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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Jul 30. 2024

말없는 사람, 말 많은 사람

그러나 외국어 회화는 말 많은 게 장점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했지만 늦게 프랑스어를 배우고 이제 조금 생각하는 걸 말할 수 있게 되니 말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없는 회화 수업 시간에 되도록 많은 말을 하려고 한다. 물론 다른 학생을 생각해서 적당히 말을 줄이려고 하지만 때로 말이 계속 나와 자제하지 못한 걸 후회할 때가 있다. 그런 걸 알면서도 막상 다른 사람이 말을 못 하게 눈치를 주면 ‘아차’ 싶으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나도 나보다 더 말이 많은 사람의 말을 들으며 피곤했던 경험이 있어서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는 시점에 적당히 말을 돌리는 기술은 필요할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미국인의 경우 “말 많은 사람을 대처하는 방법”이 여러 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데 그중 회화 수업에 사용하면 적당할 것 같은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하겠다. 첫째, 상대방에게 시간을 정해주는 거다. “제가 5분 정도 시간이 있어요.” 직장이나 길에서 사람을 만났는데 상대방이 말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안다면 이렇게 시간을 미리 알려주라고 했다. 회화 수업이라면 그룹에 있는 사람이 한 질문에 대해 3분 정도 말하는 시간을 정해주는 것도 좋을 거다.


둘째, 확실하게 한계를 정해주라고 했다. 즉, 적당한 시간이 됐을 때 단호히 상대방에게 대화의 끝을 알리는 거다. “이야기 즐거웠어요. 그러나 이제 제가 일정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회화 수업이라면 말을 좀 길게 얘기하는 사람이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게 감지되면 “죄송하지만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도 될까요?”라고 공손하게 양해를 구하면 말하는 사람도 자신이 오래 이야기했다는 걸 인지하고 있을 테니 감정이 상하지 않고 이야기를 끊을 수 있을 거다.


상대방이 말을 길게 하거나 요지에서 빗나간 말을 한다고 해서 경청하지 않거나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다면 말을 하던 사람은 자신의 말을 끊은 사람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지만 무안할 수 있고 때로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말을 끊을 때는 “말씀하는데 죄송하지만, 혹시 우리 다른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라고 친절하고 정확한 의사 전달을 하는 편이 핸드폰을 본다든가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보다 무례하지 않을 거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외국어 습득에서 특히 회화는 말을 많이 해야 향상된다. 물론 모국어 습득처럼 듣기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잘 알아들어도 말하기는 실제로 말하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 특히 외국어로 구사할 때 발음을 무시할 수 없다. 발음에는 억양(accent)과 어조(intonation)가 모두 포함된다. 어느 정도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목표  외국어의 원어민이 예의상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유창함(fluency)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책을 큰 소리로 읽거나 녹음된 대화를 같은 속도로 반복해서 따라 하는 쉐도우 리딩(Shadow reading)이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목표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되도록 많이 찾아 다양한 원어민과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라 말이 없는 사람을 동경한다. 내 생각에 말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거나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다. 많은 경우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는 사람이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굳이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있으면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어서 조용하다. 남편을 보면 그런 사람인 것 같다. 그게 부럽다. 남편은 어디를 가든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남편이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장소는 병원에서 환자나 레지던트 간호사 등에게 설명을 하거나 처방을 지시할 때다. 그래서 병원 밖에 나오면 왠지 긴장하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말이 없나? 그래도 말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며 상황 판단을 신중히 해서 실수를 덜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말 많은 사람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목표 외국어로 빨리 말하고 싶어서 열심히 말을 연습한다는 거다. 매일 뉴스를 듣고 AI와 대화하고 필사를 하고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이렇게 외국어를 공부할 때 빼고 말 많은 건 딱히 이득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즈음엔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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