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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킴 Feb 02. 2021

추억 일기 :  탄생과 성장 25

父의 추억 #8 : 6.25


감격의 해방을 맞이했던 그 국민학생은 몇 년 후 6.25 전쟁 때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당시 아버지의 기억을 소환하자 지금도 생생하다며 떠올린 기억을 몇 가지 얘기하신다.

파죽지세로 내려온 인민군을 따라다니며 불렀던 군가가 생각이 난다고 하시며 인민군 사단장이 할아버지 집에서 숙박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불렀다는 북한 군가를 가사로 검색해보니 <김일성 장군의 노래>로 추정되는 가사는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으로 기억하신다.

인민군이 승승장구를 하면서 UN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하기 전까지 사회주의 통일을 목전에 두고 동요하던 국민들도 많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더군다나 수도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겪는 6.25는 다른 세상의 도래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나 개전 초기 파죽지세의 인민군 등장은 많은 주민들과 좌익 지식층들에게는 좋은 호재로 작용하여 동조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을 것이고 더군다나 어린이들의 눈에 비친 인민군은 개선군으로 비쳤을 테니 북한군을 따라서 북한 군가를 부른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 이었으리라

할아버지 집에서 유숙한 사단장은 다음 날 집을 떠나며 쌍둥이 학생들에게 “중2 학생들이니 5년 후 김일성 대학 정문에서 만나자.”며 격려를 하며 떠났다고 한다.

몇 개월 후 UN군이 전쟁에 투입되면서 아버지가 피난 중이던 시골에서도 UN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어린 중2 눈으로 처음 봤을 외국인 병사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더군다나 퇴각하던 와중에 미군 <딘> 소장이 생포되는 수모를 겪게 되는데 체포 당시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상황이 다급했다고 전해진다. 검색을 해보니 아버지 고향 근처에서 잡힌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국만리 타국에서 포로가 된 외국인 장군은 또 어떤 느낌이었을까?

처음 본 북한군들에게 잡히면서 겪는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자살을 떠 올린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되는 일로 보인다. 결국 그는 다행히 살아남았고 훗날 자유의 몸이 되지만 당시 포로군 생활은 분명 참기 힘든 나락이었을 것이다.


아버지 말로는 UN군들이 다급히 퇴각하면서 다량의 소총이나 수류탄 같은 무기들이 방치되어 당시 집집마다 젊은 이가 있는 집에는 소총들이 있었고 실탄이 소진될 때까지 인근 산에서 사냥을 하면서 놀러 다녔다고 한다.

중고등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소총으로 사냥을 다는 이야기인데 다행히 기억나는 안전사고는 없었다고 하셨다.

어느 하루는 사냥에서 노루를 잡아 친구들과 함께 잔치를 벌였다고 하는데 무척이나 재미난 추억이었을 것이다.

나는 군 복무 시절 해안 경비병, 중대본부 병기계 등의 경험을 했는데 수많은 사격과 화기 측정으로 다양한 무기들을 관리하고 사격할 기회가 있었다.


아는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사격이 주는 짜릿함과 격발의 흔들림에서 전해지는 묘한 쾌감을 몸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더군다나 사냥이라는 특성상 추적과 조준을 통하여 살상하는 대상이 사람만 아니라면 아마도 제일 흥분되는 게임이기도 하다.

수류탄을 깊은 내천에 던져서 떠올라온 어마어마한 민물고기들을 친구들이나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다고 하는데 양이 많아서 한꺼번에 다 먹지 못하고 민물 생선탕을 끓여 오랫동안 즐겼다고 하셨다.

붕어나 쏘가리 등 청정수역에서 자라는 민물고기는 탕으로 그리고 특히 시래기를 얹어서 찜으로 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히는데 수류탄으로 잡은 붕어찜은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그럴 줄 알았다면 나도 군에서 수류탄 투척 시범을 보일 때 바다고기가 몰리는 만조 때 던져 바다 생선 요리나 실컷 즐기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기는 하다.

갑자기 잘 된 붕어찜에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고 싶어 지는 밤이다.



북한

언어 한국어 면적 1,205만 4천㏊ 세계 97위 인구 2,588만 세계 54위


여담)

. 딘 소장이 지휘하는 24사단은 전차까지 동원하여 생각보다 강력한 전력의 북한군에 고전하다가 딘 소장도 34연대의 마지막 소대와 철수 중 북한군의 공격을 받게 되고 딘 소장이 탄 지프는 길을 잘못 들어서서 본대와 떨어지게 된 후 전북 진안군에서 북한군에게 생포된다.

. 북한군은 딘 소장이 장군인 걸 알지 못하였기에 심문하지 않았으나 딘 소장은 중요한 기밀을 지키기 위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북한군이 딘 소장의 신분을 알게 되지만 북한은 기밀을 알아내진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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