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우는 호올네트에서 자라면서 어머니가 매일 아침 감자의 흙을 털어내고, 작은 칼로 검은 눈을 도려내던 모습을 기억했다. 손에 묻은 흙 냄새가 부엌을 채우면, 그건 하루가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부드럽고도 단단한 감자의 살점이 칼날 아래서 매끈하게 갈라질 때, 그는 그 소리를 사랑했다. 흙에서 갓 나온 감자는 시원한 흙냄새와 함께 특유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손가락으로 껍질을 문질렀을 때 느껴지는 거친 촉감,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흙의 흔적이 그에겐 위안이었다. 하지만 파이브헌드레드 지방으로 이주한 후, 도시에서 파는 그것들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런 진짜 감자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사국 농산물 유통법 제17조에 따라, 땅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판매하는 행위는 CSP 위반으로 중대한 불법임을 알려드립니다."
이강우는 농업길드의 빨간 봉인지가 붙은 공문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세 번째 경고였다. 하지만 그는 계속했다. 아니,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완두감자는 이미 살롱즈의 32명의 구독자들에게 약속된 상품이었으니까.
완두감자는 이강우가 5년 동안 개발한 품종이었다. 완두콩의 달콤함과 감자의 포근함을 교배한 이 농작물은 일 년에 딱 한 달, 봄이 여름에 자리를 내어주는 짧은 기간에만 수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반드시 흙에서 자라야만 했다.
"농산물도 CSP를 충족해야 한대. 흙에서 재배하는 건 위생상 문제가 있대. 하하, 웃기지 않아?"
호올네트 시절에도 이강우를 포함한 그 지역 농부들의 농산물은 서민구, 노마드, 힙스로 신나게 팔려나갔다. 몇몇은 종종 이강우의 밭을 찾아와 "불법 농산물"을 직접 맛보곤 했다. 호올네트 농부들 눈에는 도시의 규제가 우스꽝스러웠다. 술자리는 항상 "도시놈들은 하여튼..."이라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됐다.
반면, 비즈니스구와 궁정구, 살롱즈는 달랐다. 그들은 원칙적으로 "흙에서 자란 것"을 먹지 않았다.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농업길드가 제공하는 유해균 살균 토양과 물, 공기청정기 환경에서 생산된 농산물만이 그들의 식탁에 오를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강우의 소문을 들은 애호가들, 콜렉터들이 후원자가 됐고 이강우의 '불법' 완두감자는 더욱 계량되어 특별한 고객을 만족시키고 있었고, 이 상류 사회의 콜렉터들은 아예 이강우가 서울에서 가까운 파이브헌드레드 지역에 터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 상경하게 된 것이었다.
"강우씨, 올해의 그 완두감자는 언제 받을 수 있을까요?"
살롱즈의 미식 콜렉터 정소피아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올해의 완두감자 한상자를 위해 5백만 크레딧을 지불했다. 이는 보통 서민구중 부유한 층의 한 달 수입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다음 주 배송 가능합니다.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정소피아의 화상 통화 요청이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차분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문제라니요? 강우씨, 저와 제 친구들은 당신의 완두감자를 위해 전용 셰프를 고용해두었어요. 저희 콜렉터들에겐 핫앤 콜드 텍스처의 삼중 조리를 선보이기로 이미 다 이야기가 끝났는데 문제가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이강우는 농업길드의 단속 문제를 설명했다. 정소피아는 잠시 침묵했다가, 우아하게 웃었다.
"걱정 마세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파이브헌드레드의 농업길드 이사장 김준호가 직접 찾아왔다. 멋진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얼굴은 초췌했다.
"이강우씨, 왜 이렇게 골치를 아프게 하는 겁니까? 우리는 그저 법을 지키려는 것뿐입니다."
김준호의 얼굴은 지친 듯했다. 그는 계속해서 애절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 재배하는 방식은 위생상 문제가 있습니다. CSP 규정을 따라야 해요. 법은 지키셔야죠. 살균 토양과 공기청정기, 우리가 무료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동안, 이강우는 점심시간이 된걸 확인하고 도시락 용기를 꺼냈다. 반투명한 용기 안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무언가가 보였다. 감자였다. 표면에는 소금과 버터가 녹아 반짝이고 있었고, 희미하게 흙 냄새가 풍겨왔다. 농업길드장 앞에서 보란듯이 최고급 불법 감자구이를 시식했다.
이강우가 도시락의 맛을 음미하며 느긋하게 말했다.
"그럼 제 완두감자의 맛이 달라질 텐데요."
"맛이요? 맛보다 중요한 건 위생이죠."
김준호의 공무원같은 말투에 이강우는 피식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농업길드가 매년 호올네트에서 몰래 사들이는 그 많은 농산물들 라벨갈이는 다 어떻고요? 그것도 다 위생 때문인가요?"
김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그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이야기였다.
"살롱즈의 정소피아 님께서 제 완두감자를 무척 좋아하신다더군요. 그녀와 친구들이 제 농장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세요."
김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의 딸 수진이 살롱즈 국제학교에 다니게 된 것은 바로 정소피아의 도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롱즈 출신도 아닌 수진이 그곳에 입학할 수 있었던 건, 김준호가 농업길드의 인맥으로 닿은 정소피아를 통해 학교 이사진에게 특별한 '선물'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이강우씨, 아니 이강우 선생님. 실은 어제 밤, 저희 아이들이 모두 입학 거주지 자격미달 조사 대상이 됐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김준호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저 간절했다.
이강우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살롱즈의 권력이란 이런 것이었다. 단 한 통의 전화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었다.
"제발 도와주세요. 당신의 완두감자만 정상적으로 출하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 농장 인증? 우리가 처리하겠습니다. CSP? 당신의 농장은 이미 충족하고 있습니다. 공문으로 확인해 드리죠."
이강우는 한참을 그들을 바라보다가 작업실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이 시험 재배 중이던 '당근대파'를 들고 나왔다. 당근의 모양에 대파의 향을 가진 이 특별한 작물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의 새로운 실험이었다.
"이건 아직 미공개 샘플인데 선물로 드릴께요. 살롱즈 분들이 관심을 가지실겁니다."
김준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근대파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기적처럼 이강우의 농장은 'CSP 특별 승인'을 받았다.
완두감자는 예정대로 살롱즈의 구독자들에게 배송되었다. 그리고 비즈니스구와 힙스에서 비공식 구독 신청자가 십 배로 늘어났다. 모두가 1년 전에 예약해야만 하는 "상류의 특별히 부유한 맛"을 경험하고 싶어 했다.
이강우는 자신의 밭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도시의 규제, 위생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위선. 어쩌면 그가 재배하는 것은 단순한 농작물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작은 혁명인지도 몰랐다.
그는 다음 시즌 신상품인 당근대파 모종을 들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다음 시즌의 새로운 구독 상품을 위해, 가격표에 몇 개의 0을 더 추가할 때가 왔다.
"모두가 가질 수 없는 맛이 최고의 권력이다."
© 2025 MEJE Works. & WhtDrg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