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킴 Feb 01. 2021

추억 일기 : 회사 이야기 17

툭툭이 운전 실습


오토바이를 삼륜자동차로 개조한 근거리 이동용 교통수단.

가성비가 좋아서 서민의 발로 불리는데 하루는 호텔 앞에서 손님을 대기하던 툭툭이 기사 아저씨한테 한 번 타보자고 했더니 씩 웃으며 허락해 준다.

운전석에 탑승해서 스위치를 조작해보니 일반 오토바이와 동일한 구조의 동력원으로 뒤에는 승객용 좌석으로 덧대어 최대 4명까지 탈 수 있는 구도인데 아무래도 오토바이 마력이라서 소음과 공해는 손님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호텔 입구는 일반 차량의 주정차 공간이 포함되어 널찍하므로 툭툭이 운전연습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나름 오토바이를 탄다는 기분이 들어서 뭐 그런대로 색다른 경험이기도 했다.

태국 기사 아저씨는 외국인인 내가 좌충우돌 툭툭이 운전에 열중하는 모습이 재미난 모양이다.

한동안 지켜보더니 씩 웃으며 이제 그 정도면 시내 주행도 가능할 것 같다고 하는데 내가 툭툭이를 타고 시내를 다니다가 사고라도 나면 상황 수습이 어려워지지 않겠는가?

다만 혹시 나중에 은퇴 후 따뜻한 나라를 찾아서 온다면 툭툭이 운전을 하면서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게 될지도?



Siam intercontinental hotel in Bangkok


내가 비행근무 중 가장 많이 투숙한 호텔로 방콕 시내에 보석처럼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의 방과 부대시설은 현대식이고 외부 환경은 자연 친화적인 타이 전통식을 가미한 느낌을 준다. 적당한 야외 수영장과 간이 테니스장도 있고 시내 접근성도 매우 훌륭하다.

복도에서나 식당에서 운이 좋으면 연두색 도마뱀이나 청개구리의 발견은 자연이 주는 덤으로 해석하시라.

최근에는 한국인 매니저가 상주하여 한국어 서비스가 편리함을 더해 준다.


시암은 태국의 오래된 명칭으로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명나라 때부터 ‘暹羅섬라’.로 불렸었다.

유럽어로는 포르투갈어의 ‘sião’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팔리어의 ‘śyāma(암갈색)’에서 비롯된 말로, 흑인의 나라를 의미한다는 설과 나무에 뒤덮인 산, 즉 흑산黑山의 나라라는 설이 있다. 1939년 타이로 개명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잠시 시암으로 복귀하였다가 현재는 타이를 국호로 쓰고 있다.



왕과 나 The King and I 1956년

감독 월터 랭  주연 율 브린너 & 데보라 카


영국인 백인 여교사에게 감화되는 태국 왕 라마 4세 몽꿋의 이야기로 미화되었으나 태국에서는 왕실 모독죄로 이 영화가 개봉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린너가 연기한 황제의 카리스마와 포스는 압도적이며 그리고 이면에 감춰진 온화함까지 제대로 표현하였다. 1999년에 주윤발, 조디 포스터 주연의 <애나 앤드 킹>으로 리메이크.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안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한 실제 몽끗 왕과 굉장히 다른 이미지로 연출되었다는 비판을 받게 되는데 이 또한 영화사에서 기획한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브린너와 카의 연기의 앙상블이 좋았고 특히 <Shall we dance?>라는 영어를 배워 여교사와 궁전 홀에서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브린너가 습관적으로 되뇌던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이라는 반복되는 후크성 대사도 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율 브린너 1920-1985

러시아 태생 미국 배우 본명은 율리 보리소비치 브리네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광산 기사인 아버지와 인텔리겐치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친할머니는 몽골인이었으며 조상 중에 로마인의 혈통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인 보리스 브리네르는 대한제국으로부터 목재의 채벌권을 얻어 부를 얻었으나 러시아 혁명으로 몰락하여 광산 기사로서 생계를 근근이 유지하였다고 한다. 지난날 한때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지만 3살 때 부모가 이혼하였다.

이후 만주와 조선, 일본을 오가며 살다가 프랑스에 정착하였고 1940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당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으므로 미국 육군에 입대해 심리전 부대에서 대 프랑스 선전 방송을 하였고 전쟁이 끝나자 배우로 데뷔한다. 그의 가장 유명한 배역 뮤지컬 <왕과 나>에서 맡은 타이의 몽꿋 왕 역으로 4,525번의 연극 공연을 했다. 또한 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왕과 나>에서도 같은 역할을 하여 1956년 아카데미 최고 배우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독특한 목소리와 삭발한 머리로 유명한데, <왕과 나>에서 맡은 역할 때문이며 그 삭발머리를 오랫동안 자신의 심벌유지했다.


1985년에 암으로 사망하였으며 가족으로는 아들이 있었다. 사진에도 취미가 깊어서 부인과 자식들, 그리고 친구들을 찍은 사진들이 많은데 그중에 오드리 헵번도 여러 번 촬영을 했으며 매우 돈독한 동료 사이였다고 한다.


그가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 공익광고에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이 시점에서 왠지 코미디언 이주일이 생각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가?

"나는 이제 떠나지만 여러분께 이 말만은 해야겠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마십시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담배만은 피우지 마세요."

작가의 이전글 추억 일기 : 臺灣 故事 1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