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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Silent Spring]

레이첼 카슨

by 전익수

마치 추리 소설같은 제목의 이 책은 생태학 분야의 고전으로 훌륭한 명저이다. 미국의 해양 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이 1962년에 출간한 이 책은 올해 60번째 생일을 맞이 했다. 위 표지의 이 책은 출간 60주년 기념 한국어 특별판이다. 저자는 타임이 선정한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가운데 한 사람인데, 이 책을 읽으면 선정된 이유가 충분히 공감된다.

레이첼 카슨은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다가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꾼 독특한 학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글은 정확한 과학적 지식을 시적으로 읊조리는 감각적인 문장과 결합되어 생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살충제 제조업체와 무책임한 정부관료를 준엄하게 직책하기도 하고, 미련하기 그지없는 대중의 짧은 생각을 지적하는 분노의 소리가 함께 있다.

1950년대는 여성이, 그것도 독신녀가 남성중심의 과학계에서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기가 무척 어려운 폐쇄적인 사회였다. 저자는 환경문제를 고발하는 프리랜서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남자라고 느끼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기고문에 ‘R. L. 카슨’이라고 서명하면서 외롭게 환경문제를 고발하였다.

저자는 무분별하게 살포되는 화학물질로 인한 자연의 파괴를 대면하라고,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자본주의적인 기업의 탐욕을 멈추라고 그 당시로는 혁명적인 주장을 하였다. 저자는 자연자원의 고갈, 대기권의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해양수산자원 남획, 불공정한 해외무역, 열대우림 파괴, 생물 멸종 등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누구보다 훨씬 더 빨리 예견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에서 살충제 DDT와 같은 화학물질이 무분별하게 대량 살포되면서 자연계의 식물과 동물에 끼친 심각한 악영향과 결국 사람의 몸에 누적되어 생명을 해치는 심각한 환경파괴를 고발했다. 저자는 산림과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항공기로 무차별적으로 뿌리는 살충제와 제초제가 곤충과 새를 포함한 야생동물을 위협하는 것과 결국 인체에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 책은 전세계에서 환경운동을 촉발시켰고, ‘침묵의 봄’이 불러온 대규모 시민의 항의로 인해서 미국에서는 1972년에 DDT의 사용을 전면 중단하였다.

복잡한 연결고리로 역인 환경문제를 하나의 지구 생태계 문제로 집대성하여 일반 대중, 과학자, 정치인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하여 새로운 인식으로 의미있는 환경운동을 촉발시킨 것이 저자의 큰 업적이다. 저자가 60년전에 쓴 이 책에서 살충제와 제초제 같은 화학물질로 인한 환경과 생태계 문제를 분석한 아래의 통찰은 지금 읽어도 안타깝게도 여전히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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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 단계이고 환경요인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역시 최근에 시작되었다. 방사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는 기꺼이 인정하는 몇몇 과학자도 화학물질이 세포에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것에는 의문을 표시한다. 그러나 화학물질은 인간의 세포분열에 염색체의 복사의 이상을 유도하여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배아세포의 정상적인 성장과 복사를 방해한다.

산업화로 인하여 암 같은 악성질환이 등장하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은 1875년경 부터이다. 질서정연하게 이루어 지던 세포분열 과정이 왜 갑자기 거칠고 조절할 수 없는 암세포 증식으로 변질되는 것일까? 방사능이나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상해를 입은 세포가 나름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세포호흡 에너지 대사 시스템을 변형하거나 염색체 이상을 일으킨 것이 암세포이다.

인간은 지구 생명체 중에서 유독 혼자만 암 유발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다. 유해한 화학물질이 우리 생활에 등장한 이유는 좀더 편한 생활을 추구하기 때문이고, 이를 위한 화학물질의 제조와 판매를 경제와 산업의 한 부분으로 편입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화학물질이 함유되지 않은 음식을 찾으려면 아주 멀리 떨어진, 문명의 혜택이 닿지 않는 원시의 섬으로 가야 한다.

화학물질의 '안전 허용량'의 인정과 관련하여 '잔류 허용량 기준'의 제정은 농부와 가공업자들에게 생산비용 절감이라는 혜택을 주기 위해 많은 사람이 먹는 음식에 독성 화학물질의 사용을 허가하는 것과 다름없다. 과학적 증거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과학자도 때로는 어쩔수 없이 해악의 확실한 증거를 부인하기도 한다.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가 과학의 본질적인 문제로 혼란을 격게 되면 합당한 공공정책의 수립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미생물로 인한 대부분의 전염병은 방역과 위생환경의 개선으로 극복되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발암물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암을 예방하는 것이 치료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며 효과적이다. 아직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과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위하여 암 발생의 환경요인을 규명해 제거하는 노력은 암에 걸린 사람의 치료법 개발과 함께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암의 치료에 훨씬 매달리고 있다. 암의 예방보다는 암환자의 치료가 훨씬 더 극적이고 구체적일 뿐더러 더욱 화려하고 보답도 크기 때문이 아닐까?

세포분열을 중단 시키는 효과 때문에 사용하는 화합물은 저장 중인 감자가 싹을 틔우지 못하도록 하는 보존재로 사용된다. 싹이 안나는 감자와 모기가 없는 앞마당을 위해 사람들은 너무 비싼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화학 방제법으로는 해충없는 세상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자연을 통제한다."는 말은 생물학과 철학의 네안데르탈 시대에 태어난 오만한 표현이다. 곤충을 향해 겨누었다고 생각하는 무기가 사실은 이 지구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말로 크나큰 불행이다. 방제 대상이 되는 유기체와 이 유기체가 속한 전체 생명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생물학적 방제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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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시절에 살던 영등포의 허름한 건물 2층은 다다미가 깔린 작은 방이었다. 다다미 밑에는 빈대가 들끓었고 밤사이 팔다리를 물리면서 잠을 설쳤던 기억이 있다. 당시 농약가게에서 구입한 낮선 제목의 성분은 더더욱 모르는 농약을 물에 적당히 희석하여 마스크도 안쓰고 숨을 참아 가면서 손 분무기로 방에 흠뻑 뿌렸던 기억이 난다. 그 때 흡입한 화학물질의 일부는 지금 나의 몸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을거라고 생각된다. 해마다 전세계에서 약 2천여종의 화학물질이 새로 만들어 진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 모든 것을 인간이 안전하게 잘 관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식물과 동물은 지구 생명계를 구성하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일부이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일부이고 거대한 생명 흐름에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인간본성의 어두운 측면이 아닌 생명이 지닌 가능성과 미래 약속을 위해서 천천히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여전히 이 책이 제기한 논란 속의 세상에 살고 있으며, 공공의 선을 위하여 어떻게 행동할지 또 환경 정의를 위하여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지 명쾌한 답을 갖지 못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살충제 남용으로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이로 인한 생명의 위험성을 낱낱이 고발하면서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이 책을 읽고 나서 출간 후 60년이 지난 현재에도 과거의 고전같은 느낌이 안드는 것은 현재도 ‘침묵의 봄’이 예견했던 암울한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여전하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오히려 더 교묘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나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침묵의 봄'을 만드는 공범이고 동시에 피해자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의 경이와 현실에 명확하게 집중할수록 인류 파괴의 고통을 덜 겪게 될것이다. 경이와 겸손은 온전한 감정이고 파괴에 대한 욕망과는 절대 함께할 수 없다."

저자가 그토록 강조한 경이와 겸손은 이 책 '침묵의 봄'이 우리에게 남겨준 선물이다. 안타갑게도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하고 2년 후인 1964년에 유방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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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ENDIX ]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는 잘 알려진 살충제중의 하나이다. DDT는 1874년 처음으로 합성되었으나, 1939년까지 이 물질이 곤충에게 독성을 준다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DDT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말라리아, 티푸스를 일으키는 모기의 제거와 군대와 민간에서 여러 곤충으로 인해 일어나는 질병의 구제에 사용되었고. DDT의 살충능력을 처음 발견한 스위스 화학자인 파울 헤르만 뮐러(Paul Hermann Müller)는 1948년에 그가 「여러 절지동물의 접촉독성을 나타내는 DDT의 높은 효과를 발견」한 이유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1943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티프스를 박멸하기 위하여 연합군이 사람들에게 DDT 가루를 뿌렸다. 여기서 고무적인 결과를 얻은 후, 1945~1946년 겨울에 한국과 일본에서 이(곤충)의 퇴치를 위해 200만명에게 DDT를 사용해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1950~1951년 한국 군인에게 DDT 가루를 뿌린후에는 오히려 이가 더 많이 퍼졌다. 몇년 사이에 곤충이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DDT는 1950년대 초반부터 농업분야에서 살충제로 쓰이게 되었고, 곧 생산과 사용이 급한 상승세를 보이게 된다. 화학적 살충제가 산림보호와 농업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이 당시에는 이런 화학물질을 비행기를 이용하여 대량으로 살포한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최초 살충제인 DDT를 1에이커(1,224평/4,046m^2) 면적당 1파운드(454gm)를 공중에 살포한 것만으로도 산과 하천에 살고 있는 수 많은 새와 물고기가 죽었다. DDT 이후로 살충제는 계속 새롭게 개발되었는데, 10년후 개발된 헵타클로르 1파운드의 독성은 DDT 20파운드와 맞먹었고, 디엘드린은 DDT 120파운드의 독성에 달했다. DDT가 본격적으로 살포되기 전에 태어나서 죽은 사람의 생체조직에서는 DDT나 유사 화학물질이 검출되지 않았으나 1950년대 중반의 보통사람의 인체 지방조직에서는 5~7ppm의 DDT가 검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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