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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더슈탄트 Oct 07. 2023

[그리스] 01. 역사의 도시는 여전히

 소피아에서 저는 더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그리스에 도착합니다. 다시 쉥겐 국가에 들어왔으니, 이제 또 한동안 입국 심사를 받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를 거쳐 아테네에 도착했습니다. 유럽 문명의 탄생지라고 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도시가 가까워질수록 기대감도 커져갔습니다.


북해에서 대륙을 가로질러 남쪽의 바다를 만났다.


 하지만 의외로 아테네에는 많은 유적이나 유물이 남아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역사도시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아테네의 중심에는 여전히 높은 언덕 위에 파르테논 신전이 남아 있습니다. 주변의 작은 신전과 극장도 남아 있죠.


 하지만 그리스에 온전히 남아 있는 고대의 유물은 많지 않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유물과 조각도 지금은 영국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죠. 신전도, 개선문도 무너진 기둥으로만 남아 있기도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예상과 달리 그리스의 고대사에는 큰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그리스가 만들어진 근대사에 더 눈길이 가더군요.


 잘 알려져있다시피, 그리스는 유럽 문명의 발상지와 같은 공간입니다. 기원전 800년 경부터 이미 도시국가가 발달하기 시작했죠. 기원전 400년 무렵에 접어들면 그리스 문화의 황금 시대가 시작됩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는 물론, 극작가와 예술가 등이 문화적 역량을 펼쳐 나갔죠. 민주적 정치체제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리스는 아주 오랜 기간 독립된 국가를 갖지 못했습니다.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제국이 무너진 뒤에는 로마가 그리스를 차지했습니다. 동서 로마가 분열한 뒤에는 동로마가 그리스를 지배했죠. 동로마가 콘스탄티노플을 잃고 멸망한 뒤에는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를 장악했습니다.


무너진 제우스 신전


 결국 오스만 제국 말기에 가면, 그리스인과 튀르크인은 넓은 영토에 서로 섞여 사는 상황이 됩니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그리스 땅과 아나톨리아 지방을 같은 국가가 다스렸으니, 이것은 자연스러운 결말이었습니다.


 꼭 오스만 제국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이미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아나톨리아 서부에는 그리스인이 많이 거주했습니다. 당시에는 ‘소아시아’라고 불렀죠. 지금까지도 이 부근에서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유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트로이나 니케아, 페르가몬 같은 도시가 대표적이죠.


 동로마 시절에도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애초에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와 달리 라틴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했습니다. 이들이 제국 멸망 이후에도 아나톨리아 반도에 소수민족으로 남아 오스만 제국 내의 ’그리스인’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죠.


 반대로 지금 그리스 땅에도 튀르크인이 많이 거주했습니다. 튀르키예 건국의 아버지인 케말 파샤도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태어났습니다. 반대로 그리스의 독립전쟁을 이끈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는 이스탄불에서 태어났죠.


테살로니키의 케말 파샤 생가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 언어를 사용하는 두 집단이 섞여서 거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근대에 접어들면서 여러 모순을 초래하게 되었죠.


 19세기 이후 그리스에도 내셔널리즘이 성장합니다. 그리스인이 그리스인만의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각국에 퍼졌던 국민국가의 이념이 그리스까지 넘어온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인은 오스만 제국을 향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1821년에 시작된 전쟁은 1829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이미 몰락하고 있던 제국이었습니다. 반면 그리스는 러시아나 영국 등 열강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죠. 전쟁은 분전 끝에 그리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렇게 그리스 왕국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에게 남은 길은 아직 험하기만 했죠. 그리스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어쨌든 열강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신생 국가인 그리스에게는 열강에 진 막대한 빚이 남았습니다.


 왕국이 세워졌지만, 정작 그리스인은 국왕도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독립 직후 몇 년 간은 열강의 신탁 통치를 받았죠. 이후에는 열강의 합의에 따라 바이에른의 왕자가 그리스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그리스인은 대부분 정교회 신자였지만, 바이에른 출신의 국왕 오톤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독일 출신이니 당연히 그리스어도 하지 못했습니다. 열강의 지원으로 선임된 국왕이니, 여러 이권을 열강에 넘겨줘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리스는 이후 국왕의 폐위와 새 국왕의 선임, 이를 둘러싼 분열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뒤로 오스만 제국과도 한 번 더 전쟁을 치렀다가 패배했죠. 역시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발칸 반도 국가들과는 1,2차 발칸 전쟁을 치르기도 했죠.


그리스 왕국의 첫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헌법(신타그마) 광장


 1923년 아나톨리아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튀르키예 공화국이 세워집니다. 그리스와 신생 튀르키예 공화국은 모두 단일한 문화와 종교를 가진 국민국가를 꾸리고자 했죠. 양국은 국제연맹의 중재로 ‘인구 교환’이라는 초유의 협정을 체결합니다.


 인구 교환의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말 그대로 그리스 땅에 사는 튀르크계 인구는 모두 튀르키예로 보내고, 튀르키예 땅에 사는 그리스계 인구는 모두 그리스로 보낸다는 것이지요.


 말은 간단했지만, 현실은 그만큼 간단했을 리 없습니다. 두 민족은 여러 도시에서 수백 년을 넘게 섞여 살았습니다. 종교와 언어가 달랐지만, 그것만으로 튀르크계와 그리스계를 분명히 구분하기도 어려웠겠죠. 둘 사이 통혼도 그리 드물지 않게 이루어졌으니까요.


 몇 대에 걸쳐 살았던 고향을, 짧은 기간 안에 떠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자산을 처분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요. 상대 민족을 향한 혐오와 폭력도 이어졌습니다.


 인구 교환 협정에 따라 150만명의 그리스계가 튀르키예에서 그리스로 이주했습니다. 그리스에 살던 튀르크계 50만 명도 튀르키예로 이주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혼란은 피할 수 없었겠죠.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그리스 현대사는 그 뒤에도 혼란과 전쟁의 연속었습니다. 인구교환 이후 국민투표에 따라 왕정은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분열은 이어졌고, 쿠데타 위협도 빈발했습니다.


 결국 10여년 만에 그리스는 왕정복고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1년 뒤 친위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그리스는 군사 독재를 경험하게 되죠.


 2차대전에서는 국토가 독일, 이탈리아, 불가리아에 의해 3분할되는 상황을 맞기도 합니다. 2차대전이 끝난 뒤에는 공산당과 왕당파 사이에서 내전이 벌어지기까지 합니다. 결국 미국의 지원으로 공산당을 물리친 왕당파가 다시 그리스 왕국을 재건하죠.


 그리스 왕국 아래에서도 좌파 세력이 성장하자, 1967년에는 우파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벌어집니다. 군부정권의 독재는 7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경제적 무능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마지막에는 키프로스에서 쿠데타를 사주하는 무리수까지 벌였죠.


그리스 의회


 결국 민주주의의 발상지였던 그리스에, 다시 민주정이 자리잡은 것은 1973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혼란과 독재 끝에 얻어낸 민주주의였습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와 우연히 멜리나 메르쿠리의 동상을 마주쳤습니다. 그리스 출신의 배우였던 그는 군부 독재를 규탄했다는 이유로 그리스에서 추방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그리스 민주화 세력에 대한 지지를 이어갔죠.


 민주화 이후 멜리나 메르쿠리는 그리스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문화부 장관이 되었죠. 그가 문화부 장관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추진한 사업 중 하나가 영국이 소유한 파르테논 유적의 반환이었습니다.


멜리나 메르쿠리 동상


 멜리나 메르쿠리의 동상 앞에서, 결국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파르테논과 아크로폴리스에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그리스에 주어진 운명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경제적 혼란도 여전했고, 정치적 상처도 남아 있었죠. 2008년에는 IMF 구제금융을 받기까지 했죠.


 그러니 이 역사의 도시는, 여전히 역사 위에 서 있는 셈입니다. 파르테논도 아크로폴리스도 함께, 역사의 선 위에 서 있다는 것이죠.


 이 선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미래일지, 아니면 다시 권위주의로의 회귀일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조차 우리의 책무입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에서 역사의 선은 또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우리가 그리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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