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회사 이야기 13

by 제이킴

Bangkok 방콕 Krung Thep

끄룽텝 마하나컨 보원 랏따나꼬신…위쓰누 깜쁘라씻

천사(텝)의 도시(끄룽)


원래 방콕은 대안對岸에 있는 톤부리시市의 한 지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예로부터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국제적으로 방콕이 끄룽텝을 대신하게 되었다. 사이암 만으로 흘러드는 차오프라야 강의 하구에서 약 30km 상류의 왼쪽 연안에 있으며 오른쪽 연안의 톤부리시를 편입하여 수도권을 이루었다.

기후는 전형적인 열대 몬순 기후에 속하여 1년 중 가장 더운 4월의 평균기온이 30℃ 최저기온인 1월은 25.6℃로 연교차가 불과 4.4℃이며 1년 내내 고온이 계속된다. 일교차는 하루에 최대 10.2℃ 연강수량의 대부분은 5∼10월의 우기에 집중되며 이 기간에는 남쪽 해상에서 불어오는 남서 몬순의 영향을 받는다. 11∼2월의 북동 몬순의 계절에는 강수량이 극히 적고 대기는 서늘하고 건조하여 1년 중에서 가장 쾌적하다.


18세기까지는 중국 상인의 취락에 지나지 않았으나 1782년에 왕도로 정해진 후부터 오늘날의 방콕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방콕이 차오프라야강의 굴곡부에 위치하여 방위하기 편리한 데다가 하구에 가까워서 외국 무역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방콕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 있어서 타이의 중심이다. 가령 행정에 있어서는 방콕에 있는 내무부가 지방행정을 통할하고 있으며 지방공무원도 중앙에서 임명된다. 전국적인 상거래도 방콕에서 행해지며 공장 건설도 방콕과 그 주변지역에 집중해 있다. 교육에 있어서도 1950년 말까지는 대학이 방콕에만 존재하였다. 또 僧團승단의 조직도 지방행정을 본떠서 방콕을 정점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이와 같은 방콕의 중앙집권화를 반영하여 통신·운수도 이곳을 기점으로 전국에 방사상을 그리며 뻗어 있으며 방콕은 타이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중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ESCAP(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ECAFE(유엔 아시아 ·극동 경제위원회)를 비롯한 유엔 산하의 여러 기구와 SEATO(동남아시아 조약기구) 등의 국제기구가 이곳에 있다. 이러한 방콕은 근대에 와서 경제발전과 더불어 크게 변모하였으며 근대적인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시내에는 대소 300개의 사원이 있을 만큼 일찍이 불교의 꽃을 피워 온 도시이다. 왕궁에 인접해 있는 왓 프라깨오에는 약 60cm 높이의 에메랄드 불상이 있어서 일명 에메랄드 사원이라고 부르는 가장 유명한 사원이다. 그밖에 대리석으로 만든 대리석 사원, 누운 석가상이 있는 왓 포, 방콕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왓 아룬 등이 있다. 출랄롱콘대학을 비롯하여 각국 대사관, 국제기구, 은행, 회사, 국립박물관, 병원, 호텔 등 근대적인 시설과 건축물이 많고, 일요일마다 왕궁의 광장에서 열리는 아침 시장과 수상시장, 국립박물관, 파스퇴르 독사연구소 등은 타이의 문화와 풍속을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옛 사원과 함께 관광객의 흥미를 끌고 있다.

방콕은 타이 제1의 무역항이었으나 차오프라야강의 수심이 얕아서 선박의 운항이 자유롭지 못하여 약 20km 하류에 있는 사무트프라칸과 사이암만 연안의 코시찬이 외항의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 수출품은 쌀과 티크재材이고 수입품으로는 기계류와 섬유제품 등이 많다. 시의 북부 교외에 있는 국제공항은 동남아시아 국제 항공로의 중심이다.


왓 포 안에 있는 거대한 와불


17세기에 만들어진 사찰로서 방콕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왓 포의 가장 큰 볼거리는 본당에 모셔진 길이 46m, 높이 15m에 달하는 크고 웅장한 와불상이으로 발에는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1832년 라마 3세의 명으로 제작된 불상으로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폭 5m, 높이 3m에 이르는 거대한 발바닥에는 정교한 자개 장식을 했는데 브라만교의 우주관과 삼라만상을 의미한다.



와불상은 무려 16년 7개월에 달하는 기나긴 복원 작업 기간을 거쳤다고 한다. 이를 통해 불상의 신비롭고도 온화한 표정과 자개 장식 등이 더욱 경이롭고 완벽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왓 포를 찾는 신도들이 와불상 뒤편에 줄지어 있는 둥근 놋쇠 항아리에 동전을 넣으며 기도를 하고 소원을 비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왓 포 사원에서 와불상에 못지않게 유명한 것이 바로 사원 동쪽 끝, 별도의 건물에 개설된 '왓 포 타이 전통 마사지 스쿨'이다. 전통 마사지 스쿨은 19세기 현대의학이 들어오기 전까지 태국의 주요한 전통 의학 기관이었다. 그 명맥을 이어 오늘날까지 전통 마사지 교육장으로 명성이 높다. 왓 포에 세워졌던 교육기관 중 하나인 태국 전통 의학이 발전한 형태로 오늘날에는 전통 마사지 교육장으로 명성이 높다. 이곳에서 태국 전통 마사지 시술을 받으려는 방문객들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룬다. 마사지사들이 많지만 예약 번호표를 받고 대기해야 할 만큼 인기다. 외국인이 참여할 수 있는 마사지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曼谷 Bangkok Krung Thep

克朗特普·马哈娜肯·博文·拉特娜·科辛…威斯努·甘普拉瑟姆

天使(泰普)的城市(咕隆)


曼谷原本只是大安对岸的顿武里市的一个地区,但自古以来就是商业中心,因此现在国际上曼谷取代了克朗泰普。 巢普拉亚河入塞安湾河口左岸约30公里,右岸有顿武里市入塞,构成首都圈。

气候属于典型的热带季风气候,一年中最热的4月平均气温为30℃最低的1月为25.6℃,年较差仅为4.4℃,全年持续高温。 昼夜温差最大日降水量10.2℃,大部分集中在5~10月的雨季,期间受南方海面吹来的西南季风影响。 在11月至2月的东北季风季节,降水量极少,大气凉爽干燥,是一年中最舒适的一年。

直到18世纪,这里还只是中国商人的聚居地,但1782年被定为王都后,这里开始发展成为今天的曼谷。 这是因为曼谷地处湄公河曲折处,便于防卫,又靠近河口,对外贸有利。 今天的曼谷在政治、经济、社会、文化等所有方面都是泰国的中心。 例如,在行政方面,位于曼谷的内务部统辖地方行政,地方公务员也由中央任命。 全国性的商务活动也在曼谷进行,工厂建设也集中在曼谷及其周边地区。 在教育方面,直到1950年末,大学也只在曼谷存在。 另外,僧團僧团的组织也效仿地方行政,以曼谷为顶点被制度化。

反映了曼谷的中央集权化,通信、运输也以此为起点向全国呈放射状延伸,曼谷不仅是泰国中心,也是东南亚中心。 因此,包括ESCAP(联合国亚太经济社会委员会)、ECAFE(联合国亚洲•远东经济委员会)在内的联合国下属多个机构和SEATO(东南亚条约组织)等国际机构都在这里。 这样的曼谷在近代随着经济发展发生了巨大变化,具备了近代城市的面貌。

市内有大大小小的300个寺院,是很早就开佛教之花的城市。 紧邻王宫的瓦夫拉盖有约60厘米高的翡翠佛像,因此又名翡翠寺院,是最有名的寺院。 此外,还有用大理石制作的大理石寺院、有躺着的释迦像的卧佛寺、曼谷历史最悠久的卧阿仑等。 包括苏拉隆孔大学在内,各国大使馆、国际机构、银行、公司、国立博物馆、医院、酒店等近代设施和建筑众多,每周日在王宫广场举行的早市和水上市场、国立博物馆、巴斯德毒蛇研究所等,发挥着介绍泰国文化和风俗的重要作用,与古寺院一起吸引游客的兴趣。

曼谷曾是泰国第一大贸易港,但由于乔普拉亚河的水深较浅,船舶航行不自由,位于下游约20公里的萨穆特普拉坎和塞安曼沿岸的科西昌起到了外港的作用。 主要出口产品是大米和茶叶材,进口产品以机械和纺织品等居多。 该市北郊的国际机场是东南亚国际航线的中心。


卧佛寺内巨大的卧佛


这座建于17世纪的寺庙是曼谷历史最悠久的寺庙.

卧佛的最大看点是供奉在本堂的长46米、高15米的巨大而雄伟的卧佛像,脚上刻着精巧的雕刻,是1832年以喇嘛三世之名制作的佛像,表现了释迦牟尼进入涅槃前的样子,在宽5米、高3米的巨大脚掌上进行了精巧的螺钿装饰,意味着婆罗门教的宇宙观和森罗曼像。

卧佛像经历了长达16年7个月的漫长的复原工作。 通过这些,佛像神秘而温和的表情和螺钿装饰等变得更加惊人和完美。 前来观看卧佛像的信徒们向卧佛像后面排列的圆形铜罐里放入硬币祈祷并许愿的样子也别具一格。

在卧佛寺内,不亚于卧佛像的有名的就是寺院东端,另外在建筑物内开设的"卧佛泰传统按摩学校" 传统按摩学校在19世纪现代医学进入韩国之前是泰国主要的传统医学机构。 继承其命脉,至今仍以传统按摩教育场而闻名。 作为在Watfo建立的教育机构之一的泰国传统医学的发展形态,今天以传统按摩教育场而闻名。 在这里接受泰国传统按摩的访客总是门庭若市。 虽然有很多按摩师,但人气很高,甚至需要拿到预约号码牌等待。 还准备了外国人可以参与的按摩教育项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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