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의 큰 어른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92주년

by 엄민정 새벽소리

지난 9월 7일은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92주년이었다.


송혜교의 기부금 소식은 뉴스에 나오는데 자신의 기부금 소식은 이슈가 되지 않는다며 친구의 웃자고 하는 말에 같이 웃었다. '홍코우 공원'에서 '루쉰 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뒤 다시 들른 '윤봉길 기념관'이다. 거사 장소에 놓인 돌상 앞에서 92년 전 그날을 가만히 상상해 본다.

"난 가봤어 안 갈래." 하는 나에게 기어이 입장표를 끊어주는 친구다.

"이렇게라도 우리가 이곳에 애정을 갖고 지켜야지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으면 중국인들이 이곳을 돌볼 이유가 있겠나" 하는 소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헌 윤봉길 의사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나가 실현해보고자 했던 윤봉길은 독립운동에 가담한 지 3일 만에 수통형 폭탄을 가지고 일본 군대의 수장을 제거했다. (도시락이 아닌 물통이었으니 이런 가짜정보가 아직도 역사책에 실리는 일이 통탄스럽다.)

내 나이 25세, 나는 무엇에 매진했나.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를 기계로 치부하고 스펙을 추가해 보다 쓸모 있는 기계가 되기 위한 치열한 삶을 살았다. 취업의 목적에 돈이 있었고, 돈을 따라다니며 의미 없는 시간을 쌓았다. 정치와 나라사정에 무관심하고 무지했다. 투표로 참정권을 실현했지만 흐름과 대세에 내 한 표를 가볍게 버리듯 던졌다.

丈夫出家生不还
사내대장부가 집을 나서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강보에 싸인 두 아들을 놓고 거사를 치르기 위해 가정을 떠나던 윤봉길 의사의 결심과 심정은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직장 생활을 하는 현대 부부의 하소연과 걱정이 순간 머릿속에 겹쳐진다. 국가에 불만만 표할 것이 아니라 내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직접 찾아 나선 용감한 장부의 모습에 숙연해진다.


사군자, 매난국죽(梅蘭菊竹)의 형님 격으로 봄을 알리는 매화가 매년 봄, 이곳 처마 끝에 핀다. 한 겨울 추위 속에서 향기를 내뿜는 매화의 고고한 기품과 충의정신이 늠름하다. 호에 사군자 중 하나를 인용한 것은 완전한 인격으로서의 추대받아 마땅한 그였기 때문일 것이다. 25세, 이마에 선명한 핏자국을 남기고 생을 마쳤음에도 한치의 흔들림 없던 그의 의지는 죽어 앉아 있는 모습에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죽음을 각오로 한 일에 하등 유언을 남기지 않은 그의 모습이 쿨하고 뜨겁다.



추석 연휴 태풍 버밍카가 상해로 방향을 틀었다. 오늘밤 관통할 예정이라는 기상 예보의 목소리가 부산하다. 태풍 전야에도 윤봉길 기념관을 찾은 한국인 가족이 여럿 보인다. 아이들을 동반한 부모들은 아이에게 역사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을 열변하며 전달한다. 좋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란 말을 보태며, 지금 우리에게 돌아갈 조국이 있다는 것을 이들 독립운동가분들의 공으로 돌려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 누군가의 고귀한 행위와 업적은 입에서 입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부지런히 옮김이 마땅하다. 바늘만 한 빈틈 따위 허락하지 않고 이웃 나라 어느 누구도 감히 왜곡할 수 없는 우리의 역사다.



태풍에도 거센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고귀한 대한의 정신을 기억하며.

2024.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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