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나는 지금 열아홉 살의 모서리에 있다. 시간은 금방 흘러, 나는 곧 스무 살의 시간으로 넘어갈 것이다.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지만 어른이라는 이름만 단 채로.
나는 조용한 애였다. 선생님께서 질문하시고, 그 바람에 애들이 나를 쳐다보면 얼굴이 바로 빨개지는 애였다.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보통의 세상은 내게 날카로웠다. 그러므로 나는 둥글고 부드러운 세상을 찾아 책을 읽다가, 만화를 보다가 했다. 그러다 결국은 더 아름다운 세상을 찾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 가지고 있는 휴대폰에 2천 개 정도의 글이 쌓였다. 조각글을 휘갈겨 놓은 노트도 여러 권 있으니, 상당한 양의 글이 있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은 유난스러웠다. 누군가에겐 지극히 무미건조한 일에 웃었고, 유난히 많은 눈물을 흘렸고, 유난히 지칠 만큼 산책했고, 유난히 잠을 안 잤고, 지극히 진지했고 은근히 소란스러웠다. 어른의 시점으로 보면 중학생은 유난스럽고 이해할 수 없고, 천진난만하다. 그렇지만 열다섯에는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의 고민을 알아줄, 이미 비슷한 일을 겪어 온 롤모델이 필요하다. 나도 저런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을 주는, 근사한 어른이 필요하다. 이렇게나 흔들리는 나라도 괜찮다고 누군가 말해줘야 했다. 그러면 언제라도 눈물을 쏟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열다섯 살의 새벽은 끊기지 않는 플레이리스트로 흘러갔다.
열여섯, 열일곱 살은 동전의 앞뒤처럼 딱 달라붙어 있지만 정반대였다. 열여섯은 즐거웠지만, 그 즐거움이 언젠가 끝날 거라고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언젠가'는 열일곱이었다. 진지하고, 불안하고, 섬세해졌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나를 모르는 사람들, 다시 오지 않을 풍경과 사라지는 것들에 집중했다. 상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을 모른다. 안타깝게도 내가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건 나의 그 시간뿐이다. 그래서 때론 슬프다. 나 없이 흘러간 시간과 그 속의 외로움을, 나는 온전히 알지 못하기에. 또한 갑갑하다. 겨우 열아홉뿐인 나의 글에서 소재는, 재료는, 모두 나이니까. 물론 이건 선택이 아니었다. 애초에 나에겐 그것밖에 없었다. 나의 기억이 물감이고 감정이 붓이고, 미래가 캔버스였다. 철저히 이기적이고 외로운 그림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달려도 나는 겨우 나였다. 때로는 글자로 눌러 담기 힘든 역동적인 생각들이 가득했고, 나는 불규칙 활용처럼 변했다. 그럼에도 나라는 윤곽은 나를 꽉 지지하고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누군가의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을 듣고 싶다. 내 테두리를 넘어서 있는 고유하고 아린 누군가의 세계와 만나고 싶다. 지쳐서 누울 때까지 산책하며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왜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이냐고 하면, 아무리 근사한 어른이라도 그 시절에는 무조건 위태로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의 방황을, 슬픔의 기억을, 흩어진 마음을 듣고 싶다. 외침 말고 속삭임으로, 작게 써서 건넨 엽서로, 서로만 아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자란 것이다. 강함보다 나약함에, 나보다 다른 누군가에게, 기쁨 너머 떨고 있는 슬픔에 집중하고 있는 나는 단단하지는 못해도 물결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유약할지라도 부드러운, 다정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글들은 어쩌면 모두 편지였다. 소심하고 진지했던 나의 유년에게, 쾌활하고 외로웠던 나의 열다섯에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친구에게, 내 새벽의 동료에게, 아릿했던 열여섯에게, 정말 좋아했던 사람에게, 이 글을 읽어 주는 당신께, 아직 모르는 모든 사랑스러움에게, 꼭꼭 눌러쓴 편지였다.
나의 그 시절에게, 이제는 너와 나만 아는 시간을 쌓아 가자고 말할 것이다. 나만으로도 충분하도록, 촘촘한 말들과 피하지 않는 눈빛을 나의 시절에게 전해줄 것이다. 그리고 함께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할 수도, 스무 살의 나를 함께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어른이 된다. 위태롭고 사랑스러운 시절을 켜켜이 쌓으며, 여러 사상가들의 주장을 구분하며, <보기>를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그래프를 덧칠하며, 지켜보며, 나는 모든 시간으로부터 자란다.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고 싶다. 총명한 눈빛으로,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일기를 쓰는 어른이 되고 싶다. 여전히 편지 쓰는 걸 좋아하고 생일 선물을 정성스레 고르는 어른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투박한 연재는 여기까지다.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한 분 한 분 눈을 맞추고 싶을 만큼 감사드린다. 수능과 기타 입시 일정이 모두 끝나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쓸 편지를 기대하면서 남은 시간을 견뎌보려 한다. 당신의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을 응원하며, 이윽고 어른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여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