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은 태국의 오래된 명칭으로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명나라 때부터 ‘暹羅섬라’.로 불렸었다.
유럽어로는 포르투갈어의 ‘sião’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팔리어의 ‘śyāma(암갈색)’에서 비롯된 말로, 흑인의 나라를 의미한다는 설과 나무에 뒤덮인 산, 즉 흑산黑山의 나라라는 설이 있다. 1939년 타이로 개명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잠시 시암으로 복귀하였다가 현재는 타이를 국호로 쓰고 있다.
왕과 나 The King and I 1956년
감독 월터 랭 주연 율 브린너 & 데보라 카
영국인 백인 여교사에게 감화되는 태국 왕 라마 4세 몽꿋의 이야기로 미화되었으나 태국에서는 왕실 모독죄로 이 영화가 개봉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린너가 연기한 황제의 카리스마와 포스는 압도적이며 그리고 이면에 감춰진 온화함까지 제대로 표현하였다. 1999년에 주윤발, 조디 포스터 주연의 <애나 앤드 킹>으로 리메이크.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안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한 실제 몽끗 왕과 굉장히 다른 이미지로 연출되었다는 비판을 받게 되는데 이 또한 영화사에서 기획한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브린너와 카의 연기의 앙상블이 좋았고 특히 <Shall we dance?>라는 영어를 배워 여교사와 궁전 홀에서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브린너가 습관적으로 되뇌던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이라는 반복되는 후크성 대사도 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율 브린너 1920-1985
러시아 태생 미국 배우 본명은 율리 보리소비치 브리네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광산 기사인 아버지와 인텔리겐치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친할머니는 몽골인이었으며 조상 중에 로마인의 혈통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인 보리스 브리네르는 대한제국으로부터 목재의 채벌권을 얻어 부를 얻었으나 러시아 혁명으로 몰락하여 광산 기사로서 생계를 근근이 유지하였다고 한다. 지난날 한때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지만 3살 때 부모가 이혼하였다.
이후 만주와 조선, 일본을 오가며 살다가 프랑스에 정착하였고 1940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당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으므로 미국 육군에 입대해 심리전 부대에서 대 프랑스 선전 방송을 하였고 전쟁이 끝나자 배우로 데뷔한다. 그의 가장 유명한 배역인 뮤지컬 <왕과 나>에서 맡은 타이의 몽꿋 왕 역으로 4,525번의 연극 공연을 했다. 또한 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왕과 나>에서도 같은 역할을 하여 1956년 아카데미 최고 배우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독특한 목소리와 삭발한 머리로 유명한데, <왕과 나>에서 맡은 역할 때문이며 그 삭발머리를 오랫동안 자신의 심벌로 유지했다.
1985년에 암으로 사망하였으며 가족으로는 아들이 있었다.사진에도 취미가 깊어서 부인과 자식들, 그리고 친구들을 찍은 사진들이 많은데 그중에 오드리 헵번도 여러 번 촬영을 했으며 매우 돈독한 동료 사이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