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살면서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첫 글을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첫 번째 글을 쓰는게 부담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새 연말이 되었다.
11월 말부터 파리 시내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첫 글을 프랑스 사회에 대한 내 생각이 아닌, 크리스마스에 대해 쓰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올해에는 크리스마스를 프랑스 친구네 부모님 댁에서 보내기로 했기에 프랑스의 크리스마스는 어떤지 더 잘 알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의 크리스마스: 또 다른 공휴일
"크리스마스는 중요한 명절이야"라고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달력에 빨간 색으로 쓰인 또 다른 공휴일일 뿐이다.
연인들에게는 로맨틱한 날이고, 종교인들(가톨릭, 기독교)에게는 종교적 의미를 가진 날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저 휴일이다.
사실 아시아에서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는 나라는 얼마 되지 않는다.
동북아시아에서는 한국만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동아시아로 범위를 넓히면,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정도이다.
프랑스의 Noël : 큰 명절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크리스마스는 큰 명절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의미랄까.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거나 때로는 친구들끼리 보낸다.
11월 말(해가 지날수록 더 빨라진다는 말도 있지만)이 되면 크리스마스가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길거리 조명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도로명 주소로 바꾸는 작업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도로명 주소는 낯설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도로명 주소가 일상적으로 쓰인다. 프랑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어떤 레스토랑이나 펍 이야기가 나오면 "OO길에 있는거 말하는거지?" 라고 되묻곤 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파리에서는 많은 길거리들이 그 이름을 따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다.
왼쪽 사진을 보면 "Joyeuses Fetes Rue de Sevres"라 써있다. Joyeuse Fetes은 즐거운 휴일(happy holiday)라는 뜻이고, Rue du Sevres는 세브헤 길 이라는 뜻이다. (Rue가 프랑스어로 '길'이다.)
이런 길거리 조명 장식은 길거리마다 모양도 색깔도 다르다.
또한 이맘때가 되면 마트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쉽게 볼 수 있다.
카르푸나 프랑프리 등 프랑스 마트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크리스마스 나무를 판다.
이 나무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이 나무들를 사서 집집마다 장식을 한다.
그러다보니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길거리에 버려진 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매년 이렇게 엄청난 양의 나무를 잠깐 동안 쓰고서 버리는 것이 낭비라는 현지기사가 나올 정도로 크리스마스 나무는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크리스마스 마켓도 길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모습 중 하나이다.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 사실 크리스마스 마켓은 프랑스에서 유래한 것이라기보단 중세 독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프랑스에서도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았고, 오늘날 중요한 볼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작년에는 샹젤리제 거리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서서 규모가 컸다. 아래 사진들은 샹젤리제 거리에서의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파리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뜨거운 와인(Vin chaud[방 쇼])이다. 첫 번째 줄 오른쪽 사진을 보면 나무 드럼통에 있는 뜨거운 와인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줄 왼쪽 사진은 또 다른 상점에서 봤던 광고판이다. 자세히 보면 한국어로도 쓰여 있다. 가운데 사진이 내가 샀던 뜨거운 와인이다. 보통 와인에 여러 재료들을 넣어서 만든다는데 길거리에서 먹는 뜨거운 와인은 그렇게 질이 좋은게 아니라 한다. 이날 두 잔 밖에 먹지 않았지만 다음날 머리가 지끈했던 기억이 있다. 방 쇼 이외에도 치즈, 장식품, 소품, 비누, 등 다양한 물건들과 음식들을 판다.
올해에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지 않았다. 원래 예정되어 있었지만 갑작스레 취소되었다.그래서 이번에는 레알 (Les Halles) 근처에서 열리는 마켓에 가봤다. 샹젤리제 거리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파리 시내에서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의 풍경은 백화점이다. 백화점 내부 뿐만 아니라 백화점 외부의 쇼윈도우는 크리스마스 관련 전시로 가득찬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사람들이 붐비는 대표적인 백화점이 프헝텅(Printemps)과 갤러히 라파옛트(Galleries Lafayette)이다.
위 사진들은 갤러히 라파옛트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윗줄 왼쪽은 백화점 내부의 장식인데 이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른쪽 사진은 백화점 밖 길거리이다. 이 사진 왼쪽 아래에 보면 여러 창문들이 있는데, 이 쇼윈도우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것들로 가득찬다. 아래 두 사진이 그 전시 중 일부이다. 특이한 것은 이 장식들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5초 짜리 비디오라 제대로 된 모습을 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장식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워낙 사람들이 많다보니 소지품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파리의 길거리와 시내에서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면, 집 안에서는 어떨까?
올해 크리스마스 때 친구네 부모님 댁에 초대받아 지내는 동안 새삼 놀랐던 점이 있었다.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선물이다.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받는 것은 어릴 때 뿐이다.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선물을 두고 가면 다음날 아침에 선물을 열어봤던 추억들을 누구나 한번쯤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생각은 잊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각자가 모든 사람들의 선물을 준비한다. 그러니까 나는 내 친구에게, 그리고 친구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각각 준비했고, 친구도, 친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흔히 부모님이 자식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흔한 일이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선물을 준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나에게 이런 경우는 부모님 생신이나 결혼기념일 뿐이었다.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 때 선물을 주고받진 않는다.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보니 보통 용돈이 생기면 부모님 선물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10대 때부터 이렇게 선물을 맞교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선물을 준비하는게 좋은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받기에만 익숙한게 아니라 주는 것에도 익숙해지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음식이다. 프랑스의 음식 문화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에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먹는 것을 참 중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네 부모님 댁에 있는 동안 오늘 저녁에는 뭘 먹을지, 내일 점심 때는 뭘 먹을지 진지하게 토의하는 모습에 놀랐다. 메인 요리에는 뭐와 뭐로 하고, 전식에는 이게 좀 더 나을거 같고, 디저트는 이렇게 하고, 술은 어떤게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게 그저 신기했다. 마치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서는 명절 때 여러 음식들을 한꺼번에 준비하고서 몇 일 동안을 먹는다. 이에 비해 여기에서는 최소한 본식의 경우 각기 다르게 하고자 하는게 눈에 띄었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라기보단 문화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 가장 중요한 날이다. 정작 크리스마스 때에는 이브 저녁에 먹다 남은 음식들을 먹기도 하거나 간단하게 먹곤 한다. 아래 사진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음식들이다.
2017년이 가기 전에 제대로 된 글 하나라도 쓰는게 목표였는데, 이렇게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정신없이 글을 써서 올리게 되었다. 2018년에는 본격적으로 프랑스 사회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은 글을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