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기억
한여름 무더운 바람 끝에 무심히 가을이 느껴지는 30도 언저리의 날씨.
부풀 대로 부푼 배를 안고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환도가 서서 잘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임신부를 비즈니스에 업그레이드해 주신 배려에 감사하단 인사로 제대로 못한다. 초보 엄마의 수면 부족과 갑작스러운 정체성 재배치로 인한 환희와 공황이 뒤섞인 혼란 상태를 미리 상쇄라도 시키듯 사회는 임신부를 공주처럼 떠받들어준다. 이내 버릇이 나빠진 나는 그 친절을 당연하게 받는다. 예정일이 3주나 남았는데 허벅다리가 뜨뜻하더니 맑은 물이 비 오듯 쏟아진다. 금세 몸이 말라버려 산도로 나올 가능성이 희박해진 아이는 수술용 메스가 열어주는 문으로 세상을 만난다.
마취약에 혼미한 내게 바로 엄마 역할이 시작된다. 눈에 보여줌과 동시에 품에 안겨 막 삶을 시작한 아이는 정신없이 풀어진 앞섶에 얼굴을 묻고 젖을 찾는다. 아이가 주는 촉감과 소리는 모유선을 자극한다. 모체와 아기는 마치 리듬을 맞추듯, 모체에 젖이 차오르면 아기의 입도 자연스럽게 열린다. 젖을 더 자주 찾는 만큼 공급도 수요에 맞춰 증가한다. 생명은 어찌나 생동력 있는 것이던지 그렇게 먹고 먹이는 시간을 지나며 아이 몸이 커지고 내 몸의 살이 내린다. 삶은 이전에 살아보지 못한 어나더 레벨에 근접한다. 근심과 걱정을 취미처럼 하고 사는 천성이라 걱정은 늘 달고 살지만, 삶의 공허를 넉넉히 채워주는 이 생명 덕에 이전과 비할 바 없이 충만한 생명력을 느낀다.
첫아이 때와는 다르게 유난히 지독한 입덧에 나는 거의 반 송장이다. 앉고 일어날 때마다 하늘이 내려오고 땅이 올라온다. 모체와 얼마나 입맛이 다르면 먹는 것마다 싫다고 성화인지 입맛에 따라 갈릴 식단에 미리 겁부터 낸다. 고역스런 입덧이 왜인지 알았을 때는 나는 그 이유에 납득했다. 의사는 쌍태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태아 임신부보다 호르몬의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했다.
졸지에 애 셋 엄마가 될 판국이다. 첫 아이 때에는 배도 안 텄는데 이번에는 튼살방지 크림도 소용없겠지 하며 초산 때보다 탄력을 잃은 뱃살을 손가락으로 집어 흔들어본다.
한 손에 아이 손을 잡고 육교 계단을 무너지듯 내려오며 휴대폰 너머의 남편에게 울부짖은 날이 있었다.
이날 아침, 30대 중반의 나이라 노산이라는 우려에 일란성쌍둥이라는 위험이 더해져 나는 고위험군 임신부 진료실로 향했다. 싸한 기분은 의사의 입을 통해 확인된다. 아이가 살아서 나올 확률과 그렇지 않을 확률을 대비하는 내용이었다. 급작스러운 결과에 중국 현지의 의료 정밀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니, 믿기가 싫었기에 의심하기로 했다. 다음 날 비행기로 나는 의료강국 한국에 돌아간다. 마침 한국 출장 중이던 남편과 만나 두 손을 떨며 다시 받은 진찰에서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다시 한번 더 듣고 만다.
중국의 산부인과 병원.
입원실에 간호사가 들어와 약을 타가라고 한다.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온 임신부들이 줄을 서 약을 타먹는다. 다음 날 같은 시간에 한 도즈를 더 먹는다. 그날 밤, 하혈과 함께 출산이 이루어진다. 분만자세가 아닌 양동이에 앉은 상태로.
수축과 이완으로 밀어내는 모체의 힘에 못 이겨 붙잡고 있던 작은 손이 빠져나간다. 고구마 크기만 한 네가 대롱대롱 달려 잠시나마 얼굴을 보여준다. 핏덩이로 예상했던 것치고 이미 모든 구조가 있었다. 백과사전의 임신 주수별 태아 크기 모형에서 본 기억과 겹쳐 흐린 조명 아래 기억될 뿐이다.
자궁보다 더 작아 수축의 힘으로도 나올 수 없던 다른 아이는 간호사의 손을 잡고 나왔다.
출산한 아이를 내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보려 하지 않았다. 내 품에 안겨주지 않았지만 안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아이는 빨간 양동이 담겨 떠났다. 생명을 축하하는 출산이 아닌 배설물처럼 급히 내보내는 출산이었음을 비로소 확인했다. 생일이라 칭할 수도, 기일이라 칭할 수도 없는 마음이 어려웠다.
지독한 입덧은 여전했지만 단태아라고 한다. 지긋지긋한 슬픔과 절망의 생각의 꼬리를 끊어내고 찾아온 만큼 감사와 기쁨으로 대하려는 마음가짐은 자주 헝클어지곤 했다. 때맞춰 찾아온 입덧이 공포스럽지만 정서적 업 앤 다운이 더 공포였다. 호르몬이 날뛰고, 나 또한 날뛴다. 병원이 싫어 오라는 때에 가지도 않았다.
무기력했다.
초음파 젤의 차가운 느낌과 함께 기계를 문지르던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간호사를 부른다.
"영상 삭제해 줘."
왜?
녹화가 잘못된 건가?
"상했어요. 9주에 이미."
고약한 입덧까지 이겨내며 버텼는데 너는 그사이 나를 놓았나 보다. 악을 쓰고 울다가 한참을 허공만 응시했다. 누구라도 탓하고 싶었지만 누구를 탓해야 할지를 몰랐다. 누구라도 탓하고 싶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리멸렬한 여름 더위가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초가을의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스쳐간 바람에 기억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본 적 없고 만져본 적 없지만 내게 분명 존재했던 아이들의 기억.
평생을 두고 기억하는 것으로 어미노릇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