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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Oct 18. 2023

싸우고 싶은 자들의 도시(1)

비 오는 날, 천호역 인근 사거리에서 목에서 쇳소리가 나게 싸웠다.   

  

창피해서 엄마한테 사람들 안보는 곳으로 가자고 말했지만, 엄마는 내 손을 뿌리쳤다. 우리는 환한 조명 가게 앞에서 다시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이번엔 불꺼진 레스토랑 앞으로 가서 엉엉 울었다. 그 위로 우산을 씌워주다가 숨을 쉬기 위해 그곳을 피해 앞으로 걸어나갔다.


길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흡사 싸우고 싶어 안달난 사람들처럼 신이 나서 우리가 무엇 때문에 열변을 토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관성에 의해 이 미친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언가에 의지해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걸까. 한번쯤 이렇게 속에 있는 걸 다 토해내야 살아갈 힘을 얻는 건 아닐까.      


모처럼 마라탕을 한그릇 사 먹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중이었다. 회사에 병가를 쓰고 며칠 안 나온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덧 화제의 중심이 나로 바뀌어있었다. 며칠 후에 정밀 검진 예약이 돼있는데 당사자인 내가 무관심해도 너무 무관심하다는 게 엄마가 흥분한 이유였다.      


애초에 예약 자체를 내가 하지 않았으므로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휴대폰 달력에 표시된 날짜는 내 휴대폰 달력엔 체크돼 있지 않았다. 그에 관해 나는 들은 바가 없었고, 엄마는 얘기를 했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1차 검사를 받은 날, 내가 먼저 잡혀있던 업무 일정 때문에 황급히 병원에서 나왔던 일을 두고 속상해하셨다. 왜 남겨져서 딸의 그다음 검사 예약 날짜를 대신 잡아준 일이 그토록 서운할 일인지 나는 이해를 못했다.     


그만큼 엄마가 나를 아끼고 걱정한다는 게 결론이었지만, 나는 어색함에 그걸 무시한 채 오히려 까칠한 말들을 내뱉었다.      


나는 갈등을 회피하는 성향이다. 미친X를 보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네’ 이러고 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들어 쌈닭 기질이 불쑥불쑥 나온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 많다. 아무리 천사표인 인간도 이 정도의 수준의 상황에는 분노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제는 지인 두 명을 카카오톡에서 차단을 했다. 조금의 말싸움을 하고서다.


한 명은 며칠에 한번씩 톡으로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버 친구, 또 한 명은 가끔 연락하고 만나서 등산도 하는 후배다. 오래동안 연락을 안하던 친구도 발굴(?)해서 연락하는 스타일이므로, 내가 카톡에서 누군가를 차단하는 일은 거의 없다.      


먼저 사이버 친구 A는 내가 20대 중반에 중국에서 어학원을 다니던 시절, 기숙사 내방 바로 앞집에 살던 이웃이다. 함께 중국에 간 장학생단 중 한명인데 그땐 별로 친하지 않다가 한국에 와서 찐친이 됐다. A는 대구에서 살다가 결혼 후 울산에서 살고 있다. A와 나는 한국에 들어온 후 8년 동안 경주에서 만나서 이틀 여행을 해본 게 다다. 나머지는 거의 다 카톡대화다.


A와 나는 오늘 먹은 점심메뉴를 공유할 정도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다. A는 최근 원치 않는 음식을 너무 많이 가져다주시는 시어머니 때문에 고민이다. 난 주로 운동 이야기나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에 대해 A에게 털어놓는다. 연인보다도, 가족보다도 더 자주 연락하며 유대관계를 쌓는 동안 나도 모르게 A에게 의지하게 됐다. 불안해질 때면 A와의 카톡방을 찾았다. A가 내겐 선생님이고 친구고 가족이었다.

     

A의 화법은 무미건조하고 현실적이다. 예를 들면 바쁜 일정에 지친 내게 “왜 그렇게 힘든데 내려놓지를 못해?” “하지 마”라고 말한다. 맞는 말인데, 열정 많은 내겐 기운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 그보다는 재밌는 휴식을 제안한다거나, 그저 내 얘기에 맞장구를 쳐주는 걸 바랐다. 또 내가 누군가의 ‘읽씹’에 소심해져서 “무시당하는 거 아냐?”라고 물었을 때 A는 “무시당하는 거 맞다”고 말한다. “널 무시하는 게 아니라 바빠서 답을 못하는 걸거야. 조금 더 기다려봐”라고 해줬더라면 내가 느끼는 불안함이 덜했을까.      


차단을 결심한 것은 A와의 대화가 나도 모르는 새 나를 가두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한테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다주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었다. 반대로 내 부정적인 기운을 A에게 전달해서 그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정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는 필요한 법이니까!      


또 다른 지인 B는 코칭을 해준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내 대학 후배다. 다이어트에 대한 열망이 있는 B는 평소에는 연락이 뜸하다가 본인이 원할 때만 연락을 한다. 며칠에 한번씩, 몇 달에 한번씩 답이 온다.


그리고 엄살이 심하다. 퇴사를 하고 싶다면서 퇴사를 안 하고 계속 일을 한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간병을 한다면서 여행 갈 궁리를 한다. 내 질문에 대해 건성건성 답하고 반대로 나한테는 촘촘하게 질문을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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