그대로 최신의 트렌디한 주제를 다룬다. 빠르게 변하는 IT 업계에서도 얼리 어댑터들이 대상이다. 책보다는 기술들의 각축전이 벌어진다. 심하면 책이 나오기도 전에 기술이 사장되기도 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IT 기술을 선도하는 편은 못 된다. 그래서 이 영역은 집필서보다는 번역서 비중이 크다. 번역서는 외국 원서가 나온 후 작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출간을 앞당기는 데 한계가 있다.


이쯤에서 신기술 영역의 특성을 정리해보자. 

    주제가 다양하다.  

    아주 빠르게 변한다.  

    주로 해외에서 유입되는 첨단 기술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주제가 다양하면 개별 책의 파이는 그만큼 작아진다. 빠르게 변하므로 책의 수명도 짧다. 주로 번역서로 대응해야 해서 적기를 맞추기 어렵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참 매력 없는 시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요는 있다. 생각보다 크다. 그렇다면 이 시장을 잡으려면 어떤 전략으로 접근해야 할까?


다품종 소량 생산과 저품질 빠른 출간이 답일 수 있다. 전자는 자명한데, 후자는 보충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여기서 ‘저품질’이란 낮은 품질을 지향한다는 게 아니라, 품질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나름의 장치를 강구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영역과는 격차가 크다. 품질 때문에 계속 붙들고 있다가는 잠재 독자들은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다 찾아 스스로 공부하게 될 것이고, 자칫하면 기술이 먼저 죽어버릴 수도 있다.


다행인 점은, 이 영역의 독자들은 경험이 어느 정도 있고 문제에 봉착해도 스스로 헤쳐나갈 능력과 자세를 갖춘 사람이 많다. 새로운 기술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필요한 지식이 제때 준비되어 있다면 품질에 관해서는 그래도 좀 관대한 편이다.


이어서.. 사실 ‘다품종 소량 생산’에도 보충할 말이 있다. 다품종이면서 중복 투자도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 출간이란 것은 일정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큰 변수는 저자와 역자다. 대부분의 저역자는 부업으로 책을 쓰며, 전문적인 글쓰기 훈련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일정과 품질이 천차만별이다. 한 책만 바라보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그래서 우선은 다양한 주제를 골고루 건드려보고, 여력이 된다면 한 주제에서도 여러 권을 동시 진행하는 것도 위험관리 차원에서 괜찮은 전략이다.



실무 기술

‘실무 기술’ 영역은 ‘신기술’의 각축장에서 살아남아 시장에 정착한 기술들을 다룬다. 기술 자체의 성숙도가 많이 올라가서 큰 변화가 적거나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고, 현업 프로젝트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기술을 다룬다. 그래서 호기심 충족과 맛보기보다는 실무에 뛰어들 채비를 갖춰주는 책이 좋은 평을 받곤 한다.


이 영역의 독자들은 당장 실무에 필요하거나 취업에 도움 되는 지식을 얻고 싶어 한다. 혹은 안정된 기술을 기반으로 쓸만한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주제 기술의 큰 그림과 동작 원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프로토타입 수준의 동작하는 예제를 안겨줘야 한다. 실습 환경도 현업 환경과 비슷하게 갖춰주는 게 좋다.


다행히 프로그래밍 자체가 익숙지 않은 독자는 적어서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설명해주진 않아도 된다.

자연스럽게 이 영역은 시장 크기, 기술 안정성, 집필서/번역서 비중 등 여러 면에서 ‘입문서’와 ‘신기술’의 중간 정도의 특성을 보인다. 그 외 특기할 만한 특성은 뭐가 있을까? 


    꾸준한 버전업 관리  

    다채로운 예제와 진행 방식  


꾸준한 버전업 관리. 이 영역의 기술들은 보통 수명이 길지만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정기적으로 버전업되기 때문에, 시장을 선점한 책이라도 버전업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경쟁자에게 왕좌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주제 기술의 릴리스 일정을 주시하면서 저자와 긴밀히 협조하여 미리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한편, 개정판을 내야 할 시점에 기존판 재고가 잔뜩 쌓여 있다면 큰 골치이니 재고 관리도 신경 써야 한다.


다채로운 예제와 진행 방식. ‘입문서’는 기초만 다루기 때문에 복잡한 예제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신기술’ 쪽은 보통 그 기술이 목표하는 바가 분명하기 때문에 예제도 거기에 맞춰진다. 반면, ‘실무 기술’은 기술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응용 분야가 많이 넓어진 상태다. 그래서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와 어느 수준까지 다루느냐에 따라 구성이 아주 다채로워진다. 예컨대 기본부터 차근히 알려줄 수도, 최근 버전에 추가된 신기능을 알려줄 수도, 작은 예제를 많이 준비할 수도, 큰 프로젝트를 경험하게 해 줄 수도, 유용한 팁이나 문제 해결 노하우를 알려줄 수도 있다.


그래서 실무 기술 영역의 출판 기획자는 다양한 구성의 특성을 파악해두고, 예비 저자가 준비한 콘텐츠와 콘셉트에 맞게 적합한 구성을 가이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 쓰고 있는 <IT 전문서 시장분석> 시리즈 다음에는 이 주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칠 계획이다.



그 외 영역들은..

지금까지 세 가지 영역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봤는데, 이 외에도 기본기 레벨업, 교재, 수험서, 에세이 등이 남았다. 간략히만 집어보자.


기본기 레벨업

개발자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꼭 필요한 핵심 역량을 다룬다. 클린 코드, 리팩터링, 소프트 스킬, 알고리즘 문제해결 전략, 개발 방법론 등이 여기 속한다. '기본기'를 다루지만 제대로 다뤄야 하기에 배테랑 고인물이 되어서야 집필에 도전해볼 수 있다.


교재

대학이나 학원에서 교육용으로 쓰이는 책을 가리킨다. 교수나 강사가 현장 노하우를 담아 집필하는 경우도 많고, 잘 쓰인 단행본을 채택하는 경우도 많다. 학원에서는 주로 1~2달, 대학에서는 한 학기에 가르치기 적합한 구성과 분량을 원한다. 학습목표, 실습과제, 연습문제, 강의교안 등의 요소가 잘 갖춰져 있으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필수는 아니다(콘텐츠가 제일 중요).


특수한 용도다 보니 유통과 영업망이 다르다. 일반인이 서점에서 구매하는 비중은 크지 않고, 대부분은 학원가에서 총판이나 출판사에 직접 주문한다. 대중보다는 교수와 강사의 선택이 중요하다.


수험서

자격증 취득용 책을 말한다. 교재는 교과서 느낌이고, 수험서는 참고서+문제집 느낌이다. 프로젝트 관리,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컴퓨터 활용 등 분야가 정말 많다.


자격증과 실력은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자격증을 요구하는 시장은 의외로 상당히 크다. 주로 관공서나 SI 업종에서 요구된다. 요구되는 정도가 아니라 회사가 수주할 수 있는 프로젝트 규모와 내 연봉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비합리적이지만 현실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자신의 앞날이 어찌 흘러갈지 모르니 보험 차원에서 따 놓은 사람도 많다.


집필할 때는 기출문제와 트렌드 분석이 중요하고, 모의고사도 제공해야 한다. 저자는 당연히 해당 자격증 취득자여야 하고, 문제 출제자나 감독관이면 신뢰를 더 키울 수 있다. 대체로 시험 일정에 맞춰 매년 신간을 내놓는다.


에세이

개발자들은 주로 먹고사는 데 당장 필요한 책을 사 읽는다. 여가 시간에 책을.. 그것도 에세이를.. 그것도 IT 에세이를 읽는다?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분야의 책은 단기적인 화재성이 중요하다. 아주 유명한 저자나 선망받는 회사를 내세우거나, 최근 사회적으로 화두인 주제를 다루면 좋다. 책 성격상 기술을 깊게 다루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내용 자체는 시류를 덜 탐에도, 반짝 유행하고 나면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비운의 영역이다.



어떤 편집자가 필요한가

이번에는 주요 영역별로 담당 편집자에게 어떤 역량이 요구되는지를 알아보자. 입문서, 신기술, 실무 기술 영역만 가볍게 훑어보겠다.


입문서

기술 이해보다는 독자의 눈높이에 동기화하는 빙의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알아들었으니 넘어가도 되겠지' 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독자의 눈높이를 정확하게 알아내려면 실제 독자들을 많이 만나봐야 한다. 원고를 보여주고 부족한 점을 피드백받자. 무엇을 모르고 어려워하는지 파악하자. 그리고 끈기와 집요함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저자에게 끝까지 묻고 답을 얻어내야 한다.


이렇게 이해한 바를 쉽게 풀어주는 능력도 필수다. 짧고 명쾌한 문장으로 교정해야 하고, 비유할 때는 (IT인이 아닌) 일반인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 글솜씨가 다가 아니다. 개념 이해에는 그림만 한 게 없다. 글만으로는 어렵게 느껴진다면, 직접 그림을 그려서 '이게 맞나요?'하고 저자에게 물어보자. 맞다고 하면 그림을 중심에 놓고 설명을 고치면 글도 훨씬 쉬워진다. 때론 구성 방식을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같은 내용을 훨씬 쉽게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입문서는 호흡을 짧게 가져가야 한다. '입문'자에게는 책에 담긴 모든 것이 새로울 것이다. 작게 나눠서 앞의 내용을 머릿속에 정리할 틈을 줘야 한다. 저자는 이미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서툴 가능성이 크다.


쉽게 풀어주는 데서 그치면 안 되고, 쉽게 보이게 하는 능력이 더해져야 한다. 입문서는 시장이 큰 만큼 경쟁자도 많은데, 그중에서 선택받으려면 첫인상이 무척 중요하다. 입문자는 시장 1위 도서나 신뢰하는 지인 혹은 커뮤니티가 추천하는 도서를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많은 선택을 받는 게 바로 '쉬워 보이는' 책이다. 책 판형, 두께, 종이, 구성, 폰트, 줄 간격, 그림과 디자인 요소 배치 등 많은 것을 고민해야 한다. 멋진 콘텐츠가 겉모습 때문에 외면받는 일은 없도록 하자. 디자이너, 예비 독자들과의 소통을 잊지 말자!


독자의 학습을 이끌어줄 필요도 있다. 학습 일정표로 목표 의식을 북돋아주거나, 정리 노트를 추가해 복습을 돕거나, 출간 후 스터디 모임을 지원해주는 등의 활동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입문서는 마케팅도 매우 중요하다. 입문 후 실무자로 안착하게 되면 필요한 기술이 구체적으로 정해지고, 관련 책들도 직접 물색해 구매하는 비중이 커진다. 반면 입문자들에게는 출판사가 먼저 다가가 적극적으로 구애해야 한다. 커뮤니티, 언론, 서점 이벤트, SNS, 카페, 스터디 등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편집자 혼자 다 책임져야 하는 작은 출판사보다는 전문 마케터를 둔 큰 출판사가 훨씬 유리하다.



이와 같이 입문서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지만, '좋은' 혹은 '성공하는' 입문서는 아무나 쓸 수 없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가장 많은 노하우가 요구되는 출판의 첨단 영역이다. ([도서 분석] 혼자 공부하는 C 언어 참고)


신기술

동향 파악, 빠른 판단력과 일처리, 멀티 태스킹 능력이 요구된다.


업계 동향을 항시 주시하며 가까운 미래에 어떤 기술이 뜰지, 책으로 내놓았을 때(반년이나 일 년 후) 구매할 독자가 몇 명이나 될지 등을 골라내는 선구안이 좋아야 한다. 스스로의 선택에 자신이 없다면 업계 전문가들과 인맥을 잘 쌓아놓고 수시로 조언을 듣는 방법도 추천한다. 자금에 여력이 있다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략이 실제로 먹히는 영역이기도 하다.


IT는 수많은 기술의 치열한 각축장이기 때문에, 아무리 선구안이 좋더라도 타율이 높기는 어렵다. 그래서 다른 영역보다 훨씬 많은 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일정 관리 측면에서의 꼼꼼함이 중요하다. 저역자에게 수시로 연락하여 텐션이 떨어지지 않게 지원해야 하니, 소셜 스킬도 요구된다. 한편 들어온 원고를 빠르게 처리하여 출판 파이프라인이 정체되지 않게 해야 한다. 원고가 한꺼번에 몰릴 때도 있고 전혀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다. 원고 없다고 손가락만 빨아서도 안 되고, 원고가 밀렸다고 기획을 완전히 내팽개쳤다가는 미래 먹거리를 놓칠 위험이 크다. 눈앞의 일에 매몰되지 말고 한 걸음 물러나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구분해 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편집 측면에서는 커다란 오류와 기본적인 오탈자 잡아주고 빠르게 출간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신기술을 찾는 독자는 경험 많은 전문가일 가능성이 커서 단순 오류는 스스로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 이들은 정보에 목말라 있어서 책을 내어주는 것만으로 고마워할 것이다. 물론 모두가 마음 같지는 않기 때문에 악평이 가장 많이 달리는 영역이지만, 감안하고 가야지 어쩔 수 없다.


실무 기술

시장에 안착한 기술을 다루므로 주제 선정은 크게 고민할 게 없다. 보통 같은 영역에서 경쟁하는 기술은 많아봐야 서너 가지다. 1~2위 기술에 우선 대응하고, 3~4위 쪽은 경쟁이 적다면 혹은 라인업 갖추기 차원에서 노려볼만하다. 그래서 대신 경쟁서 분석, 책의 유형 이해, 유형별 집필 가이드 능력이 상대적으로 더 요구된다.


이 영역에서 많이 활용되고 성공한 책의 유형에는 몇 가지가 있다. 다음은 그중 일부다.


완벽 가이드: 주제 기술 전 분야를 깊고 자세히 설명. 예제는 그때그때 짤막한 토막 코드로..

만들면서 배우는: 따라 할 수 있는 예제로 빠르게 경험. 설명 깊이는 낮고, 예제 완성도는 높은 편

튜토리얼: 퀵스타트 + 다양한 기본 예제

쿡북: 다양한 기능 혹은 상황별 작은 예제 다수 제공. 찾아보기 형식 구성이라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됨

실전: 소수의, 실전에서도 의미 있는 수준의 핵심 예제. 예제별 난이도 배분

설계 패턴: 쓰임새별 설계 모범사례 모음

이펙티브: 고급 노하우, 알아두면 유익한 깊은 지식 모음

최적화: 성능 중심 고급 노하우

..


편집자는 이런 유형들이 있음을 인지하고 유형별 특성을 파악해두어야 한다. 이를 기초로 공략할 기술과 독자 특성에 가장 적합한 유형이 무엇인지, 경쟁서는 어떤 전략을 택했는지, 비슷한 유형으로 대응하려면 어떤 점을 차별화하고 강화할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집필서로 대응할 때는 저자와 논의해 선택한 책 유형에 적합한 맞춤형 책 쓰기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유형별 효과적인 책 쓰기 전략은 별도 시리즈로 준비 중이다).


원고를 다듬을 때는 입문서 때 이야기한 독자의 눈높이에 동기화와 쉽게 풀어주는 능력이 있으면 좋다.


물론 독자의 눈높이는 입문서 때와 확연히 다르다. 입문서 때는 모르는 걸 책 안에서 다 설명해줘야 했다면, 실무 기술서에서는 참조 링크 제공 정도로 충분하다. 입문서 독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해야 안전하고, 실무 기술서 독자는 배경이 다양하다고 가정해야 안전하다. 독자마다 배경지식 종류와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너무 세세한 설명은 오히려 많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실무 기술서 독자는 '당장 업무에 필요한 기술을 빠르게 익히기'가 주된 목표이므로 빠르게 목표점에 도달하게 해주자.


쉽게 풀어주는 능력은 입문서와 큰 차이는 없다. 짧고 명쾌한 문장. 그림으로 설명. 효과적인 구성 방식 고민 등은 모두 같다. 단, 읽는 호흡은 입문서보다는 길게 가져가자.



영역을 확대하고자 한다면..

이미 여러 영역을 성공적으로 분리 대응하고 있는 큰 출판사는 영역별 차이를 잘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쪽 영역에서 이제 막 자리를 잡고 세를 확장하려는 경우는 주의해야 한다. 이미 성공해본 경험과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정답이라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무대일 수 있고, 나의 성공한 과거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영역별로 독자의 니즈가 다르고, '좋은' 책의 조건이 다르고, 경쟁자가 다르고, 유통과 영업망이 다르다. 새로 진출하려는 분야를 깊이 분석해본 후, 나의 강점은 뭐고 단점은 뭔지, 정말 경쟁우위에 설 수 있는지, 어떤 면을 보강해야 하는지를 냉정히 판단하고 준비해야 한다.


★ 이 글은 꽤 오래전에 작성하던 시리즈의 첫 편입니다. 출판계를 떠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그때까지 배우고 느낀 것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일이 꼬이면서 홀딩했던 게 아직까지 재개를 못하고 있네요. 글감은 많이 모아놨지만 말끔히 정리된 건 별로 없습니다. 이번 글도 완성본이 아니지만, 제법 채워져 있어서 급하게 모양만 갖춰 마무리해봤습니다. 언젠가 제대로 마무리할 날이 오길 소망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