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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던 남편은 왜 도망이직러가 되었나

by 곰아빠

*상담 사례를 각색했습니다.


남편은 한 회사를 11년 다닐 정도로 성실하고 우직한 스타일이었어요.

불평불만은 좀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회사일이니까 해야지 하는 성격이었어요.

어느날 좋은 기회가 생겨서 생애 첫 이직을 했는데 적응이 어려웠나봐요.

이래저래 힘들어하더니 두달 만에 도망치듯 또 이직을 했고 그 회사도 안 맞다며 세달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또 이직을 했어요.

지금 한달도 안되었는데 또 힘들다고 하네요.

11년을 한 회사에 몸 담았던 남편이 지금 1년만에 회사를 3번 넘게 바꿨는데..

아기도 있고 가장 역할을 하는 남편이 그러니까 너무 걱정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11년을 한 회사에 성실하게 다니던 남편이 이렇게 잦은 이직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단순한 ‘직장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남편의 내면에서 어떤 큰 변화나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게다가 지금은 아기도 있고, 가족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보니 사연자 입장에서는 남편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불안한 현실적인 걱정이 함께 밀려오는 상황일 거예요.


우선 남편이 그토록 오랫동안 한 회사에 몸담고 성실히 일했다는 것은, 기본적인 직업 윤리와 책임감이 분명한 사람이라는 의미예요. 그러니 지금처럼 짧은 시간에 여러 회사를 떠나는 모습은, 남편이 단지 ‘이기적이거나 철없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꽤 큰 부담이나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어요. 오랜 시간 한 환경에 익숙했던 사람이 새로운 환경에서 연속적으로 적응에 실패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존감이 흔들리며,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거든요.


남편 입장에서 지금 겪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정체성과 존재감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이전 회사에서는 ‘내가 누구인지’가 분명했는데, 새 회사들에서는 그 정체성이 계속 흔들리니까 심리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거죠. 특히 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이렇게 흔들리는 자신’을 받아들이기조차 더 힘들 수 있고요. 그럴수록 오히려 회사 탓, 환경 탓으로 돌리며 회피하게 되는 경향도 생길 수 있어요.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건 비난이나 조언보다 공감과 안정감이에요. 지금 남편은 무엇보다 “괜찮다,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무너진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필요로 할 수 있어요. 현실적인 불안은 물론 크지만, 지금은 남편이 다시 자기 자신을 믿고 버틸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게 먼저예요.


사연자분은 이렇게 걱정하면서도 남편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 마음을 기반으로 대화를 시도해보세요.


예를 들어 이렇게요


“당신이 요즘 많이 힘들어 보여서 나도 마음이 아파. 이전에 잘 해왔던 사람인 걸 내가 누구보다 아니까 더 걱정되고 안타까워.”


“어떤 일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어떤 점에서 괴로웠는지 그냥 이야기만 들려줄 수 있어? 무슨 결정을 하든 난 당신 편이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남편은 조금씩 마음을 열 수 있어요. 그리고 나서 현실적인 부분—앞으로의 계획, 어떤 형태의 일이 남편에게 맞을지, 지금은 잠시 쉬면서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하는 건 아닐지—이야기해볼 수 있어요.


남편이 다시 단단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어요. 이건 남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헤쳐나가야 할 변화의 시기일 수 있어요. 지금은 흔들려도 괜찮아요. 오래도록 성실했던 사람은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남편에게 큰 힘이 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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