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 지원 가이드

고등학생 인디게임 개발자를 위한 기획·심사·자기점검 통합 매뉴얼

by 김동은WhtDrgon

들어가며 : 이 가이드를 읽는 법, 그리고 이 글의 한계

먼저 솔직하게 말해두겠다. 나는 게임 업계에 오래 있었지만, 정부 지원과제의 전문가는 아니다. 심사위원실에 앉아본 적도 없고, 이 사업의 내부 기준을 직접 아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같이 지원서를 넣는 선배가 "아마 이렇지 않을까?" 하고 건네는 의견이다.


솔직히 말하면, 심사위원들이 어떤 기준으로 고르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공고문에 명시된 평가 기준이 전부일 수도 있고, 실제로는 절반 이상 완성된 프로젝트를 선호한다거나, 이미 유사한 게임을 출시한 경력 있는 개발자가 유리하다거나, 탈락·환수 리스크가 적은 팀을 고른다거나 그런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정부 지원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것'을 고르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 나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이 글을 "정부 지원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권위 있는 가이드로 읽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냥, 게임을 오래 만들어온 사람이 기획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정리해본 것이다. 맞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틀린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 전제 위에서 읽어주길 바란다.


이 가이드는 네 개의 층위로 구성된다. 첫째는 심사자의 눈이다. 공모 사업에서 아마 이런 기준이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과, 그에 맞춰 기획을 다듬는 방법이다. 둘째는 게임의 구성요소다. 스토리, 콘텐츠, 시스템, 리소스, 플레이라는 다섯 축을 각각 점검한다. 셋째는 인접 세계관이다. 이 게임이 어떤 사람들의 삶과 닿는지를 생각하는 방법이다. 넷째는 자기점검 체크리스트와 AI 활용법이다.


이 가이드의 핵심 전제: '만들 수 있는 것'을 기획하되, '만들어도 되는 것'만 기획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야망이 없는 기획은 완성되어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Part 1. 심사자의 눈 — 아마 이런 논리가 작동하지 않을까


1-1.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게임이라는 맥락

코리아 인디게임 데브캠프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사업이다. 재원은 세금이다. 이것은 단순한 부연이 아니라, 심사 논리의 출발점이다. 납세자의 돈으로 지원할 게임을 고른다는 것은, 그 게임이 대중 문화 콘텐츠로서의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훌륭해도, 그것이 사회에 어떤 가치를 돌려주는지 설명하지 못하면 심사위원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반면 이 사업이 '인디게임' 지원임을 기억하라. 인디게임은 독립적인 창작 정신을 전제로 한다. 대형 자본이 만드는 게임이 채우지 못하는 빈칸을 채우는 것, 상업 논리가 배제하는 주제를 다루는 것, 주류 시장이 외면한 감수성을 건드리는 것이 인디게임의 존재 이유다. 공공의 가치와 독립적 창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기획이 바로 이 공모에서 선발된다.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은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나이에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고등학교라는 공간, 입시라는 압력, 또래 관계의 복잡함, 미래에 대한 불안이 모든 것이 다른 어느 개발자도 당신만큼 생생하게 다룰 수 없는 소재다. 솔직히 그걸 잘 모르겠어도 설득력을 가진다. 요즘 대학생이 뭘 좋아하는지는 원리상 한 명의 대학생이 대답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대답은 설득력과 신빙성을 가진다. 자신의 경험을 게임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언제나 훌륭한 무기가 된다.


게임을 만드는 문서와 게임을 만들기 위한 지원서는 엄연히 다른 문서이다. 기획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쓰여져야 한다. 필요하다면 AI의 힘을 빌려서라도 읽는 사람에 맞춰서 버전을 바꿔야 한다. 지원서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 단계에서 세상의 불의, 불합리함 뭐 그런 것을 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목적에 집중하자.


1-2. 심사 기준 해독

공고문에 명시된 평가 기준은 두 항목이다.

(70점) 플레이, 시스템, 내러티브 등이 독창성과 차별성을 보유하고 있는가?

(30점) 목표, 조작, 구조 등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는가?


70점짜리 항목이 '독창성과 차별성'이라는 점에 주목하라. 심사위원들은 연간 수백 건의 기획안을 검토한다. 그들의 눈에 걸리는 것은 단 하나, '이건 처음 보는 거네' 라는 인상이다. 그 인상은 전혀 새로운 기술이나 장르에서 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 게임이 왜 지금 이 시대에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에서 온다.

선배로서 조언을 하자면 '독창성과 차별성'은 창작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시도에 대한 결과 같은 것이다. 즉, 인디가 독창성을 만들고, 차별성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해야만 하는 것,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만들고야 말 것을 하다보니 그런 결과물이 나와버리는 것 뿐이다.


30점짜리 항목 '명확한 정의'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다. 아무리 참신해도 실제로 만들 수 없으면 지원금을 줄 이유가 없다. 고등학생이라면 여기서 현실적인 규모 감각을 보여줘야 한다. '거대한 오픈월드 RPG'가 아니라, '방 세 개짜리 퍼즐 게임인데 각 방이 하나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식의 구체성이 필요하다.


체크리스트: 심사자 관점

공공적 가치 : 이 게임이 세상에 나왔을 때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가?

독창성 : 내가 아는 기존 게임 중 가장 비슷한 것은?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차별성 : 이 게임만의 핵심 요소를 한 단어로 말하면?

구현 가능성 : 팀 인원·기술 수준·기간을 감안한 '최소 기능 버전'은 어디까지인가?

인디 정신 : 대형 자본이 이 게임을 만들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시대적 맥락 : 왜 2026년에 이 게임인가? 지금 이 시대의 어떤 질문에 답하는가?


Part 2. 게임의 구성요소 - 다섯 개의 축으로 기획을 해부하라

좋은 게임 기획서는 다섯 개의 축이 서로를 지탱한다. 스토리가 시스템을 설명하고, 시스템이 플레이를 생성하고, 플레이가 스토리를 체험하게 만든다. 리소스는 이 모든 것을 감각으로 전달하는 껍질이며, 콘텐츠는 그 껍질 안에 담긴 내용물이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게임은 흔들린다.


2-1. 스토리 - 무엇을 말할 것인가

스토리는 단순히 서사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퍼즐 게임에도 스토리가 있고, 액션 게임에도 주제가 있다. 여기서 '스토리'란 이 게임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이라는 넓은 의미다. 주제, 세계관, 인물, 갈등, 해소의 다섯 요소가 기초를 이룬다


고등학생 개발자가 흔히 빠지는 함정은 '멋진 세계관'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수백 페이지의 설정집보다 단 한 줄의 명확한 주제가 낫다.

'이 게임은 [A]를 경험한 사람이 [B]를 느끼고 [C]를 깨닫는 게임이다'

라는 문장을 완성할 수 있다면, 스토리의 핵심은 잡힌 것이다.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있어 보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실제로 겪은 감정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플레이어에게 닿는다. 당신이 느낀 외로움, 억울함, 희망, 배신감이 소재가 될 수 있다. 픽션은 그 감정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그릇이다.


체크리스트: 스토리

주제 한 문장 : '이 게임은 결국 ___에 관한 이야기다'를 한 문장으로 쓸 수 있는가?

주인공의 욕망 : 주인공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이 방해받는 이유는?

세계관의 필연성 : 이 세계관이 이 주제를 전달하는 데 꼭 필요한가?

감정의 곡선 : 게임을 끝냈을 때 플레이어는 어떤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는가?

진정성 : 이 스토리는 개발자 자신의 경험·감정과 연결되어 있는가?

결말의 울림 : 엔딩 후 플레이어가 떠올릴 장면이나 감정이 하나라도 있는가?



2-2. 콘텐츠 (Content) - 무엇을 담을 것인가

콘텐츠는 게임 안에 존재하는 모든 '할 것'의 목록이다. 레벨, 퀘스트, 아이템, 이벤트, 선택지, 수집 요소 등이 여기 속한다. 그러나 단순히 목록을 채우는 것이 콘텐츠 기획이 아니다. 핵심은 각 콘텐츠가 게임의 주제와 감정을 어떻게 강화하는가이다.

인디게임에서 콘텐츠의 양보다 밀도가 중요하다. 10시간 분량의 허술한 콘텐츠보다 2시간 분량의 빽빽한 의미가 낫다. '왜 이 장면이 여기 있는가'에 답할 수 없는 콘텐츠는 삭제 대상이다. 심사위원도, 플레이어도 그 밀도를 느낀다. 잘 만든 인디게임은 플레이어가 "이 게임의 모든 요소가 이유 있게 놓여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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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제웍스 CEO. 배니월드,BTS월드, 세계관제작자. '현명한NFT투자자' 저자. 본질은 환상문학-RPG-PC-모바일-쇼엔터-시네마틱-게임-문화를 바라보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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