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소고기국

by 백홍시

외할머니는 나와 동생을 부르실 때 꼭 첫음절을 높이셨다. 우리는 그 말투가 재밌어서 따라하곤 했다. 외할머니는 매우 작으셨다. 우리 엄마의 키가 148cm 정도인데 외할머니 옆에서는 커 보일 정도였다. 그 자그마한 체구에 고음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눈과 귀에 선하다. 사실 내가 외할머니와 특별한 정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다. 외갓집에 가는 것은 1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뿐이었고 그나마도 반나절 정도 있다 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외갓집은 시골에 있는 옛날식 가옥이었는데, 외양간에 소들이 있었고 푸세식 화장실도 있었다. 가끔 외갓집에서 하룻밤 자는 날에는 화장실 때문에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좋은 것이 있었다면 외할머니의 소고기국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외할머니의 소고기국은 경상도식 소고기국으로 아주 빨갰다. 빨간 국물을 떠 보면 주인공인 소고기가 있고 무와 콩나물이 있고 크게 썰어 넣은 대파도 있었다. 나는 외할머니의 소고기국을 좋아했다. 안에 들어있는 소고기도 맛있고 푹 익은 콩나물, 간이 잘 벤 무, 심지어 대파마저 맛있었다. 시골 간장과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빨간 소고기국에서는 어린 내 입에서도 느낄 수 있는 깊은 맛이 났다. 그 소고기국은 외할머니만 만들 수 있었다. 우리 엄마의 소고기국도 맛있지만 외할머니 것과는 다르다. 엄마조차 따라할 수 없는 외할머니만의 비결은 뭘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뒤에서 음메 하고 소 우는 소리가 났다. 혹시 저 외양간의 소들이...? 가끔 궁금하기도 했다. 그럼 나는 괜히 경건한 마음으로 저 멀리 소 울음소리를 들으며 소고기국을 한 술 뜨는 것이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10년이 되었다. 이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을 수도 없고 고음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소고기국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아직도 가끔 그 맛이 생각난다. 30년 넘게 먹어 온 많은 음식 가운데 그다지 자주 먹지도 않은 외할머니의 소고기국이 내 혀끝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음식은 종종 다른 무엇보다도 질긴 기억이 된다. 특히 만든 사람의 마음이 담긴 음식은 더 그렇다. 1년에 딱 두 번, 멀리서 오는 손녀들과 사위, 그리고 누구보다 보고팠을 막내딸을 위해 정성들여 끓인 소고기국은 팔팔 끓는 한 그릇의 그리움이다. 마음이 담긴 음식들은 마음으로 들어간다. 외할머니의 그리움은 이제 나의 그리움이 되었다. 지금도 소고기국을 먹을 때 마다 마음속에 넣어 둔 외할머니의 소고기국이 생각난다. 국물을 한 숟갈 삼킬 때쯤이면 빨갛고 구수한 그리움들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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