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 정의, 층위, 역할
세계관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세계관은 작품이 흥행한 이후 사후적으로 구축되는 것이었다. 하나의 작품이 성공하면, 그 작품의 배경과 설정을 더 알고 싶어하는 독자와 상품화를 원하는 기업의 필요가 맞물려 설정집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세계관의 자연발생적 형태이다.
장난감 회사들이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기 만화나 영화의 세계관을 상품으로 구현하려면, 화면에 나오지 않은 부분들, 예를 들어 우주선의 내부 구조나 등장인물의 장비 세부 사항을 규정해야 했다. 이 필요가 설정집이라는 형태를 만들어냈다. 장르 문학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있었다. 판타지나 SF 작가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적 요소들, 특정 종족의 생태나 마법 체계의 원리 같은 것들이 작가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축적되었다.
스타워즈는 이 과정에서 가장 극단적인 사례이다. 팬들이 자발적으로 구축한 설정의 총량이 수십만 개에 달하는 표제어를 가진 위키로 성장했다.¹ 이것은 처음부터 설계된 것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팬덤이 스스로 쌓아올린 지식 체계이다.
¹ 스타워즈 팬덤이 운영하는 위키피디아 형식의 세계관 데이터베이스 '우키피디아(Wookieepedia)'는 2024년 기준 약 18만 개 이상의 문서를 보유하고 있다. 이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팬들이 설정을 스스로 발굴하고 기록하는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다.
전통적인 구전 문학과 장르 문학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손자에게 전해지고, 손자는 그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각색하여 다시 전한다. 무협 소설에서 구파일방²이라는 설정이 수십 명의 작가에 의해 조금씩 다르게 변주되면서 하나의 공유된 세계관적 언어가 형성된 것도 같은 원리이다. 장르 문학의 세계관은 이처럼 전승 문학과 비슷한 방식으로 집단적으로 구축된다.
² 구파일방(九派一幇): 무협 소설에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무림 문파와 방파의 집합. 소림, 무당, 화산, 개방 등이 포함된다. 특정 작가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무협 작가들이 공유하며 발전시킨 장르적 공유 자산이다.
그러나 현대의 IP 산업은 이 자연발생적 과정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콘텐츠 포화 시대에 작품이 흥행하기를 기다린 후에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하면 이미 늦다. 알고리즘은 명확한 정체성을 먼저 요구하고, 팬덤은 처음부터 몰입할 수 있는 세계를 원한다. 이것이 세계관 설계가 창작의 사전 작업이 된 이유이다. 과거에는 수동적으로 자연발생했던 세계관이, 이제는 능동적으로 설계되어야 하는 창작의 핵심 구조물이 되었다.
[소결]
세계관은 역사적으로 작품 흥행 이후 사후적으로 구축되는 자연발생적 과정을 거쳤다.
장르 문학과 팬덤은 집단적으로 세계관을 축적하고 공유하는 전승 문학적 구조를 가진다.
현대 IP 산업에서 세계관은 창작의 사후 작업이 아니라 사전 설계의 대상이 되었다.
세계관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전혀 다른 개념을 동시에 지시한다. 이 혼용은 일본에서 유니버스 세팅이라는 개념을 세계관이라는 단어로 번역하면서 발생했다. 원래 세계관은 월드뷰(World View)의 번역어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뜻한다. 기독교 세계관, 이슬람 세계관처럼 종교적, 철학적 맥락에서 주로 쓰이던 단어였다.
월드뷰로서의 세계관은 주체가 세계를 해석하는 인식의 틀이다. 세상은 단일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어머니가 바라보는 세계와 그 자녀가 바라보는 세계는 같은 물리적 공간을 공유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 체계를 가진다. 종교는 이 인식의 틀을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어떤 해석 체계를 통해 세계의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해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한다.
한 인간의 내면에는 사실 여러 개의 세계관이 공존한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나, 직업인으로서의 나, 특정 문화를 소비하는 팬으로서의 나. 이 각각의 역할은 저마다 다른 가치 기준과 소비 패턴을 가지며, 때로는 서로 충돌한다.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국가 세계관과, 가족 곁에 머물러야 한다는 가족 세계관이 충돌하는 상황이 그 예이다. 좋아하는 작가가 적국의 국민일 때, 작품 세계관과 애국 세계관이 충돌하는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충돌을 세계관의 언어로 읽으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인식 체계의 충돌로 이해할 수 있다. 해석과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유니버스 세팅(Universe Setting)으로서의 세계관은 다르다. 이것은 특정 작품이 존재하는 허구적 공간의 규칙과 역사와 문명을 설계하는 행위이다. 스타워즈의 우주, 해리포터의 마법 세계, 반지의 제왕의 중간계. 이것들은 각각 독자적인 물리 법칙, 역사, 언어, 문화를 가진 허구의 세계이다. 이 세계의 설계를 유니버스 세팅이라 하고, 일본식 번역을 통해 이것 역시 세계관이라는 단어로 불리게 되었다.
영어로 번역할 때는 두 단어로 구분해야 한다. 창작자의 관점과 메시지를 담은 인식의 틀은 월드뷰(World View)이고, 그 관점이 투영된 허구의 우주는 유니버스(Universe) 또는 세팅(Setting)이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창작자는 자신의 월드뷰를 표현하기 위해 유니버스를 설계한다. 유니버스는 월드뷰가 구현된 결과물이다. 그래서 훌륭한 세계관은 단순히 복잡한 설정의 집합이 아니다. 그 안에 창작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고유한 관점이 담겨 있다.
[소결]
세계관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월드뷰)'과 '허구 세계의 설계(유니버스 세팅)' 두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한 인간 안에는 여러 세계관이 공존하며, 그 충돌을 이해하는 것이 창작의 출발점이 된다.
뛰어난 세계관은 복잡한 설정이 아니라 창작자의 관점이 유니버스로 구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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