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가운데 '나'
세월 속에 비친 나를 보다
"우준이는 학교 갔나?"
"아버지, 오늘 토요일이에요. 학교 안 가는 날이요."
아들인 나를 보자마자 손자가 궁금하신 게다. 올해 팔순인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은 극진하다. 심지어 아들인 나도 질투 날 때가 있다.
"아버지, 제가 아들이걸랑요!! 저한테도 신경 좀 써주세요"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투정도 해본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씁쓸하게 웃으시면서 말을 돌리신다.
그러다 한 5분쯤 지난 뒤에 또 묻는다.
"우준이 학교 갔나?"
".............."
처음 이 상황을 접했을 때는 당황했었다. 우선 어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어머니는 익숙한 듯 아버지께 호통을 치신다.
"으~그, 토요일, 토요일이라니까... 느그 아빠 또 저런다."
치매가 시작되신 게다.
2년 전 뇌경색이 오셨고, 빨리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경동맥 스탠트 삽입 시술로 최악의 상황은 막았지만 한쪽 팔이 부자연스럽고, 거동도 불편해지셨다.
그 뒤로 치매증세가 급격하게 진행되어서 지금의 상태가 되신 게다.
본가에 머무는 2~3시간 동안 똑같은 질문을 대여섯 번씩 하신다. 짜증도 내봤고 화도 내봤고, 울컥해서 울음도 참아봤다. 하지만 다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처음 듣는 질문처럼 꼬박꼬박 답을 해드린다.
아버지 본인도 몸이 불편하시고, 어머니도 예전부터 허리가 아프셔서 아버지 수발하시기 힘드시다. 날이 더워지고, 아버지께서 샤워도 자주 하셔야 돼서 나와 형이 번갈아가며 본가에 가서 씻겨드리고 있다.
아버지를 씻겨드리는 게 처음이라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어렸을 때 같이 목욕탕에서 나를 씻겨주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못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어렸을 때 일이고 성인이 된 지금은 다소 난감할 수도 있다.
씻기기 전부터 아버지는 어머니와 한판 하신다.
"왜 바쁜 아들들을 불러서 쓸데없는 짓을 하노!" 그러면 "내가 불렀나, 지들이 힘 빠진 아버지 씻긴다고 스스로 왔지! 와, 내한테 난리고, 씻겨주면 고맙다고 할 것이지, 염감탱이 노망 들었어."라고 어머니께 한소리 듣고 멋쩍은 표정으로 샤워실로 부축받아 들어가신다.
샤워기 물의 온도를 맞추고 아버지의 얼마 남지 않은 백발의 머리를 감기는데 갑자기 온갖 감정이 올라온다.
생각보다 백발인 머리카락이 너무 가늘고 힘이 없다. 머리카락도 얼마 없어서 감기기는 편하지만 세월 속에 다 시들은 나무처럼 앙상한 느낌이 애처롭기만 하다.
몸에 비누칠을 하며 아버지의 팔, 다리를 닦일 때 근육이 빠지고 가늘어지는 게 노인들의 현실이기는 하지만 젊었을 때 운동을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옛 모습이 스쳐 지나가며 세월이 야속할 뿐이다.
씻는 동안 시원하다고 말씀하시며 "아이고, 고맙다. 아들 덕분에 편하네"하시는데 괜히 화를 내기도 한다.
"아버지, 무슨 말씀하세요? 당연한 거지. 아버지 힘들 때 아들이 씻겨드리지 누가 씻겨드리겠노?"라며 멋쩍은 투정도 부려본다.
우리는 유아기에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는다. 자는 것, 먹는 것, 싸는 것, 씻는 것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할 수 없을 때 부모님은 나를 위해 본인의 시간과 노력과 온 힘을 다해 자식을 건사해 오셨다.
똑같은 질문을 열 번 넘게 해도 답해주고, 씻겨주는데 고맙단 인사가 없어도 서운해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이제 반대로 아버지께서 혼자 할 수 없을 때, 기억이 안 나서 서너 번 물어볼 때 짜증내기도 하고, 난감해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율배반은 부모와 자식 간에 제일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가 제일 간과하고 쉽게 핑계 대며 회피하는 게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태도인 것 같다.
아버지의 손자이자 나의 아들을 씻겼던 기억을 돌이켜본다. 지금은 중고등학생이 되어 샤워시켜 줄 일이 없는데, 얼마 전 팔이 골절된 중학생인 둘째 아들을 씻기며 새삼 예전 어린 아들 씻기던 기억과 지금의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의 감정이 몰아쳐서 마음 한켠이 아련하다. 이런 상황이 되어서, 또 이 나이 먹고서야 아련하다는 말의 느낌을 몸소 느낀다. 아무런 바램이 없이 나를 보는 아버지와 아무런 바램 없이 아들을 바라보는 나는 오늘도 마음 한켠이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