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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관계의 소통

같은 처지의 내담자와 상담자

by 세만월

학폭 피해로 곤란을 겪고 있는

내담자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 주는 저희 자식 말고

저희 내외가 상담을 받아도 될까요?

음.. 그래도 OO이가 내담자이기 때문에

○○이를 안 보는 건 안 될 것 같아요.

어떤 일로 상담받고 싶으실까요?

학폭 피해로 저희도 답답하고 그래서..

음.. OO이는 어떤가요?

많이 피곤해 보여요. 몸도 안 좋은 거 같고요.

어떻게 안 좋을까요?

복통도 있고 두통도 있고 쳐져 있네요.

그럼, 그날 OO이랑 상담 조금 하고

부모님을 뵙는 건 어떠세요?

좋아요, 그럼 그날 뵐게요.


청소년 내담자와 먼저 상담을 했다.

학폭 심의가 열리기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사실 언제 열릴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분명한 건 이번 학기는 이렇게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상담 처음 왔을 때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어떻게 좋아질 수 있었을까?

친구들도 많이 지지해 주고,

내가 잘못한 것이 없으니깐 괜찮아, 하고 생각했어요.

그럼, 부모님 하고 상담을 할게.

부모님이 선생님과 상담받는 건 OO이는 어떠니?

저는 상관없어요. 부모님도 관련 처리하느라

하고 싶으신 말이 많을 거 같아요.

초반 부모님이 지지를 안 해주는 것 같아 서운해 울었었잖아.

감정적으로 저를 대하지 않으셔서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부모님 하고 얘기 나눠볼게.


아버님, 어머님이 자리에 앉았다.

학폭 피해 대처로 그간 힘들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번에 이어 2, 3주 간에 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변호사를 선임하고, 자잘한 많은 일들을 처리하며

맘고생한 이야기들이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고,

아버님은 한숨을 쉬며 허공을 쳐다봤다.

나도 부모님도 한 문장 한 문장이 진심이었다.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분들에게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나의 문장이 그분들에게 힘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OO이를 곤란하게 만든 그 친구를 다른 학생들은 멀리했다 하더라고요.

OO이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지만 오히려 챙겨주었다고 하고요.

다른 사람들이 멀리한다면 이유가 있었을 텐데,

본인도 그걸 느꼈다면 멀리해야 했었는데,

자기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도 돼요.

저는 이번 상담에서 이 부분을 OO이가 보았으면 해요.

(부모님도 고개를 끄덕이었다.)

맞아요, 선생님. 저희가 이야기를 자주 하지만, 잘 안 되었어요, 그게.


OO이는 보니깐, 아주 선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일을 통해 견디면서 내공을 쌓을 거 같아요.

그러면 본인이 본인을 지키는 방법을 조금은 알아가요.

여론도 OO이한테 불리하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

힘드시면 또 이렇게 오셔서 얘기 나눠주세요.


부모님과 청소년 내담자가 돌아가고 상담실에 머물렀다.

그다음 상담이 바로 있었지만 1분 정도 있었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도 그들도 이 시간을 견뎌내며 같이 성장한다.

서로가 내공을 쌓는다.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내게 없었다면

그들과 나누는 얘기에 진솔한 나눔에는

무언가 결핍되어 있었을 것 같다.

상담을 하려고 송사에 휘말렸다고 하기엔

너무나 의미를 갖다 붙이는 것 같지만,

나의 갖은 경험들이 내담자들과 깊은 소통을 나눌 때

빛을 발한다는 것은 알겠다.


참으로 쉬운 일이 없다.

인생에 거저라는 건 없다는 말이 실감도 된다.

그러하므로 겸손하자, 감사하자, 또 한 번 나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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