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Mar 15. 2021

모두들 존버하세요

사람답게

 작년부터 심한 경영 위기를 겪던 한 병원이 올해 또 문을 닫았다. 아빠가 근무하시던 병원이었다. 과거 다른 병원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병원도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작년에 수화기 너머로 얼핏 들었었다. 누군가는 월급도 받지 못하고, 누군가는 빚만 잔뜩 안고 그렇게 일터를 잃게 된 것이다. 동네에 10년 넘게 장사하던 돈가스 집도 그 옆옆에 자리한 2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던 치킨집도 임대 문의란 현수막을 내걸었다. 동네엔 문을 닫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나 역시 작년 계약직 근무를 끝으로 다시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세 식구가 사는 우리 집에 실직자만 2명인 셈이다. 


 며칠 전 취업 관련 커뮤니티에서 조회수와 댓글 수가 폭발한 글을 눌러봤다. 그 글의 내용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일하면서, 살면서 현타가 올 때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 가령 일자리가 없거나 자신보다 못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보며 힘을 얻곤 한다는 거였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사람은 힘들 때마다 일부러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는다 했다. 그리고 내가 저 놈보다 낫다고 위안 삼는다 했다. 그런 이들에겐 이 글도 힘이 되어줄까. 


 더 놀라운 건 댓글의 반응이었다. 보통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반응에 이어 나도 그런다는 글이 이어졌다.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한 건 한참 나중에서였다. 지금 다른 사람들의 안 좋은 상황을 보고 자신의 처지를 위로한다는 게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말하자 댓글로 원래 보통 그러지 않느냐느니 혹은 누구나 하는 생각을 글로 옮겨놨을 뿐인데 뭐가 문제냐느니 꼰대냐는 댓글이 달렸다. 간간이 이런 식의 사고는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달렸으나 문제 삼는 사람이 오히려 불편러라는 반응이 우세했다. 어디까지나 내가 읽은 댓글까지는 그랬다. 더 이상 읽지 않고 창을 닫아버렸다.


 작년부터는 코로나 영향으로 채용 수가 더욱 줄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1년 가까이 같은 채용 공고를 올리며 직원을 뽑지 않는 기업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들은 "뽑을 만한 인재가 없다"라고 말한다. 경력직만을 뽑는 요즘 추세에 기본으로 내세우는 경력 연수는 늘어만 간다. 그렇다면 갓 졸업한 학생들은 어디로 가라는 말이지, 같은 생각을 졸업했을 때부터 했었다. 지금도 상황은 같다. 나도 채우지 못한 경력 기간을 보면 막 졸업한 학생들은 도대체 어디를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 일터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들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이웃인 그들은 우리의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존버(열심히 버티기)는 승리한다는데 모두들 건승했으면 한다. 다른 이의 불행에 힘 얻지 말고, 타인을 도울 수 있음에 응원할 수 있는 상황에 힘을 얻길 바란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절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