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리리야 닐리리’, 우리의 아침을 깨우는 리듬
몇 년 전까지 어머니는 TV를 켜서 오늘의 날짜와 요일을 확인하곤 하셨다. 날짜를 기억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긴 했지만, 교회를 가야 하는 날 등 날짜와 요일을 기억해야 할 이유는 여전히 있었다. 일요일 낮 전국노래자랑, 평일 저녁 6시 내고향, 그리고 뉴스 등 항상 보시던 프로그램들이 있었는데, 이것도 점점 줄어들어 TV를 켜는 일이 거의 없어져갔다. 그리고 오늘이 며칠인지도 점점 모르게 되었다.
그래서 약 2년 전부터 탁상 달력에 매일 저녁마다 메모를 시작했다. 주로 ‘센터에 갔다옴’이나 ‘교회 가서 예배드림’을 써놓으신다. 달력에 기록해야 한다는 것을 매일 기억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 자식들이 전화를 하거나 직접 확인을 하고 쓰도록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탁상달력을 보니 글을 쓸 수 있는 칸이 너무 작았다. 그래서 탁상 달력에는 동그라미 표시를 해서 오늘이 며칠이었는지를 확인하고, 작은 공책을 마련해서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소망센타 갓다옴. 새해 첫날 내 나이 92세가 된다’
2021년 1월 1일, 어머니가 처음으로 일지를 쓰기 시작한 날의 기록이다. 본인의 나이를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고, 나와 이야기하면서 92세임을 확인하고 쓴 것이다. 침대로 들어가기 전에 일지를 쓰도록 상기시키는 것, 그것이 내가 맡은 몫이다. 나도 아주 가끔씩은 잊어버려서 다음날 쓰거나 건너뛰는 경우도 있다.
어머니와 같이 산지 두 달쯤 되어가니 차츰 하루의 흐름이 만들어져 갔다. 아침에 시간 여유가 되면, 유투브를 보면서 체조를 시작했다. 물론 ‘치매예방체조’, ‘인지기능향상운동’ 등 어머니 맞춤형 운동이다. ‘닐리리맘보’, ‘무병장수가’, ‘도라지타령’, ‘누이’ 등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노래들은 아니지만, 내가 부르거나 누군가가 부르는 걸 들을 기회는 거의 없었던 노래에 리듬을 맞추면서 우리의 하루가 시작된다. 더워지면서 몇 달 중단했던 아침운동을 며칠 전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늦게 일어나서 건너뛰는 날도 많다.
나는 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요소 중 하나가 ‘리듬’이라고 언제부턴가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중학교 때 좀 치다 그만둔 피아노와 기타에 대한 미련이 있고, 기회가 되면 밴드나 중창 같은 걸 해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상상해보지 못한 리듬이 나의 아침을 깨우고 있다. 조금은 웃음이 나오는 인연이다. 확실히 몸을 깨우기 위해 좀 오버다 싶게 동작을 하면서 그 인연에 호응하고 있는 중이다.
운동 후 따뜻한 보리차 한 잔 마시고나서 어머니는 2층에서 1층까지 걸어서 내려가고 나는 배웅을 한다. 이 공간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널랑 나오지 말라”라는 말을 종종 했다. “어머니 계단에서 푸더지카부댄(넘어질까봐)”, 또는 “날씨가 어떤지 나도 한번 나가봐야지” 등의 말을 하면서 함께 나가서 차타는 것을 지켜보고 들어온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둔 엄마의 일상이 대략 이런 것일까 싶다. 어머니가 나가시고 나면 집안일 조금 하고, 점심 챙겨먹고 이것저것 할 일 하다보면 금세 어머니 오실 시간이 되어있다.
저녁시간은 TV 보기, 책읽기, 땅콩 까기, 콩 고르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얼마 전에 백내장 수술을 해서 시력이 많이 좋아진 어머니와 매일 성경 1장씩 같이 읽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영어 성경 읽기를 해볼까 하고는 조금 읽다 덮어두었던 것을 요즘 다시 시작했다. 어머니가 오시기 전 영어로 먼저 읽은 후에 어머니랑 같이 한글로 읽는다.
우리 둘이 같이 산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나랑 사니까 좋은지 안 좋은지를 어머니에게 물었다. 당연히 좋다길래 그럼 뭐가 제일 좋으냐 물으니 “근심걱정이 없지”라고 하셨다. 그럼 혼자 살 때는 근심걱정이 많았냐고 물으니 그 때는 별로 집에 오고 싶지가 않았다고, 이젠 집에 오면 너가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고, 맛있는 것도 잘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두 달이 되던 날에는 우리가 같이 산지 두 달이 되는 날이라고, 나랑 같이 살아서 좋은 점, 나쁜 점, 부탁할 점을 일지에 써달라고 했다.
‘진순이하고 산 지 두 달이 되엇다는데 내 생각에는 몇일박에 안된 것 같다. 정말 유수같은 세월이구나. 행복하단 말박에 할것없다’
지난 1월 11일, 행복한 어머니의 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