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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별고래 Aug 30. 2024

햇빛만 있다면 행복해

스웨덴의 휴식 시간 (2) : 스웨덴의 여름 바이브 

스웨덴의 여름에 집 안에만 있는 사람, 모두 유죄


스웨덴의 여름 : 7, 8월, 5일 안팎의 아주 더운 날씨를 제외하면 여름 내내 22도, 23도 정도의 선선한 날씨를 느낄 수 있는 스웨덴의 여름. 햇빛은 제법 따갑지만, 그늘에 있으면 얇은 바람막이 점퍼가 생각날 정도의 쌀쌀한 바람이 불기도 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길고 어두컴컴하며, 눈비가 오다 말다 하는 우울한 날씨를 견뎌내고 찾아온, 1년 중 유일하게 자연 비타민D를 섭취할 수 있는 여름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래서 '미드솜마(midsommar)'라는 여름 축제는 스웨덴에서 가장 큰 축제 중의 하나이며, 이 날 스웨덴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껏 여름과 햇빛을 즐긴다. 


 



나와 남편이 처음 스웨덴에 도착한 시기는 1월 말이었다.


스웨덴에는 이런 말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은 아무리 어둡더라도 견딜만하지만, 1월 그리고 2월은 스웨덴의 최악의 시즌' 

(내가 사는 예테보리는 가장 해가 짧은 동지에 오전 8시 30분쯤 해가 떠서 오후 2시면 벌써 어둑어둑해진다)


우리가 경험한 최초의 스웨덴은 그런 '최악의 시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스웨덴에 도착했을 때 도시 모두가 고요했다. 

이 도시엔 사람이 살긴 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을씨년스럽고, 시내에 나가도 길거리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으며, 날씨는 늘 흐려 비도 눈도 아닌 것이 매일 추적추적 내렸다. 

바람은 또 왜 이렇게 많이 부는지, 밖에 한 번 나갔다 들어오면 머리가 산발이 되기 일쑤고, 온몸은 비로 다 젖기 때문에, 나는 스웨덴에 산 이후로 화장이나 드라이 같은 '꾸밈 행위'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린다던 여름이 시작되면 도시의 분위기가 180도로 바뀐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겨울에는 어디에 있다가 다 나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딜 가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런 북적북적한 바이브는 5월이 되면 슬슬 시동을 건다.


5월은 완전한 여름은 아니지만, 온갖 고등학교, 대학교의 축제로 매주 주말이 되면 거리마다 갖가지 퍼레이드로 들썩이기 시작한다.

길거리엔 하나 둘 젤라토와 아이스크림 가게가 오픈하기 시작하고, 동네마다 하나씩은 꼭 있는 꽃집들이 파랑 노랑 빨강 꽃들을 거리로 내놓기 시작할 때, 나는 비로소 '여름이 시작되고 있구나.'를 느낀다.


그러다 6월이 되면 여름 분위기가 솔솔 풍기는데, 이것은 곳곳에 있는 공원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피크닉 가방에 샌드위치며 커피 같은 음식을 담아와 먹기도 하고, 돗자리를 꺼내 잔디밭에 깔고 자유롭게 누워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옷 혹은 비키니만 입고 일광욕을 즐긴다. 


그리고 아파트마다 있는 발코니에 속옷이나 수영복만 입고 사람들이 나와 앉아 맥주와 와인을 마시면서 바비큐를 굽기 시작한다면 스웨덴의 '진정한 여름'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스웨덴 여름의 절정은 스웨덴의 여름 축제 미드소마(midsommar)에 가면 느낄 수 있다.

스웨덴어로 '한 여름'이라는 뜻을 지닌 이 여름 축제는 1년 중 가장 해가 길다는 '하지'에 열린다. 


주로 공원에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전통 의상을 입으며, 특히 여자들은 꽃이 달린 꽃왕관 같은 헤어밴드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 스웨덴의 오피셜 웹사이트 visitsweden.com


이날 스웨덴 사람들은 제철 감자를 먹고(스웨덴의 주식), 숲에서 바로 따온 다양한 종류의 베리를 먹으며, 술을 마시고, 친한 지인 혹은 가족들과 저마다 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우리의 추석처럼 가장 큰 명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표적인 전통 놀이 'kubb' : 우리나라 비석 치기와 매우 비슷한 점이 신기했다. 출처는 visitsweden.com




나와 남편은 스웨덴 이주 첫 해 여름 축제 미드솜마 때 동네에서 가장 큰 공원에서 축제와 공연을 한다기에 구경을 갔다. 


그날은 정말 예테보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곳에 모인 것처럼 공원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공원 내 가장 큰 잔디밭 중앙에 커다란 이파리 장식 나무 막대(maypole)를 꽂고 손을 맞잡은 사람들이 그 주위를 빙글 빙굴 돌면서 춤을 추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이 모습을 처음 본 나 같은 외국인들은 생소한 그 광경을 사진 찍느라 바빴다.


그리고 그 주변 잔디밭에는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앉아있거나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한 가지 놀라운 점은 하나같이 너무나 행복한 표정과 미소를 짓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기야, 저 사람들 표정 따라 할 수 있겠어? 나는 못 할 것 같아. 어떻게 저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있지?"

"그러게. 정말 행복해 보여."

"나는 한국에서 사람들이 저런 표정을 짓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나도 그래."


마치 천국으로 올라가는 천사가 저런 표정을 지을까?

정말 세상 걱정 근심 하나도 없다는 표정은,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누워있는 지금 이 순간을 그 어떤 시간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주변에 개가 뛰어다니든, 애기들이 자전거를 타든, 사람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햇빛' 둘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는 듯한 사람들,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을 처럼 본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나도 언젠가 저런 표정이 나올까?"

"글쎄... 우리는 좀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그게 배우고 노력한다고 될까?..."




스웨덴 사람들의 기분은 날씨에 의해 참 많이 좌지우지된다. 


해가 없고 추운 겨울에는 우울한 기분을 떨쳐 보이려 방 안에 조명을 달거나 촛불을 켜고 좀 더 밝은 색의 인테리어를 하려 노력하는 반면, 해가 긴 여름에는 길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이런 단순하고 순수한 행복도 나는 그들의 라곰(Lagom)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대단하지도, 큰 무엇도 아닐 수 있지만, 지금 내가 가질 수 있는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느끼는 지금의 마음.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노는 어린아이들을 보는 듯도 하다. 


우리는 그에 비해 생각도 많고 걱정도 많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걱정들은 대부분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어떻게 될지 모를 불안함'인 경우가 많다. 


왜 우리는 어떻게 될지도 모를 내일을 위해 현재를 자꾸 희생하려 하는 걸까. 

그리고 그런 삶이 더 가치 있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렇게 충분한 햇빛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단순하고 순수한 그 마음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나는 이곳에 살며 조금 더 '지금'에 충실하여 행복해보려 노력하기로 했다. 


마치 지금 느끼지 않으면 곧 사라져 버릴 스웨덴의 따뜻한 햇빛처럼, 

나의 오늘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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