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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Jan 06. 2021

손맛은 사랑을 싣고

-음식에 담긴 의미를 알아가는 이야기-


깨를 볶는다. 서서히 열기가 가해지자 여기저기서 미세한 움직임이 일더니 토도독 토도독 소리를 내며 작은 깨 난쟁이들이 슬슬 트램펄린을 타기 시작한다. 콩콩거릴수록 더 높이 뛸수록 고소한 냄새는 더 진해진다. 한수저 가득 퍼 올리니 납작했던 모습이 통통하니 귀엽게 부풀었다. 알맞게 잘 볶아진 것이다.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시집가 처음 시댁에서 깨 볶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한 달쯤 됐을 때 일이다. 깨를 볶으려고 씻는데 생각보다 구정물이 많이 나왔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열심히 물에 헹구고 있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시할머님이 마루에서 보고 계시다가 손을 휘휘 저으시며 다급한 목소리로


"아가, 깨는 그렇게 씻는 것이 아니여. 고양이 세수하듯 씻어야 한다. 허어, 오늘 깨는 애저녁에 글러버렸네."

시할머니 말씀에 화들짝 놀라 깨를 체에 걸렀을 때는 이미 잔뜩 물먹은 깨들이 말간 얼굴을 한 채 축 처져 있었다. 깨를 씻을 때는 깨가 수분을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재빨리 씻어 볶아야 고소하고 맛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누구누구 레시피가 검색 창에 주르륵 뜨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였다.


하지만 할머니 어머니가 전해 주는 구전 레시피가 있었고, 서점에 가면 요리서적들이 있어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얼마든지 기본적인 양념을 만드는 법이나 간단한 요리 정도는 배울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요리에 흥미가 없었고 아차 하면 사 먹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마음속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일이 바빠서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좋은 핑곗거리 또한 요리를 못하는 나에게는 좋은 방패막이되었던 셈이다.


수많은 일들 중에는 일이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종종 있다. 깨도 못 볶는 엉터리 며느리로 들통난 그 날 이후 어머니의 주파수는 온통 내게 맞춰졌다. 그 시선은 걱정의 시선이었고 관심의 시선이었지만 내 가슴은 주파수 안 맞는 라디오처럼 지이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사건 이후 어머니는 가끔 오셔서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다가 어느 날부터는 반찬을 만들어와 조용히 냉장고에 넣어만 두고 가셨다. 아마도 휴일 이외는 시간이 거의 없고 아무리 가르쳐도 늘지 않는 꽝손인 며느리를 보고 그냥 포기하신 듯했다. 


그러나 가끔 지나가는 말처럼 시간이 가면 나아지겠지 하실 때면 가슴에 커다란 눈덩이를 안은 듯 시리고 무거웠다. 희한한 것은 그렇게 부담을 가지면서도 우리는 어머니가 해놓고 가신 반찬을 싹싹 비웠다는 점이다. 하루 이틀 그리고 일 년, 나에게도 아이가 생기고 음식 솜씨도 제법 늘었지만 어머니는 그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아니 멈추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는 듯 보였다.

나의 한가닥 희망은 동서가 생겨 시선이 분산되길 바랐다.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날, 동서가 생겨도 이루지 못했던 그 희망은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신 것이다. 병원에 누워 계시면서도 늘 우리들 반찬 걱정하시던 어머니는 그렇게 쓰러진 후 2년 만에 우리들 곁을 떠나 영영 못 오실 긴 여행을 떠났다.


맛의 세계에서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역이 존재하는데, 바로 어머니 손맛이다. 최고의 명성을 얻은 셰프나 손님들로 줄이 늘어선 맛집도 어머니만의 고유의 손맛은 쉽게 흉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리워하는 고향의 맛 그리고 허기를 달래주는 어머니의 손맛은 미각을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서 마음을 채워 주는 그 무언가가 있다.


남편과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손맛을 그리워했고, 이제는 누구도 대신할 수없다는 사실에 방황을 했다. 가슴 한복판에 커다란 동굴이 생겼다. 그 동굴 속은 수시로 웅웅거렸고 바람소리인지 울음소린지 가늠하기 힘든 소리는 매일 밤 동굴을 훑고 지나갔다.


반찬으로 냉장고를 가득 채웠던 그 그득함은 나를 옥조인 다고 생각했던 그 부담감은, 아이들이 내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맛나게 모습을 보며 가슴에 꽉 차오르는 기쁨을 느끼고서야 깨달았다. 어머니도 그 마음이었다는 것을, 어머니는 자신이 해준 음식을 자식이 맛있게 먹어줄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자식들을 위해 힘든 것도 마다하지 않고 어머니가 걸으셨던 긴 터널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 어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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