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클라우드 도시작가 리뷰
“나 오늘 흑석동 가.”
“흑석동엔 뭣 하러?”
“책방이 있대, 거기에.”
“흑석동에 무슨 책방이 있어?”
필자가 흑석동에 있는 책방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흑석동 토박이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그렇다. 흑석동에 책방이라곤 중앙대 교내에나 있는 학생 서점이 다였다. 서점만이 그럴까. 흔히 대학가라면 젊고 발랄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상상하지만 뭐랄까, 흑석동은 왠지 조금 심심하다. 혹자는 흑석동을 ‘불모지’라 부르기까지 했다. 오죽하면 타 지역에 살고 있던 나도 이 동네가 너무너무 심심하고 지루하게 느껴져 학교 과제로 흑석동 문화 기획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더랬지. ㅡ 이름하여 흑설탕 흑석동이라는 과제였는데 꽤 귀엽지 않은가! 각설하고, 이제 흑석동에는 어엿한 책방이 있다. 올봄, 봄바람을 타고 새로이 자리 잡은 <청맥살롱>이.
1) 청맥살롱, 청맥서점의 길을 잇다.
기존 청맥살롱이 있던 곳에는 본래 청맥서점이라는 이름의 책방이 있었다. 꽤 최근까지도 운영됐던 청맥서점은 특히 1980년대 대학생들이 금서를 주고받던 보고 같은 공간이었다. 신원이 보장된 이들에게만 비밀이에 책을 팔았을 정도로, 은밀하고 비장한 걸음들이 고스란히 담겼던 곳. 하지만 청맥서점 역시 소규모 서점의 경영난과 함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청맥서점의 정신과 역사가,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청맥서점의 자리에 새롭게 보금자리를 꾸민 것이 청맥살롱이었다. 단순히 터만 이어받은 것이 아니었다. 청맥살롱은 예전 책방의 모습처럼, 문화와 사회의 흐름이 뜨겁게 통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단순히 북카페, 서점만이 아닌 공간 대관, 문화 행사, 코워킹 스페이스, 전시 등에도 적극적인 이유다. 금서의 보고였던 청맥서점의 정신을 이어 받는다는 의미에서 4월 19일에 정식 오픈을 하기도 했다. 책방 곳곳에 체 게바라, 마오쩌둥, 레온 트로츠키, 호찌민 등의 혁명가들의 얼굴이 가득 자리를 잡고 있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모티브에서 비롯됐다. 청맥서점의 맥을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청맥’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얘기하고, 떠들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살롱’을 붙였다. ‘청맥살롱’은 그렇게 시작했다.
2) 청맥살롱, 이곳만의 특별함
날이 갈수록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편리함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골목골목의 작은 책방들은 꿋꿋이 그리고 보란듯이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동네 책방의 가치는 각각의 개성이 있는 공간에서 온다. 기존 대형서점에서는 느끼지 못할 특별한 경험들이 자꾸만 고개를 기웃거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맥살롱의 유니크함은 어디서 올까?
청맥살롱의 가장 큰 특별함은 저자의 친필이 담긴 책을 판매한다는 점이다. 어쩐지, 책 주제에 왠지 더 당당하고 위엄 있게 보이더라니. 매대에 쌓인 책들은 모두 저자의 친필 사인을 머금고 있었다. 도서 행사나 저자 강연 때마다 친필 사인을 직접 받아온 소중한 책들이라고. 가끔 인쇄한 건 아니냐, 먹지를 깔아놓고 베낀 건 아니냐 하는 웃지 못할 문의를 받기도 한단다. 똑같은 책이래도 친필이 담긴 책은 괜히 더 소중하고 특별한 기분이 드는 법. (덕분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두 권이나 구매하고 종일을 흡족스러워했다. 흐흐흐)
담당자에게 청맥살롱만의 특별한 점을 물었더니 ‘커피가 맛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암암, 중요하고 말고! 절로 공감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답변이었다. 향긋한 커피 향에 취해 한참 책을 읽고, 널찍한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함께 동행한 친구와 수다를 빙자한 회의도 소곤소곤 나눴다. 청맥살롱에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 특별한 기운은 자연스럽게 밀려왔다. 여유와 설렘이 가득한 북카페, 마음이 절로 넉넉해지는 책방, 동네 사람들과 학생들이 오순도순 모이는 살롱, 그리고 커피와 맥주와 책이 어우러지는 특별하고 소담스러운 이 공간, <청맥살롱>.
청맥살롱은 살랑이는 봄과 무더운 여름을 지나 이제 막 가을을 맞았다. 따스한 빛 가득한 테라스에서 흑석동의 가을 내음을 맡았다. 청맥살롱의 가을엔 또 어떤 이야기가 담길까, 여기 이곳에서는 또 어떤 물결이 흐를까. 어제와 오늘을 만났기에 내일이 더 기대되는 공간, 청맥살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