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 큰 남자아이가 여탕에...?"

성숙해진 아이들, 규정은 그대로

by 위키트리 WIKITREE
img_20170515141134_c0432e15.jpg Flickr




◈ "엄마 저 누나 XX..."


부천시 오정동에 사는 직장인 여성 이모(25)씨는 이달 초 목욕탕에서 민망한 일을 겪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탕을 이용하는 이 씨는 이 날도 평소처럼 돈을 내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다섯 살은 돼 보이는 형제가 탈의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이 씨는 순간 멈칫했지만 종종 여탕에 남자아이를 데려오는 어머니를 봐 왔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목욕을 마친 한 여성이 벗은 몸으로 체중계에 올랐다. 이 씨는 그 순간 형제가 엄마에게 하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 저 누나 찌찌"


이 씨는 "불쾌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한테 하는 말은 아니라도 남자아이 두 명이 그런 소리를 하는데 너무 싫었다"며 "옷을 벗고 목욕탕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순간 망설여지더라"라고 덧붙였다.


이 씨는 "당연히 아이들이 무슨 이상한 생각을 갖고 그랬겠느냐"며 "그치만 여탕에서 남자아이들이 그런 이야기 하는 걸 들으니 민망하더라"라고 말했다.


여성만 이런 일을 겪는 건 아니다. 아버지를 도와 서울 대방동에서 목욕탕을 운영하는 최모(29)씨는 남탕에 여자아이를 데려오는 아버지나 할아버지도 종종 있다고 했다.


최 씨는 손님들 민원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한 손님은 최 씨에게 "남탕에 다 큰 여자아이가 있길래 쳐다 봤다가 괜한 오해를 샀다. 내가 무슨 치한이냐"고 말했다. 또 다른 손님은 "남탕, 여탕이 따로 있는데 왜 성별이 다른 아이들을 데려오는지 모르겠다. 남자도 수치심 느낀다. 여자아이는 남탕에 못 들어오게 하면 안 되느냐"고 했다.



◈ "연령 낮춰달라" 민원은 많지만


현행 공중위생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목욕실 및 탈의실에는 '만 5세' 이상 남녀가 함께 입장하지 못한다. '만 5세'가 보통 7세인 점을 감안하면 다른 성별의 목욕탕 출입이 가능한 나이는 6세까지다. 2003년 '만 7세'였던 기준이 지금의 '만 5세'로 낮춰졌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현재 '만 5세'라는 기준도 시대에 맞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아이들 발육은 빨라졌는데 규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지에 소개된 '한국 소아청소년의 성장발육 변천'에 따르면 1965년 이후 지난 40년간 대한민국 아이들(2세~16세) 신장과 체중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한국목욕업중앙회는 아동 발육 속도가 빨라진 점을 감안해 연령 기준을 기존 '만 5세'에서 '5세'로 낮춰달라고 지난 2014년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2017년 현재 보건복지부는 연령 기준 하향은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 아이를 딱히 목욕탕에 데려갈 사람이 없는 한부모 가정이 꽤 있다는 게 큰 이유다.


아빠나 엄마가 없는 한부모 가정일 경우 반대 성의 자녀를 목욕탕에 데려갈 보호자가 없다. 조부모가 육아를 맡은 경우도 그렇다. 손자의 육아를 맡은 할머니는 남자아이를 여탕에 데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6살 아들을 양육 중인 직장인 노모(여·34)씨는 "혼자서 남자아이를 키우다 보니 목욕탕에 데려갈 아버지가 없다"며 "가끔 할아버지에게 맡기기도 하는데 씻기는 게 힘들어서 제가 데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연령을 낮춰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 반면 낮추지 말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며 "양쪽 민원이 다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연령을 낮추는 부분은 검토 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연령 문제 관련 민원이 더 발생하면 그때 다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



◈ "딱 보고 아이가 크면 못 들어가게 하죠"


img_20170515141240_768bd8c4.jpg 연합뉴스




목욕탕 업주가 연령 관련 준수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행정처분을 받는다. 1차 위반시 경고, 2차 위반시 영업정지 5일, 3차 위반시 영업정지 10일, 4차 위반시 영업정지 폐쇄명령이 내려진다. 폐쇄명령이란 목욕탕 문을 닫는 걸 말한다. 영업 재개도 불가능하다.


목욕탕 업주 대부분은 아이들 연령을 눈대중으로 본다. 따로 검사는 하지 않는다. 아이가 커 보이는 경우 "몇 살이냐"고 묻는 게 대부분이다. 구두로만 나이 검사를 하지, 관계 증명서 같은 서류 증빙은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아들과 함께 목욕탕을 운영 중인 업주 최 씨는 "'만 5세'가 되지 않은 아이일지라도 못 들어가게 막은 경우도 있다. 아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씨에 따르면, 너무 큰 남자아이가 여탕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했을 때 손님들 민원이 쏟아진다고 했다. 다 큰 여자아이가 남탕에 들어가는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최 씨는 "규정에 따른 나이는 솔직히 무용지물이고, 아이 덩치가 큰지 작은지로 판별한다"며 "아이가 '만 5세'가 안 넘더라도 발육이 너무 좋으면 손님들이 불편해 한다"고 말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통령하면 무슨 단어 떠올라?" 섬마을 아이들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