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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Mar 26. 2024

감히 직장도 없이 전셋집 구하기 2탄 : 대출과의 싸움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도 해주지 않는 무직자 전세대출

6년 전 지금 전셋집에 들어올 때는 대출이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인생 첫 대출이어서 불안하고 떨렸지만 내가 모든 조건에 이미 충족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은행에 미리 집을 문의하기도 했고. 조그마한 연봉이었지만 재직한 지 3개월이 넘어서 직장인으로서의 소득도 착실히 증명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대출 난이도가 인생 최대의 난이도였고, 지금 이사 준비를 하면서 잠을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인터넷에도 카페와 지식인 등에 사람들이 올린 질문이 많았는데 답변도 상황도 다 다르더라. 정보의 사막과 홍수를 오가며 1월 집 계약부터 지금까지 고생고생하며 모았던 정보와 내 상황을 공유해보려 한다. 생각나는 정보를 다 적어두었으니 긴 글주의!


내가 고려한 전세 대출 2가지

버팀목 대출 : 금리 2~3%대&수도권 한도 1.2억. 국가에서 가장 저렴한 금리로 제공하는 기금 대출. 연봉 5천 이하, 자산 3.4억 이하만 받을 수 있다. 만 34세 이하 청년이라면 금리가 최소 1%대에 한도도 더 높다. 난 만 35세로 일반 버팀목 기준.

일반 은행 전세 대출 : 금리 4~5%대&한도 5억. 금리도 한도도 버팀목의 곱절. 대신 연봉이나 자산 상한선은 없다. 버팀목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면 최후의 방법으로 제대로 입사한 뒤에 일반 은행 대출 HUG 보증으로 받을 생각이었다.


대출의 보증 방식

HUG : 목적물을 담보로 받는 보증. 원칙상으로는 임차인이 무직자여도 신용도가 높다면, 임대인과 집에 문제가 없다면 받을 수 있다.

But 이후 집을 이사해야 하거나 보증금이 증액될 때 제한이 많다. 사실상 이사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HF : 임차인의 소득을 담보로 받는 보증. 즉 대출을 받는 본인 연봉이 기준이다. 무직자는 당연히 불가, 연봉이 적다면 한도도 줄어든다. 보편적으로 연봉의 3~4배가 한도이고 버팀목 한도 내에서 결정된다. 재직 기간도 중요하다.

But 집의 이사, 추가 대출이 HUG보다 자유롭다. 가능하면 HUG 보증이 가능한 안전 매물을 찾아서 실제 대출은 HF로 받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은 무직자라 HF는 일찍이 포기했지만.


어떻게든 2%대의 대출 금리를 유지하고 싶어서 버팀목 전세대출을 받아야겠다 결심했고 그중에서도 재직 상태나 근속년수, 연봉의 중요성이 비교적 낮은 HUG 보증 상품으로 진행할 생각이었다. 금리 2~3%인 버팀목을 받는다 해도 이미 전세금을 올려서 집을 계약했기 때문에 나가는 금리가 두 배가 된 상태다. 만약 버팀목을 못 받고 은행대출을 받게 되면 지금 들어가는 주거비보다 4배 이상의 금리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 부담이 너무 커진다. 이번에 버팀목을 새롭게 받으면 집 계약을 연장하는 한 10년은 소득과 상관없이 대출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


일단 퇴사하면 그전에 받았던 연봉은 모두 리셋되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마침 전 직장을 퇴사한 지금이 어쩌면 버팀목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 버팀목 기금 대출을 진행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문의한 결과 HUG 보증방식의 버팀목 대출은 무직자도 가능하다. 다만 이건 원칙이고, 은행에서는 지점마다 행원마다 원칙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나는 결과적으로는 무직자 대출은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포기했는데 인터넷에는 받은 사람들의 힘겨운 후기가 꽤 많다. 즉 불가하지는 않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동반될 뿐.


은행에서 안내한 버팀목 HUG 대출의 필요조건

기본적인 5천 이하 연봉, 3.4억 이하 자산 기준은 당연히 충족해야 함.

계약할 집의 전세금이 공시지가*126% 이내여야 함. 대부분 부동산에서 가능여부를 알려주고 매물 정보에도 기재되어 있으며 직접 계산도 가능. 가계약까지 생각한 매물이 있으면 은행에 주소 들고 가서 가능한지 체크해 볼 수 있다. 다만 그때도 어차피 공시지가로 계산하는 건 똑같다. 근데 공시지가 126%에 또 너무 정확히 맞다고 안 되겠다 한 지점도 있었다. 아주 가지가지..

나는 그냥 깨끗하게 근저당, 융자 등은 하나도 없는 집을 찾아갔다. 등기의 '을구'가 복잡하면 안 그래도 은행이 받기 싫어하는 HUG 대출 진행의 난이도가 더 올라간다.

재직자라면 1개월 만근 월급이 최소한으로 필요함. 중도 입사해서 대출 심사 당시에 1개월 만근이 아닐 경우는 진행이 어렵다. 1일~말일 근무하고 받은 FULL 월급이 필여한 것. 이게 그냥 1월 15일 입사했으면 2월 15일에 가도 되는 게 아니라, 월의 1일부터 말일까지 근무를 해야 한다. 1월 15일 입사했으면 1월은 인정이 안되고, 2월 말일까지 쭉 근무 후 2월 월급을 온전하게 받은 뒤에 가야 하는 것.

무직자라도 최소한 입사 예정이라는 확정 메일이라도 있으면 심사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아쉬워한 행원도 있었다.

현재 버팀목 대출을 받지 않은 상태여야 심사 가능. 받았다면 상환해야 신규 심사가 가능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버팀목이 이미 대출로 들어가 있다? 그걸 이사 한 달 전에 상환해야 30일의 여유를 두고 새 집의 신규 대출 신청이 가능하다. 만약 이게 불가하면 아예 그냥 목적물변경이나 증액을 알아보자.


인터넷에 잘 안 나오는 정보들

버팀목 전세 대출과 같은 기금 대출은 인생에 1회만 받을 수 있나? NO. 기금 대출을 상환하면 재신청이 가능하다. 나는 버팀목으로 이미 대출을 받은 상태였는데 이미 기간을 절반 넘게 써서 증액이 아닌 신규신청을 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기대출 금액을 전액 상환한 뒤 1주일 뒤에 재신청을 넣었다. 인생에서 1회만 가능하다는 행원도 있었는데 그 행원이 틀렸다.

주거래 은행에서만 가능한가? NO. 기금대출은 주거래 은행과 크게 상관없다고 한다.  사례도 있다. 더 어렵고 불리할 수도 있을 뿐이다. 다만 가뜩이나 불청객인 우리를 주거래가 아니라면 더더욱 받아주지 않는다. 왜 주거래가 아닌 이 은행에 왔는지부터 물어보는데 대답을 생각하고 가는 게 좋을 듯. '다른 곳이 다 거절해서요'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주거래가 아니라면 신용점수가 낮게 평가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사실여부를 모르겠다.

매물 근처 은행으로 가야 하나? NO. 나는 아예 구가 다른 곳에서 진행했다. 다만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안 된다고 하는데 같은 서울시면 괜찮다는 얘기도 있음. 집 근처가 아니라고 안 받아주진 않더라. 왜 여기에 왔냐고 물어보긴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넉넉히 1개월인데 나는 40일 전에 신청을 넣었다. 지금 무슨 신생아 특례? 대출이 새로 생겼는지 심사가 오래 걸린다는 안내가 많아서 걱정됐는데 진행은 여유롭게 처리되고 있다. 30~40일 전에는 어플로 신청하는 자산심사부터 진행하는 걸 추천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저 은행원의 마음에 따라 대문자 YES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기.



제일 큰 문제,
무직자도 버팀목 HUG를 받을 수 있나?
아마도. 하지만 나는 포기.


무직자가 버팀목 HUG를 받기 어려운 이유는, 은행을 무한대로 발품 팔 수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왜냐면 버팀목은 전세대출 신청 전에 '기금e든든'이라는 어플로 자산심사를 미리 신청해야 하기 때문. 사전 신청 없이 그냥 바로 은행에서 처리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 문제는 무직자, 버팀목, HUG 모두 은행원이 싫어하는 3가지 쓰리콤보인데 행원이 자처해서 업무를 처리해주지 않는다. 정말 협조적이었던 행원도 '원칙상은 되지만.. 일단 기금e든든으로 신청하고 오세요'라고 말하더라.


즉 무직자의 타임라인을 정리하자면,


1. 계약 전 대출이 가능한지 상담을 위해 은행 방문

2. 10개 지점 가까이 돌아다니며 '무직자 HUG 가능하다'는 은행을 찾았다! 다만 아직 매물도, 계약서도 없기 때문에 좀 두리뭉실한 답변만 받음 (무직자도 원칙상 가능은 하죠~ 정도)

3. 계약까지 생각한 매물을 가지고 다시 은행에 방문. 해당 매물이 HUG 보증 가능할지 체크 (가심사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더블체크 정도의 개념)

-> 이때 2번의 행원이 아닌 다른 행원이 걸려서 갑자기 무직자는 대출이 안된다고 한다? 1번부터 재시작.

4. 집을 계약하고 나서 '기금e든든' 어플로 자산심사 신청 (1~10일 소요) : 이때 3번의 은행 지점을 신청서에 기재

5. 이제 은행에 방문해서 3번과 똑같은 행원이 걸린다면 행운! 대출 신청서 작성하기.

-> 근데 다른 행원이 걸려서 나를 반려시킨다? 그럼 다시 2번으로 복귀해서 계약서 들고 나를 받아줄 은행을 찾아다니기. 찾으면 다시 '기금e든든'도 새로 신청해야 함. 은행에서 알아서 기금e든든에 기재한 은행을 바꿔주는 것도 가능하다. 해주지 않을 뿐이다.


내 주거래 은행인 국민은행이 특히 무직자 대출을 잘 내주지 않는 듯했다. 문제는 주거래가 아닌 은행에 가면 내 신용도 평가가 비교적 낮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이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타 은행은 이 핑계를 대고 나를 거절했다. 즉 주거래 은행 중 무직자인 나에게 대출을 해줄 은행을 찾아다녀야 했다.


2번 과정에서 무직자도 대출 심사가 가능하다고 한 건 단 2곳이었다. 원칙상 가능하다고는 했지만 그들도 탐탁지 않아 했다. 문제는 매물을 정하고 그 은행에 다시 문의하러 가니 다른 행원이 배정되었고, 새로운 행원은 또 갑자기 무직자는 안된단다. 같은 지점 내에서도 행원마다 말이 다른 것이다. 그럼 '나는 저 옆에 행원한테 갈래요!' 할 수도 없고 그냥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 다시 처음부터 재시작이다.


인터넷에 찾아본 결과 일단 심사가 들어간 뒤에는 무직자여도 대출은 나올 확률이 높다고 한다. 심사를 진행하는 기금의 원칙은 무직자여도 괜찮으니까. 다만 그 심사를 넣어줄 은행이 무직자를 싫어한다. 기금 심사까지 가지도 못하고 은행 지점 내에서의 결재가 안 떨어지기도 한다더라.


기금e든든의 자산심사는 생각보다 빠르게 처리되기도 한다. 나는 1~2일 만에 바로 적격이 떴다. 끈기를 가지고 아주 빠르게 움직이면, 그리고 계약서까지 들고 가서 은행에 열심히 어필하면 무직자 HUG 대출이 가능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성격상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서 2억 전세 계약서를 쓰고, 2천만 원 계약금을 낸 뒤에 불안에 떨며 석 달을 대출에 소요할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시간이 좀 넉넉했기에 재빠르게 은행 대출용 입사를 해버렸다. 즉 무직자 HUG 대출은 포기하고, 1개월 재직자 HUG 대출로 태세를 전환한 것.


무직자 대출이 되는지 열심히 알아보고 있을 분들에게 실패 사례를 안겨드려 죄송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라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다. 어떤 부동산은 나에게 '일단 계약을 하고, 계약서랑 모든 서류를 들고 신청을 받아줄 은행을 찾아다녀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내 생각에도 그게 더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위험도도 높다. 무직자가 HUG 대출받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임을 꼭 알고 그 전투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가장 속상했던 것은


현재의 무직 상태가 은행 창구에서는 금융 상환 무능력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었다. 은행에서는 무직이 상황이 아니라 능력이었다. 내가 10년 넘는 경력이 있고 불과 몇 달 전까지 은행으로 들어간 급여가 있다는 건 전혀 상관이 없었다. 10년 내내 나의 급여를 받던 은행이 당장 재직 증명서를 낼 수 없다는 것만으로 상환 능력이 없다 판단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차라리 신용 점수를 더 체계화해서 오랜 기간 동안의 금융 기록을 바탕으로 결정한다면 납득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신용 점수도 모두 만점이고 연체 기록도 전혀 없었지만 은행의 창구에서는 그게 하등 쓸모가 없더라.


무조건 4대보험 되는 직장에서 몇 년 이상의 안정적인 재직만을 요구한다는 건 평생직장 개념이 있던 구시대의 기준 아닐까? 다른 것도 아니고 이사는 미리 계획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텐데. 게다가 전세 대출은 대출금 상환을 내가 아닌 집주인에게 받는 시스템인데, 무직자가 고작 몇십만원의 금리를 못갚을까봐 이렇게 문전박대를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재직 중이라는 상태값이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필요할 수 있다는 것. 퇴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회에서 큰 의미라는 걸 경력 12년 차에 이번을 계기로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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