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결정은 구체적 '개인'이 한다. 문제는 '그'의 철학이다.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2023년 7월 출간한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에서 종묘 앞의 세운상가 등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개발에 대해 비판적으로 진단한 바 있다. 그 책의 표지 사진 자체가 종묘 앞 세운상가 일대의 풍경이었다. 총 13개 챕터로 구성된 책에서 3개 챕터를 할애했다. 나름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야 하며 그만큼 심각한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책을 쓴 이후로도 계속 종묘 주변 상황을 지켜보고, 최근 언론에서도 많이 언급하듯 일본 등에서는 비슷한 사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살펴보며 습득한 내용을 정리했다. 관련 논란이 한창일 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산발적으로 늘어놓은 글을 이곳에 모아놓는다.
2025. 11. 11.
종묘 논란
+ 종묘는 조선왕조의 사당이다. 경복궁 등 다른 문화유적과 달리 종묘는 한국전쟁 등 포화 속에서도 살아남은 진귀한 유산이다. 보호해야 마땅하다.
+ 지금 서울시발 논쟁의 핵심은 종묘 내부에서 볼 때 현대식 타워의 상층부가 보이면 유산, 정확히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냐는 것이다.
+ 보기에 따라 다르다. 유적지에서 그 어떤 현대 문명과 단절된 상태에서 특유의 운치를 즐기고 싶을 수도 있고, 유적과 현대 문명이 중첩돼 보이는 데서 오는 이중적 분위기를 즐기고 싶을 수도 있다. 둘 다 말이 된다고 본다.
+ 중요한 건 유네스코의 관점이다. 서울시가 지금 142미터 타워를 짓고 싶어하는 그 사이트에 대해, 유네스코의 자문기구인 이코모스가 이미 2009년에 50~70미터 정도로 낮춰야 한다고 권고하고, 서울시가 따른 바 있다. 심지어 당시에 빛반사가 심한 재료는 쓰지 말라고도 했다. 이후 개발이 지지부진했고, 서울시는 142미터로 높여 개발을 다시 추진하고 싶어한다.
+ 종묘는 아니지만, 유사한 다른 사례도 있다. 이성계의 부인인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역시 세계문화유산이다.) 인근 아파트 재개발을 두고,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 요청을 받은 유네스코 측이 고층 아파트 건설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 미뤄서 보면, 유네스코는 142미터 타워를 짓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에 부정적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유네스코의 판단을 미리 구해보자고 하는데, 아마 서울시는 별로 응하고 싶지 않을 거다. 전례를 통해 자신들에게 좋은 결과가 나올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 실제로 유네스코가 주변 환경 변화 등에 따라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취소한 사례도 있다.
+ 일본 황궁 앞 마루노우치 지역의 200미터 고층 빌딩이 즐비한 것으로 반론하기도 하는데, 황궁은 세계문화유산도 뭣도 아니다. 동일선상에 놓을만한 사례가 아니다.
+ 그렇다고 유네스코는 무조건 옳은가? 조금 삐딱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런 문제제기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왕조국가의 유산을 우리가 여전히 절대적인 가이드라인으로 삼을 필요가 있는냐는 점 말이다. 세계문화유산이란 타이틀 박탈은 충격적 사건이 되긴 하겠으나, 어차피 우리 도시가 관광객 많이 오라고 존재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타이틀 좀 없으면 어때서.
+ 그래서 서울시는 자꾸 '종묘에 영향 없다'라고 박박 우길 게 아니라(세계문화유산 타이틀 박탈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하므로) 성실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타워를 지금의 70미터가 아니라 140미터로 높이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고층부 임대 등 수익성이 훨씬 커져 지지부진한 도심 재개발이 갑자기 활력을 띨 수 있는가?
+ 이런 이야기를 좀 할 필요가 있는데, 아마 안 할 거다. 그냥 지금 서울시장은 시원한 스카이라인이나 아름다운 야경 같은 것에만 관심 있는 스타일리스트일 뿐이니까. 한강버스를 보고도 모르나.
2025. 11. 12.
종묘 논란과 관련해 알게 된 다른 맥락들
+ 서울시의회가 삭제하고, 대법원이 삭제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서울시 조례의 내용은 '문화재 보호구역(100미터) 바깥에 짓는 건축물이더라도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 같으면 국가유산청 등과 협의하라'는 내용이다. 이 조례를 삭제함으로써 서울시는 국가유산청 등과 협의 없이 종묘 앞 초고층 타워를 계획할 수 있게 됐다.
+ 이 조례는 어느날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이명박 서울시장 때(2002년) 만들어졌다. 20년 넘는 시간에 '문화재 인근 개발 사업'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그사이 뉴타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됐고, 그중엔 한양도성 인근에서 진행된 것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조례로 규정된 관례를 이번에 갑자기 끊고 가겠다는 거다.
+ 이게 찜찜한 이유는, 서울에 지금 종묘 앞 재개발 사업 말고 이 조례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유산청 등의 '지시'를 따르라는 것도 아니고 고작 '협의'하라는 거다. 서울시는 그것도 못한다는 거다. 알다시피 종묘 앞 재개발 사업은 현 서울시장의 숙원 사업이다. 그는 10여년 만에 서울시장에 돌아와 이전에 세웠던 종묘 앞 재개발 계획이 무산된 풍경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다"라고 말한 적 있다.
+ 요즘 보편적으로 옹호될만한 원칙이 그간은 이런저런 핑계로 적용되지 않다가, 유독 특정인과 관련해 갑자기 원칙을 운운해 적용되는 사례(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한다든지, 검찰이 항소를 갑자기 포기한다든지)로 논란이 크다. 종묘 앞 재개발이 내란이나 검찰개혁만큼 큰 관심을 받지 못해서 그렇지, 이 일의 맥락은 구속 취소 사건이나 항소 포기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유현준 교수가 유튜브 채널에서 서울이 권역별로 특색을 갖춘 도시가 되어가고 있어 매력적이라고 얘기하는 걸 봤다. 강남은 말 그대로 강남이고, 여의도는 대표 업무지구고, 홍대+연남동+합정과 성수동은 뭐라 규정하기가 어려운데 아무튼 그 특색을 우리는 다 느끼고 알고 있다.
+ 그래서 종묘 앞과 종로, 을지로 주변은 대체 뭐냐는 거다. 서울시는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그간 서울시는 이곳을 '역사도심'이라고 칭했다. 이제는 재개발로 그 성격을 완전히 바꾸려고 하는데, 서울시가 제시하는 조감도를 보면 여의도나 최경호의 표현대로 송도 같아 보인다. 그것이 우리가 종로와 을지로에 부여할 정체성으로 마땅한가?
+ 세운상가와 그 주변을 가보면, 비계획적으로 형성된 독특한 상권을 볼 수 있다. 오래된 철공소들과, 그 철공소가 떠난 자리에 유입된 가게들. 1년에 두세번 정도 가는데, 갈 때마다 자꾸 새로운 가게들이 생기는 걸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는 그래서 '힙지로'라고 불렀다. 서울시가 제시하는 재개발 이후 조감도에 담긴 풍경은 그것보다 매력적인가? 고유한 어떤 느낌이 있나? 잘 모르겠다.
2025. 11. 15.
종묘 논란에서 언론이 부실하게 다룬 맥락들
+ 우선, 현 서울시장이 방송에 나와 제시했다는 조감도.
+ 재개발 이후 높은 타워에서 종묘를 내려다 보는 장면을 상상해 그린 거다. 그런데, 종묘 밖에서 종묘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세계문화유산 논쟁과 아무 상관 없다. 중요한 건 종묘 안에서 밖이 어떻게 보이며, 그 경관이 종묘 특유의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다. 이 조감도는 언론이 비중있게 다룰 필요가 전혀 없다.
+ 다음은 '대법원이 서울시의 손을 들었다'는 서술.
+ 대법원은 '문화재 보호구역 바깥의 개발 행위일지라도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 같으면 국가유산청 등과 협의하라'는 조례를 서울시가 삭제한 것을 타당하다고 봤다. 그래서 판결만 놓고 보면 서울시가 '이겼다'는 뜻의 '손을 들었다'라고 쓰는 게 맞다.
+ 문제는 언론이 이걸 부적절하게 엮었다는 거다. '대법원도 서울시 손 들었다...종묘 앞 145미터 개발 가능' 이런 식으로 보도한 경우가 많다. 이게 부적절해 보이는 이유는 대법원은 '종묘 앞 145미터 개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만 보면, 마치 대법원이 종묘 앞 재개발이라는 세부 사안에 대해 서울시 손을 든 것처럼 읽힌다.
+ 전혀 그렇지 않다. 판결문을 보면, 대법원은 그저 서울시 조례와, 조례의 상위법 사이의 논리적 정합성, 체계만을 따질 뿐이다. 상위법 어디를 봐도 서울시가 문화재 보호구역 바깥 개발 행위에 대해 국가유산청과 협의해야 한다고 볼 근거는 없다는 얘기다.
+ 오히려 대법원은 '문화재 보호구역 바깥 개발 행위가 문화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유산청이 협의가 아니라 '강제로' 그 개발 행위를 저지할 수단이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국가유산청은 부랴부랴 종묘 앞을 유산보호지구로 묶는 절차를 개시했다.
+ 또, 일본 도쿄의 도쿄역과 황거(일왕의 거처) 사이에 있는 마루노우치 지역에 고층 빌딩이 즐비한 것을 두고, '종묘 앞에도 145미터쯤 세우는 게 어때서'란 식으로 보도하는 언론이 있다. 특히 ○○경제 같은 이름을 단 매체들.
+ 이것은 전혀 맞지 않는 비교다. 일단, 황거 자체가 종묘와 달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다. 도쿄는 2차 대전 당시 초토화돼 남은 유산이 거의 없고, 있더라도 현대에 재건한 것들이 많다. 종묘는 조선시대 호란, 왜란 등을 겪고 중건한 이후 한국전쟁 속에서도 극심한 포화는 피했다.
+ 게다가, 마루노우치에서도 그런 황거의 경관을 고려해 황거에 바로 면한 빌딩들은 100미터 정도로 높이를 낮추고 있다. 황거에서 멀어질수록 조금씩 높아진다. 그래서 황거에서 보면 그 풍경이 매우 조화롭게 느껴진다.
2025. 11. 16.
종묘 논란과 유정수의 인사이트
+ 글로우서울의 유정수가 종묘 논란에 관해 그의 생각을 말하는 영상을 올렸다. 요약하면, 이 모든 논란의 시발점이 현 서울시장의 '녹지축' 구상 때문이며, 고로 이것만 포기하면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부수고 종묘부터 남산까지 이어지는 녹지축(기다란 공원)을 만들면서, 그 주변을 고층빌딩숲으로 만들고자 한다. 유정수의 문제의식은, 이렇게 세운지구의 30%나 되는 땅을 무리하게 녹지축, 공원으로 비우려고 하다보니 그만큼 주변 빌딩의 용적률을 키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142미터까지 높이자는 발상이 나온 거고.
+ 하지만, 녹지축을 포기하고 그 땅도 빌딩으로 채우되 높이를 낮추면, 공간의 체적은 똑같이 확보하면서도 문화유산 가치 훼손 논란이 없을 거라는 게 유정수의 생각이다. ('공간 천재' 맞네!)
+ 사실, 녹지축 발상은 현 서울시장의 것이 아니다. 그 기원은 무려 1960년대 세운상가 계획 당시로 돌아간다. 김수근 휘하 김석철, 윤승중 등이 이 일대 재개발 계획을 짜면서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아이디어를 냈고, 이 공중보행로는 원래 녹지로 채울 생각이었다. 녹지축은 60년 전 불과 20대 후반이었던 패기 넘치는 건축가 2명의 머리에서 나왔다.
+ '예술의 전당' 건축가인 김석철은 2000년대 중후반 서울의 그랜드한 개조를 고민하고 책도 쓰고 강연을 다닌다. 그 당시 주제 중 하나가 미완에 그친 '세운상가 녹지축'의 완성이다. 대신, 이번엔 공중이 아니라 세운상가를 부순 다음 땅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을. 서울시 고위 간부 초청으로도 공부모임을 열었는데, 당시 서울시장이 알다시피 현 서울시장이다. '세운녹지축'은 2009년 재임 중 추진했던 '세운초록띠공원'에서 이름만 바꾼 거다. 그때도 초록띠공원이 사업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많았다.
+ 이 스토리를 파악하고 나니 심하게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20세기 중반 거의 백지 상태의 수도 서울을 배경으로 과감하게(어쩌면, 제멋대로) 펜대를 놀릴 수 있었던, 그 20대 건축가들의 사상에 우리는 아직도 사로잡혀 있단 말이냐. 대체 그놈의 '축'이 뭐길래.
+ 조감도에서야 그렇게 뻥 뚫린 축이 보기 좋아서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투시도에서는 그렇게 뻥 뚫린 축이 없어도 얼마든지 사람도, 차량도 이어지게 만들 수 있다. 지금 서울시의 구상은 종묘부터 남산까지 사람들이 걷게 만들고 싶은 것 아닌가. 목적이 '축' 자체는 아니지 않은가. 두번째 임기라서 더 집착하는 건 알겠으나, 이젠 잊을 때도 됐다.
+ 그놈의 녹지축 개념이 김수근 집단에서 나왔지만, 정작 현 서울시장은 그 김수근의 세운상가를 어떻게든 부숴서 녹지축을 이루겠다니, 이 상황도 참 아이러니하다.
2025. 11. 18.
종묘 논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이야기
+ 정부는 종묘 앞을 세계유산지구로 묶겠다고 하고(그럼 142미터 초고층 빌딩 계획은 관련 법에 따라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주변에서 다른 재개발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마지못해 협의하자는 제스처를 보인다. 서울시가 삭제한 조례의 내용이 '문화재보호구역 바깥이라도 세계문화유산에 영향을 줄 것 같으면 국가유산청과 협의하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협의할 거, 일만 더 복잡해졌다.
+ 이제는 좀 더 차분히 생각해 볼 때. 142미터 초고층 계획의 최대 문제점은 '형식'만 있지, '내용'이 없다는 거다. 재개발 대상인 세운지구 중 종묘에 가장 가까운 구역에 142미터를 세우면, 그보다 먼 구역엔 142미터가 아니라 192미터가 생길 수도 있다. 건물의 키는 엄청 키우는데, 그 큰 키에 대체 무엇을 채워넣을 것인지 밑그림이 안 보인다. 서울시 보도자료 등에는 '신산업 거점'이나 '일, 주거, 문화가 공존' 같은 애매한 표현이 전부다.
+ 서울시가 매우 좋아하는 세계적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 노들섬 구조물을 디자인한 사람인데, 최근 역작으로는 일본 도쿄의 '아자부다이힐스'가 꼽힌다. '롯폰기힐스' 같은 힐스 시리즈로 유명한 모리빌딩의 재개발 사업이다.
+ 아자부다이힐스의 목표는 단순하고 분명했다. 글로벌 자산가들을 불러모으는 것이었다. 그들을 위해 아자부다이힐스엔 유명 국제학교와 일본 명문 대학병원을 유치했다. 롯폰기힐스의 컨셉은 '문화도심'이다. 초고층 빌딩 최상층에 전망대와 아트센터가 있어 주변 직장인들을 끌어올린다.
+ 계획도 계획이지만, 그 다음도 중요하다. 모리빌딩은 힐스 근처에서 끊임없이 '사건'을 만들어낸다. 겨울 일루미네이션 등 사계절 내내 축제를 기획하고, <힐스라이프>라는 소식지를 발간한다. 모리빌딩은 '건물을 짓고 끝나는 게 아니라 거리를 만들자'는 모토로 일한다.
+ 도쿄에는 부촌인 미나토구는 모리빌딩, 시부야구는 도큐부동산, 업무지구인 마루노우치는 미쓰비시 등으로 지역 부동산을 대거 소유해 개발한 다음 운영,관리까지 이어가는 디벨로퍼 문화가 있다. 2022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마루노우치 거리의 풍경은 정말 흥미로웠다. 여의도나 상암에 이런 문화가 있던가? 다들 자기 건물 내부에만 집중할 뿐, 주변 지역, 거리 전체를 신경쓰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 우리에겐 이런 디벨로퍼 문화가 없다. 개발하면 분양해서 수익을 내고 손을 턴다. 그래서 서울시가 잘해야 한다. 개발하려는 곳에서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밑그림이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저런 토건업자들이 몰려들어 돈잔치만 벌이고 끝날 것이다.
+ 모리빌딩은 재개발하려는 지역에 빈 집이 생기면 사들여 직원을 입주시키고 각종 이벤트를 열고, 동네 청소를 한다. 힐스 시리즈는 보통 10~20년씩 걸려 완성된다. 파견된 직원들은 그 지역에 상주하며 그곳을 더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지역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다르다. 어쩌면 그것이 서울시가 그토록 외치는 '도시경쟁력'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2025. 12. 2.
종묘 논란과 현 서울시장의 고집
+ 세운지구 땅 팔겠다는 한호건설 입장문을 끄덕끄덕하며 읽었다.
+ 사실 '종묘 앞 세운지구 개발' 문제를 '민간자본 특혜' 같은 (전통적) 프레임으로 보는 건 어색한 감이 있다. 이 사업은 현 서울시장이 무려 16~17년 전 그때도 서울시장으로서 시작했으며, 녹지축(선형공원)을 만드는 비용을 인근 개발구역에 부과해 그때도 논란이 컸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실패할 거란 지적을 그때도 받았다.
+ 그 서울시장은 뒤늦게 시청에 돌아와 여전히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녹지축을 이루려고 한다. 그렇다고 공원 만드는 비용을 민간(=한호건설 등)에 억지로 지울 수는 없으니, 높이와 용적률을 올려주는 대가로 받아내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이번엔 종묘 경관 훼손 논란이 발생했다.
+ 이 사태는 현 서울시장 개인의 캐릭터 분석을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 사실, 최근 한강변의 재건축하려는 아파트단지들은 '의외로' 현 서울시장 때문에 내분을 겪는 곳이 적잖은데, 그가 '한강변 임대아파트 배치'를 밀어부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아파트를 초고층 혹은 한강 조망으로 지어야 한다는 건 그가 줄곧 내비친 생각이다. 이걸 받아내기 위해 역시 용적률을 팍팍 올려준다. 그래도 이 문제로 내홍을 겪으며 '의외로' 현 서울시장을 끌어내리니 마니 하는 재건축단지들이 있다.
+ 세운지구 녹지축과 한강변 임대아파트, 이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 서울시장은 정통 보수가 시장의 요구, 여기서는 건설자본의 요구 혹은 재건축조합의 요구에 민감한 것과 달리, 그런 사업의 지체까지 불사하며 무리하게 뭔가를 얻어내려고 한다. 공적인 목적을 위해 그런다고 포장하기는 어려운 것이, 그가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해선 아랑곳하지 않고, 임대주택의 물량 증대를 딱히 원하는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 녹지축 포기하면 세운지구 개발이 좀 더 수월해지고, 한강변 임대아파트 포기하면 강남 재건축도 좀 더 수월해질 거다. 그런데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단순히 '내가 세운지구를 개발했다' '내가 재건축을 활성화했다' 정도의 평가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에겐 더한 것이 필요하다. 녹지축이, 그리고 한강변 임대주택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마 정치적 상징이 되어주리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버스에 대한 그의 접근법과 다르지 않다. 출퇴근용이 아니면 어때. 한강에 배만 띄우면 그만이지.
+ 세운지구처럼 도심이지만 지나치게 낙후돼 위험하기까지 한 곳엔 일정한 정비가 필요하다. 아파트 재건축을 하면 용적률 증대에 따라 이익이 발생하므로 임대주택 등으로 일정 부분 공공이 환수하는 게 맞다. 그런데 서울시는 녹지축을 고집하면서 세운지구 정비를 어렵게 만들고, 굳이 '한강변' 임대아파트를 고수해 더 많은 임대아파트를 확보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실리'를 버리고 '상징'에 집착한다. 그가 이 도시를 개인 갤러리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 문제의 핵심을 구체화해야 한다. 토건세력의 탐욕? 뭐 그런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도 물론 있겠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 당면한 문제는 현 서울시장의 철학이다. 건축과 도시 문제는 그것을 좌우하는 플레이어들의 정치적 욕망을 빼놓고 이야기하면 공허하기 짝이 없다. 도시에서 의사결정은 구체적 개인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