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30분, 대한민국에 비상계엄령이 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재는 예산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이는 자유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 획책에 준하는 명백한 반국가행위”라며 계엄 선포의 배경을 설명했다.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 의회는 본회의를 열어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발의했고 참석 190명 중 190명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2024년 같은 날 오전 4시 30분,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단 6시간 만의 일이었다. 시민들은 얼떨떨하다는 반응이다. 꿈같았다는 말도 들린다.
해프닝처럼 느껴지는 대목들이 여럿이다. 군경은 분주하기만 했지 일사불란하지 않았다. 여당대표와도 협의가 없었다. 야당 인사들은 가택연금되지 않았다. 공중파 방송국들과 주요 언론사들, 이동 통신사들은 사전에 장악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계엄을 선포하기엔 꽤 이른 시간이었다.
허술해 보이는 탓인지, 사안의 심각성조차 폄하되는 듯하다.
계엄군은 신속히 국회로 향했다. 헌법상 계엄령은 대통령의 선포로 시작되고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되어야 한다. 국회는 재적인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을 해제할 수 있다. 정황상 계엄군의 목표는 의회를 마비시켜 해제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장의 계엄군들은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부러 시간을 끌어 의회의 계엄령 해제를 가결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칭찬하는 모습들도 있다. 사령관이 시키니까 으름장을 놓되 그런 척 연기했을 뿐인 ‘WWE’라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 군대를 다녀온 2030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군인들의 치적을 높이 사는 경우를 목격할 수 있다.
감정이입이 성급해 보인다.
절대다수가 이번 비상계엄이 위헌이라고 판단한다. 국회의 동의 없이 선포되었고, 아직 입법부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계엄군이 출동했기 때문이다. 당시 계엄군은 친위 쿠데타, 반국가 무장집단으로 규정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계엄군이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에게 총신을 겨눴을 때 “민간인의 총기탈취는 원칙적으로 발포 가능하다”며 군인을 옹호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실탄이 배급되었고 저격수가 배치됐다는 사실관계에도 ‘작전을 수행하는 특임대면 당연한 절차’라는 말도 보인다. 정당성을 가진 무장 집단에게 적용해야 할 논리를 자칫 무고한 시민을 폭력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불법적 무장세력에게 적용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자신이 약 2년여간 몸담고 따랐던 집단의 질서를 부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무능한 지도자와 비열한 수뇌부의 잘못을 증오하는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개개인의 청년 군인들에게 연민이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마음씨는 선한 데서 작동한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러나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는 감정과 잘잘못을 가리는 이성은 분명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군은 폭력의 독점이다. 우리 사회는 시민들 간의 질서를 유지하고 외부세력으로부터 방어할 때 만을 한정해 폭력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계엄은 군이 행정과 사법질서를 통제하는 예외적 상황이다. 시민을 지키기 위해 조직된 무장집단이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금기의 해제다.
출동한 계엄군을 두고 “진작 국회를 점령하고 의원들을 체포할 수도 있었는데 봐준 거다. 다 쇼다.”라고 말하는 것은 결과론적인 얘기다.
WWE 같은 엔터테인먼트였든 UFC처럼 사력을 다했든 간에, 국회 위로 헬기가 뜨고 특수부대가 출동하는 광경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계엄군은 봐주지 않았다. 정립되지 않은 명령과 모호한 정보 때문에 적극적이지 못했을 뿐이다.
혼돈은 순간이라서, 폭력을 저지르는 그 찰나로부터 빠르게 번진다. 학살은 참혹한 결과를 눈앞에 들이밀면서 폭력의 정당성을 묻지 못하게 입을 막는다.
그래서 계엄군에게 “그저 명령을 수행하는 안타까운 피해자들”이라는 이유로 비난에서 면죄부를 주어야 하기 전에 ‘그 개개인들이 본인의 양심·가치관에 상관없이 시민들을 무력진압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경계해야만 한다. 시민들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불과 45년 전, 군홧발에 찢겨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있다. 상처를 부여안고 평생을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지 않은가.
의미심장한 사례가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의회의 출입을 막는 경찰들을 향해 항의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그는 “너네 표결 즉시 내란 죄야. 어떤 병신한테 명령받았길래…씨발 빨리 열어!”라며 소리쳤다.
영웅 같은 호령에 칭찬이 오르내렸다. 한편, 커뮤니티의 어떤 유저는 “쟤네도 사람인데 격앙된 목소리로 반말하면 열어주겠냐?”고 온도차를 보였다. 그러자 “재들도 사람인데 입갤ㅋㅋ”이라며 조롱성 댓글이 이어졌다.
계엄군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관의 명령과 국회의 실질적 점령 사이를 망설이고 있었다. 커뮤니티의 유저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준석을 가로막은 경찰의 수비병력은 ‘명령에 복종하는 기계’처럼 여기고 있었다.
선택적 휴머니즘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