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WK단편선 3>패션은 권력이다

by 김동은WhtDrgon

힙스는 트렌드가 생명인 도시였다.

살롱즈 귀족들이 입는 유행이 힙스로 내려오면, 자본구 상류층이 따라 입었고, 그것이 노마드에게까지 흘러가면 ‘완전히 끝난 유행’으로 간주되었다. 유행을 늦게 따라잡는다는 건 힙스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었고, 이곳에서 스타일은 곧 권력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권력의 균형을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무신경 패션의 탄생이었다.

완벽한 트렌드를 좇던 힙스 사람들이 갑자기 패션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힙한 것이라 선언했다. 가장 비싼 옷을 입고도 “아무거나 대충 걸쳤어”라고 말하는 것이 새로운 유행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렇게나’ 입어도 **“대충 입은 것처럼 보이는 비싼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 아무렇게나 입은 자가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릴 더스트.
그는 애초에 패션이란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힙스의 뒷골목 쇼핑몰을 전전하며 폐품을 주워 입던 그는, 트렌드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몰랐다. 그러나 그 초월적인 무신경함이 오히려 힙스의 패션 리더들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그는 런웨이에 서지 않았다.
그저 힙스 패션 거리 한복판을, 마트 비닐봉지를 걸치고 걸어다녔다.
구겨진 신발, 바닥에서 주운 반팔 티셔츠, 브랜드도 없는 모자—모든 것이 '무심하게' 완성되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말을 잃었다.

“저게… 진짜 무신경이다…!”


순식간에 힙스 전체가 술렁였다.
패션 리더들은 혼란에 빠졌고, 쇼핑몰 인플루언서는 쇼핑을 멈췄다.
디자이너들은 그의 비닐봉지를 확대 인쇄했고, 고급 브랜드는 그걸 49만 크레드짜리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출시했다.

릴 더스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신경 쓰지 않았고, 진심으로 관심이 없었다.
그 태도가, 힙스에서는 그 어떤 고급 드레이프보다 강렬한 주장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비닐봉지마저 벗어던졌다.
완벽한 무신경을 향한 마지막 단계였다.

그러자 질문이 쏟아졌다.
“치부를 덜렁이며 다니는 게 무슨 패션이냐?”

릴 더스트는 그에 대한 극단적인 해답을 선택했다.


그는 주요 부위를 제거했고, 그의 몸은 매끈한 표면의 덩어리로 변했다.

“가릴 것이 없다면, 부끄러울 것도 없다.”

힙스 패션계는 환호했다.
“이것이 패션의 궁극적 진화다!”
언론은 ‘비(非)신체 미학의 도래’라 이름 붙였고,
일부 트렌드세터는 실제로 모방을 시도했다.

그러나 다른 구들은 이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궁정구는 “힙스 놈들 미쳤군”이라며 혀를 찼고,
서민구에서는 “패션이 아니라 사회적 재난”이라 비난했다.
살롱즈마저 조용히 거리를 두었다.


결국 힙스 패션 리더들은 이 흐름을 유행에서 지워버렸다.
릴 더스트는 도시에서 사라졌고,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고민했다.
진짜 ‘무신경’이란 무엇인가.

다행히 이 패션은 널리 퍼지지 않았다.
땅콩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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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설정

✅ 힙스(HIPS)
트렌드의 최전선이자 패션과 문화가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상류층의 유행이 가장 먼저 도입되며, 트렌드는 빠르게 형성되고 소멸된다. 패션과 스타일이 곧 권력을 의미하며, 어떤 옷을 입느냐가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다.

✅ 살롱즈(Salons)
귀족과 고위층이 거주하는 지역. 모든 트렌드가 이곳에서 시작되며, 힙스와 자본구를 거쳐 점점 하층민에게 퍼진다. 유행이 하류층까지 도달하면 더 이상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 자본구(Capital District)
중산층과 상류층이 섞여 있는 구역. 살롱즈에서 시작된 유행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며, 패션과 자본이 동시에 흐르는 곳이다.

✅ 노마드(Nomads)
도시 하층민들이 거주하는 구역. 패션이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로, 이들에게까지 도달한 트렌드는 이미 ‘끝난 유행’으로 간주된다.

✅ 무신경 패션(Effortless Fashion)
힙스에서 새롭게 등장한 트렌드. 의도적으로 스타일을 포기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철저히 계산된 룩을 의미한다. “아무렇게나 입은 것처럼 보이는 비싼 옷”을 입어야 한다는 모순적인 유행.

✅ 릴 더스트(Lil Dust)
패션을 이해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 인물. 거리에서 주운 옷을 걸치고 다니며, 무의식적으로 힙스의 패션 리더들을 압도하는 ‘진짜 무신경’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존재는 트렌드를 완전히 무너뜨릴 가능성을 지녔으며, 패션계는 그를 두려워했다.

✅ 궁정구(Royal District)
FEWK국의 정치 중심지. 전통과 격식을 중시하는 공간으로, 힙스의 패션 트렌드를 조롱하며 지켜보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일부 상류층은 몰래 힙스의 유행을 연구하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흡수하려 한다.

✅ 서민구(Common District)
일반 시민들이 거주하는 구역. 패션보다는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힙스의 극단적인 패션 문화에 반발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이를 조롱하지만, 극소수는 이러한 유행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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