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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녀석 성휘 Mar 15. 2021

#28. 이제야 아쉬워지기 시작한다.

스물일곱 번째날 : 멜리데(Melide)까지 32Km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곤사르(Gonzar)에서 멜리데(Melide)까지 32Km



 뭔 사람들이 이리 부지런한지 모르겠다. 새벽 6시부터 다들 출동준비를 하느라 샤브작 샤브작거린다.
이리저리 뒤척이고 뒤척이다 등 떠밀듯이 나도 출동을 했다. 알베르게 앞 식당이 7시에 문을 연다고 하니 기다릴까 하다가 차라리 다음 마을에서 요기를 하기로 해서 7시 10분 전에 길을 나셨다.

  출발점인 곤사르에서  3~4km 떨어져 있는 마을을 지나는 데 산드라여수가 보인다. 그래서 한참을 그들과 같이 이야기하며 걸었다.

"너희 오늘 어디까지가?"
"우리 멜리데, 너는?"
"난 몰라. 멜리데보다 더 멀리 갈까 생각 중인데... 멜리데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오늘 쫌 멀리 걸어보고 싶어서 멜리데의 다음 마을인 보엔테Boente까지 걸어 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산드라여수 때문에 마음이 바뀌었다.
"아니다, 나도 오늘 멜리데까지 갈게. 공립 알베르게에서 지낼 거지? 거기서 보자. 같이 저녁도 먹고"

처음이었다.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저녁을 같이 먹기로 계획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혼자 저녁을 먹은 적은 없었지만, 그건 전부 누군가에 의해서 초대받거나 혹은 자연스레  그룹이 만들어져 먹었었지 내가 주체적으로  누군가와 식사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었다. 여직까지 능동적으로 움직인 적은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써 주도적인 만남을 계획한 것이다.
앞으로 2~3일이면 이 순례길이 끝나가니 이제 곧 순례자들과 헤어져야 하는데 불현듯 그 이별이 아쉬워지기  시작한 것이 그 이유였다.


유치하다.
유치했다.

순례길에서는 생각에 집중할 뿐 사람들한테 정을 주고 다니지 말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그  생각 자체가 유치한 발상이었다. 사람 좋아하고 잘 어울리는 본성이 있는데, 그것을 의도적으로 감춘다고 될 일이 아닌데 말이다.

순례길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에서야 왜 더 많은 사람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먼저 제의했다. 산드라 여수와도 지금까지 그리 길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움 마음에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한 것이다. 
그렇게 저녁을 같이 나누기로 하고는 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그들과 헤어졌다.






한 카페에 들어가 아침으로는 우유가 담뿍 들어간 까페라떼(스페인어로는 '카페 꼰 레체'라고 한다)와 크로와상, 그리고 블랙커피(난 술배, 커피배를 따로 가졌다)를 시켰다.  전형적인 스페인식 아침이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하비에르 부자가 들어왔다. 아버지의 이름도 하비에르, 아들의 이름도 하비에르. 마드리드에서 온 부자인데 일주일 예정으로 순례길을 올랐다고 했고, 그들과는 지난밤 곤사르에서 안면을 튼 사이이다.
아들 하비에르가(이하 하비)는 무슨 아이돌처럼 체형도 이쁘고 잘생겼는데 장성한 아들과 함께 하는 아버지도 엄청 어려 보여 처음엔 친구 관계인 줄 알았다.
담배를 피기 위해 아들 하비가 라이터를 찾기에 내가 가진 라이터를 줬다. 물집 터트릴 때마다 바늘을 소독하기 위해 가지고 다닌 라이터인데(스페인의 한 클럽에서 받은 거다. 거기도 홍보용 라이터를 주더이다) 이젠 더 이상 쓸 일이 없어 그냥 가지라고 했더니, 그게 고마웠던지 아빠 하비가 내 음식까지 계산하려고 하신다. 공짜로 받은 라이터의 답례로는 너무 비싼 가격이라 극구 사양했지만 그 마음이 참 고맙다. 그리고 자신들의 땅에서 씩씩하게 걷고 있는 동양 여인네에게 뭔가 도움이 되려고 하는 그 마음이 너무 고귀하고 아름답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스페인 땅을 두발로 걷고 다니는 동안, 스페인의 매력에 푹 빠졌고 그 매력의 중심에는 늘 스페인 사람이 있었다.
순례자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와 도움. 
나의 까미노를 찬란하게 아름답게 만들어 준 스페인 사람들에게 한없이 감사를 느낀다.

그러면서 드는 한 가지 후회..
'스페인어를 더  많이 공부해 올걸'이라는 후회가 엄청나게 들었다. 스페인어를 더 잘했다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마음을 나누었을 텐데...
너무나 아쉬운 대목이다.
뭐 후회해봤자 집에 돌아가면 공부하지 않을 나 자신을 알고 있지만..... 






산드라여수, 하비 부자와의 대화를 빼고는 온전히 혼자였다.
멜리데에 들어서서야 아는 얼굴인 브라질 따봉 할배 4인방을 만나긴 했지만, 그 외에는 온전히 길에만 집중하며 혼자 그 길고 긴 걸음을 했다.
이 걸음도 이제 이틀만 하면 끝이 나는 일정이지만, 뭔가 아쉽게 느껴진다.
이 지긋지긋한 걸음을 빨리 끝내고 싶기도 했지만 동시에 뭔가 끝내기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갈리시아 지방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문어숙회를 또 먹는다. 또 먹는다는 것은 예전에도 계속 먹어왔기 때문이다.




  아직 체력이 남아돌아 더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산드라여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멜리데 Melide에 머무르기로 했다.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고 보니 우연히도 먼저 도착한 산드라여수와 함께 나란히 눕게 되었다.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나서는 지루한 감이 있어 그들과 함께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하고 근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는데, 외국인인 산드라와 나에게는 스페인어로 주문을 받고 스페인 사람인 여수에게는 영어로 주문을 받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 스페인 사람이라고, 스페인어 할 수 있는데 왜 나에게만 영어를 쓰지?"
라는 그의 불평에 우리는 웃음이 빵 터졌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에서 온 여수는 내가 한두 마디 할 줄 아는 바스크 언어에 물개 박수를 치고 좋아했었다. 평소에도 바스크 지방에 관심이 있어서 한두 마디 공부해 둔것데 이리 사람을 기쁘게 하니 나도 나 자신이 뭔가 뿌듯해졌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충격으로 계획도 없던 까미노를 걷고 있는 여수를 난 며칠 전 오세브리오를 향해 등반할 때 알게 되었다. 바스크 사람이라는 말에 내가 "그럼 여수추 (바스크에서는 사내아이 이름 뒤에 를 붙어 귀엽게 부른다. 일본어로 ~짱 이라는 느낌)라고 불러두되?"라는 말에 "내 전 여자 친구도 나를 여수추라 불렀는데..." 하며 슬픈 눈을 했다. 

이번이 두 번째 까미노라는 산드라는 이번엔 아스트로가에서부터 시작했고, 그녀가 도착한 첫날부터 우린 친구가 되었다. 그리 길게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우린 자주 만났고 자주 이야기했는데 그녀는 내가 어디에 있던지 나를 잘도 찾아내는 재주를 지녔다.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 온 그녀는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나섰는데 그 시작으로 두 번째 까미노를 걷는 것이라 했다.
지난번 그녀의 첫 까미노에서 그녀는 삶이 변화했다고 했다면서 이번에도 또 다른 변화를 위해 이 길을 걷는다고 했다.

이날 저녁을 먹으면서 그녀는 스페인의 한 의류회사가 그녀의 작업에 관심을 보이는 이메일을 받았다고 기뻐했었는데, 그 후 몇 주가 되지 않아 그녀는 그곳에 취직을 했고 지금은 스페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나에게 그냥 아는 순례자였지만, 이날을 계기로, 또한 순례길이 끝나고 나서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고, 까미노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그리고 이 까미노가 끝난 몇 개월 후 스페인에  다시 방문한 나를 위해서 동쪽 끝에서 사는 여수와 서쪽 사는 산드라 중간지점인 오비에도에서 만나 일주일간 여행을 다녔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산드라가 말하길
"내가 까미노를 처음 걸었을 때는 여기 멜리데에서 산티아고까지 하루에 걸어갔어"
"54km를? 하루 만에?"
왠지 구미가 당긴다. 여태껏 40km 이상 걸은 날은 딱 이틀밖에 없었는데 왠지 50km 이상을 한번 걸어 그 기록을 깨보고 싶었다."
어쩌지?
내일 몸 상태를 보고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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