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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곳 Jan 09. 2024

지름길로 가려다, 길을 잃었다

꼼수 부리는 자의 최후

베트남에서 1년 동안 혼자 살아남기 프로젝트

열한 번째 이야기  




난 참 성격이 급하다. 말도 빠르고, 밥도 빨리 먹고, 행동도 빠르고, 생각도 빠르다.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지만, 그만큼 실수도 잦다.


베트남 생활 취미 1


요즘 기타를 연습하면서, 나는 지름길을 찾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순서'라고 정해놓은 걸 건너뛰는 사람이다. 당장 기본기를 배우기보다는 얼른 적용하고 활용해서 미흡하더라도 결과물을 손에 쥐고 싶어 한다. 그래서 기타 줄의 음계와 주법 연습은 건너뛰고, 치고 싶었던 곡들 도장 깨기를 하고 있다. 친절한 유튜브 선생님들의 손모양을 따라 쥐고 그걸 그대로 외워버리는 중이다. 기타를 아예 못 치는 사람도 한 곡만 죽어라 파면, 일주일이면 자연스럽게 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3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딱 3곡만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5살 때 시작한 피아노를 7살이 될 때까지 악보를 못 봤던 것도, 한국에서 베트남어를 1년 동안 배웠지만 실전에서 잘 못했던 것도 이런 꼼수를 부렸기 때문인 것 같다. 피아노도, 외국어도 기본기가 중요하다. 당장의 활용과 그럴듯한 결과물 보다도, 그 이론과 베이스를 탄탄하게 쌓는 게 중요한 영역이다. 그렇지만 당장의 결과물을 맛보고 싶은 나는 언제나 지름길을 찾았다. 악보는 안 보고 선생님 손을 통째로 외우기, 건반 소리로 외우기, 시험에 필요한 베트남어만 외우기, 시험범위인 영어 지문 통째로 외우기. (적고 보니까 암기는 참 잘하나 보다. ㅎ)


물론 단기적인 결과는 빠르고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한계를 만나는 건 당연하다. 체르니로 넘어가야 했을 때, 고등학교 내신 대신 수능을 준비해야 했을 때, 베트남 현지에서 살아야 했을 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매번 이 단계를 만났을 때 후회했다. '아, 기본기 좀 다질걸. 너무 급하게 하지 말걸.' 그렇지만 성격이 어디 쉽게 변하겠나. 이 급한 성격은 이번 문제에서도 나를 그 순간으로 데려다 놓았다. 기타를 잡자마자 한 곡만 정해놓고 그것만 팠다. 기타를 잡기 시작한 지 3주 동안 코드는 볼 줄 모르고 3곡만 무한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나서야, 내가 또 지름길로 왔구나. 했다. 빠른 지름길로 가려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이 시점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선택해야 할 것은, 새로운 곡 하나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게 아니라, 결과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기본기부터 다지는 것이다. 기타 줄, 코드,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


우리 집 거실 겸 음악 작업실



조금은 지루한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다. 느긋하게, 그렇지만 단단하게 과정에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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