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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더 홀씨 Apr 07. 2020

누군가의 생각을 기록하는
시각적 언어

예술작품과 디자인의 공통점

코로나가 심각해지기 몇 주 전, 보통의연구소 디자이너들은 런던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이라 쓰고 워크숍이라고 읽는다'라고 할 만큼 미술관 테이트모던, 디자인 박물관을 다니며 5박 6일 동안 틈틈이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다녀온 지 한참 되었는데, 오늘 문득 테이트모던에서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은 우리가 하려고 하는 디자인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은 고민에 빠졌기 때문이다. 




보통의연구소는 그야말로 디자인을 잘 모르거나 접하기 어려운 보통사람들이 디자인을 만나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그렇다 보니 작은 가게 사장님들과 유난히 긴 디자인 상담이 이어지는데 어쩐지 끝나고 나면 허탈할 때가 많다. 그분들이 원하는 건 굉장히 가치 있는 디자인이나 심도 깊은 브랜딩이 아니라 지금 당장 포장 경비를 줄이는 방법 혹은 SNS 팔로우나 '좋아요'를 늘리는 방법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려는 디자인의 본질적인 역할이 무엇일까? 사실은 마케팅만 잘되면 디자인은 필요 없는 게 아닐까? 디자인은 예쁘기만 하면 그만 아닐까? 떠도는 많은 생각 끝에 문득 테이트모던에서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예술작품을 많이 보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고 나 역시 자주 해온 생각이었는데 그날은 무슨 마음인지 갑자기 생각에 느낌표가 붙었다. 


에세이가 글쓴이의 경험이 글로 표현된 것이라면, 그림이나 조각 같은 예술작품은 그 경험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둔 것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도 작가의 경험이 표현된 작품을 통해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만드는 거지.

20살 무렵부터 부산비엔날레, 부산시립미술관, 여러 크고 작은 전시들을 갈 때마다 항상 마음에 앙금처럼 남아있던 궁금증이 그날 갑자기 뻥-하고 해소되는 기분이 들면서 난 나름대로 예술작품의 존재 이유에 대해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디자인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불현듯 오늘 떠올랐을까? 



미술작품들이 작가의 경험이나 메시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듯이 우리가 하고 있는 시각디자인의 본질 역시 이야기나 메시지를 시각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예술작품과 디자인이 다른 점은 예술작품이 작가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개인의 '시각적 언어'였다면 디자인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객관적인 시각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예술작품은 혼자만 이해가 가능한 '1인 부족의 말' 혹은 '외계어'로 되어있는 책과 같고 디자인은 세계 공용 언어인 '영어'로 되어있는 책이라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술작품은 반드시 전문가의 해석이 필요하고 디자인은 아이부터 노인까지, 아시아인부터 유럽 사람들까지 세대와 문화의 경계 없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즉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영어로 된 카피를 읽지 못해도 나이키나 애플 광고는 멋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출처 - https://www.adsoftheworld.com/media/print/nike_serena_23



우리가 하고 있는 시각디자인은 클라이언트가 고객에게 하고 싶은 말, 혹은 고객에게 보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고객도 똑같이 이해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연구된 컬러, 타이포, 사진학, 레이아웃 등을 통해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포츠 웨어의 한 기업이 고객에게 스포티하고 젊은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반대로 고객은 그 기업의 제품이미지에 대해 노년의 지루함을 느낀다면 충성 고객은커녕 사업이 타이타닉처럼 기울고 말 것이다.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서 앞으로 수많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며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겠지만 그 과정보다 걱정이 되는 건 내가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소중한 의미를 잊고 지쳐버리는 것이다. 항상 디자인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디자이너를 괴롭히는 회사에 있다!라고 외치던 직장인 디자이너가 이제 디자인 스튜디오의 대장이 되어보니 현실에 치이면 디자인도 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고 있다. 하지만 테이트모던에서 경험했던 낯선 이들의 시각적 언어를 떠올리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통된 시각언어를 만드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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