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저널 (1)
저널리즘의 프록시미떼(proximités) 개념에 따르면 매체는 독자와의 심리적·지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강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지역 기반 매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도시민들의 감각과 생각을 형성하는 공동의 플랫폼이 된다. 매일 아침 펼쳐지는 일간지 지면에는 그 도시의 불안, 열정, 상상, 저항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르몽드, 르 피가로, 리베라시옹은 프랑스의 3대 언론이자, 파리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일간지다. 각각 국제주의, 보수주의, 휴머니즘의 가치가 도드라지는 세 매체를 단순한 좌파-우파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진부하다. 오늘날의 독자는 직업, 문화적 자본, 사회적 감수성에 따라 각기 다른 매체 속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찾기 때문이다. 특정 종이신문을 들고 다니는 이의 정치 성향은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만, 그가 사는 아롱디스망(arrondissement)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파리 기반의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68 혁명의 정신에서 태어난, 비교적 신생 매체다. 그동안 소외된 주제들을 예술적 사진과 문학적인 문체로 담아내며 자유로운 시선과 실험정신이 살아 있는 독특한 감각을 지면 위에 펼쳐왔다. 4월의 파리 도서축제를 맞아 임시 편집장을 맡은 캐나다의 작가 마가릿 애트우드와 28명의 작가가 참여한 4월 11일 자 특별호는, 문학과 뉴스의 경계를 허물며 그 정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다.
파리 15구, 몽파르나스 옆 한 빌딩 안. 둥근 테이블에 기자와 작가들이 둘러앉아 문학과 진실을 섞은 기사를 만들었다. 날씨는 곧 흐려질 예정이고,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며, 패션계에는 AI가 곧 의상을 만들어 낼 참이다. 마크롱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빠질 수 없는 건 트럼프와 관련된 이야기들. 수압 제한 규정을 폐지하며 "샤워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선언보다 더 황당한, 그의 관세 정책까지.
'차가운 지면(미리 기획된 기사)' 사이사이에 마감 직전까지 열기가 식지 않는 '뜨거운 지면(실시간 속보)'을 끼워 넣으며 서른 개의 주제를 빠르게 채운다. 이어서 주제와 원고별 분량이 가장 어울리는 인물에게 분배되고 나면, 곧 거대한 혼란 속에도 질서가 부여된다. 팩트기반의 정보성 기사라 해도 모두 하루가 채 되지 않는 헐떡이는 분주함 속에서 개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손끝으로 엮여 완성되는 것이다.
급진적이고 첨예했던 리베라시옹의 쨍한 빨간색 테마는 발행인중 한 명인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죽음 이후 서서히 바래져 갔다. 재정적 타협 속에서 '실용 좌파', 즉 제도 안의 좌파로 분류되었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는 다른 매체들과 마차가지로 몰락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극우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오늘날에도 리베라시옹은 정치 담론을 넘어 개인 권리, 사회적 소수자, 문화적 다양성에 방점을 두며 여전히 프랑스 '해방'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이번 특별호에 담긴 서른 개의 실험적인 기사 위로 여명일지 노을일지 모를 다채로운 붉은빛이 흐르고 있다 : 「미국 : 극우 혁명의 증상들」, 「트럼프 : 참을 수 없는 타인의 가벼움」, 「출판계에는 검열이 인쇄된다」, 「기상 예보: 오늘은 불의(不義)의 비가 내립니다」, 「O 씨의 시선으로 본 우크라이나」, 「모로코, 침묵의 시대」, 「농장을 이어가는 건 삶의 이치입니다」, 「프렌 교도소에서도 앙리 4세 고등학교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Nasa, 무한한 적자, 그 너머로!」, 「자본주의가 만든 것은 데이터 센터인가, 재앙 센터인가」, 「파리지앵이 마르세유에 정착할 수 없는 이유」, 「브뤼노 르타이오의 이방인을 향한 이상한 집착」, 「히틀러가 집권하던 무렵, 나의 할아버지는...」, 「나는 더 이상 딸들이 아버지를 감싸지 않았으면 한다」, 「IC3PEAK, 우울이여, 너를 사랑한다」.
*프랑스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