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때문에, 말 그대로 전국이 난리인 요즘, 행정 타임스케줄로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모두 내년 예산 계획을 짜는데 골몰하는 시기다. 정부 예산 편성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공공성, 효율성, 경제성 등을 내세운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의 행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지난 4월 27일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사태 종식을 선언한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 2017년 37세 나이에 총리 직에 올라 당시 세계 최연소 총리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그녀다. 2019년 12월 핀란드 총리가 된 산나 마린(34세)에게 세계 최연소 타이틀은 물려주고 말았지만, 그녀가 일을 벌일 때마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은 계속 따라다녔다. 그 중에서도 - 그녀가 세계 최초로 저지른(!) 일 중에 - 단연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던 사건이 바로 작년(2019년) 5월 확정, 공개한 행복예산(웰빙예산:wellbeing budget)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과 같은 서구 국가들이 국가의 행복(웰빙)지수를 측정하기 시작했지만, 뉴질랜드는 행복 우선순위를 기준으로 국가 예산 전체를 설계하고, 부처별로 행복 개선 정책을 설계하도록 지시한 최초의 서구 국가”라고 뉴질랜드의 행복예산을 높이 평가했다.
저신다 아던 총리는 “경제 성장도 중요하지만 (성장 위주의 정책은) 삶의 질을 측정하거나, 누가 더 혜택을 받고, 누가 낙오하거나 뒤쳐져 있는 지 고려하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이어 “뉴질랜드는 수년간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으나, 치솟는 자살률, 감당할 수 없는 노숙자의 증가, 부끄러운 가정폭력 및 아동빈곤율을 경험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성장만으로는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행복예산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우린 언제면 이런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까? 우리도 언젠가는 도입되리라는 믿음 속에, 뉴질랜드의 행복예산의 내용과 그 시행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도입한다면 최우선적으로 벤치마킹해야할 국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행복예산은 아래 표처럼 5가지 영역(마지막은 중장기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표1> 2019년 뉴질랜드 행복예산(단위: 뉴질랜드 달러)
위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뉴질랜드 행복예산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과 ‘미래 세대’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을 넘어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고 있다.
이상의 2019년 뉴질랜드 행복예산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하에 수립되었다.
첫째, 부처별 칸막이 예산을 깨고 정부 부처 전체의 협력을 통해 행복을 개선하는 정책을 개발, 구현한다.
둘째, 현 세대의 요구를 충족하면서도 미래 세대에 대한 장기적 영향을 고려하여 예산계획을 수립한다.
셋째, 금융자본 및 자연자본, 인적자본 및 사회자본을 포함, 광범위한 성공척도를 통해 진행 상황을 추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뉴질랜드의 행복예산은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설계, 개발된 방식과 크게 다르다. 먼저 행복예산 우선순위는 협업적이고 ‘증거기반 접근법(evidence-based approach)’에 따라 결정되었다.
<표2> 행복예산 프로세스
지금까지 각 부처(장관)들은 예산 계획을 세울 때 거의 전적으로 자기 부처의 책임 영역에 중점을 두어 편성하였으나, 2019년부터는 자신들의 계획이 어떻게 행복 우선순위를 달성할 수 있는지 보여 주어야 했다. 그런 다음 ‘삶의 질 프레임워크(LSF: Living Standards Framework)’에 따라 예산계획 우선순위를 평가하고, 내각회의는 각 우선 순위 중 행복증진에 가장 도움이 되는 계획을 패키지로 함께 모으는 데 주력했다. 아래 표처럼 실제 예산안의 많은 프로그램들은 새로운 협업 방식의 결과였다.
<표3> 행복 예산 우선순위 협업 증거의 예
둘째로, 뉴질랜드 정부는 처음으로 예산 우선순위 결정에 웰빙 측정 수단을 사용했다. LSF가 그것이다. 미래세대를 위한 장기적 전망과 함께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문화적 고려 사항도 평가한 것이다. 즉 뉴질랜드 정부는 경제적이고 재정적인 전망만 고려한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행복렌즈’를 예산 결정의 근거자료로 삼았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행복예산의 도입과 함께, 이를 계기로 국민행복을 위한 지속적인 혁신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업무 방식에 맞춰 공공 부문과 시스템 개혁에 나섰다.
뉴질랜드 정부는 행복예산제를 지원하기 위한 여러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동빈곤법’은 이미 통과시켰고, ‘공공재정법’을 개정하여 행복을 미래 예산에 초점을 맞추도록 할 계획이다. 이것은 향후 정부가 예산과 재정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재정 목표와 함께 행복 목표를 동시에 설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재무부는 적어도 4년마다 뉴질랜드의 행복지수를 보고하도록 했다. 또한 정부는 ‘공공섹터법(State Sector Act)’을 개혁하여 시민 중심의 서비스가 중심에 놓이도록 공공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뉴질랜드 정부는 정부 전체의 업무 프로그램에 웰빙을 포함시키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했다.
요약하면, 뉴질랜드 정부는 행복예산을 수립함에 있어 △과학적 준거틀(LSF) 개발 및 적용 △부처 간 협업을 통합 행복예산 편성의 효율성 추구 △국민행복을 장기적, 지속적 과제로 추진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의 종합적 실천전략을 마련한 것이다.
이 중, 행복예산 계획수립의 가장 중요한 명분과 기본 근거를 제공한 것이 LSF다.
삶의 질 프레임워크(LSF)
앞서 말한 대로 뉴질랜드 정부는 행복 예산 수립의 타당성 근거로 삼기 위해 재무부에 강력한 준거틀을 만들 것을 요구하였고, 이에 따라 재무부는 ‘삶의 질 프레임워크(LSF;Living Standards Framework)’를 개발한다(직역하면 ‘삶의 표준’이 되겠지만, 국내에서는 관련 분야에서 ‘삶의 질’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이렇게 표현한다).
LSF는 행복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소의 정책 영향과 장기적 전망까지 고려한 유연한 프레임 워크다. 여기에는 다음을 포함한다. 첫째, 현재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12가지 영역, 둘째, 현재와 미래의 웰빙을 지원하는 4개의 자본이 그것이다(아래 표4,5).
눈여겨 볼 것은 뉴질랜드는 행복예산의 결정 근거로 현재의 행복지표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고려한 프레임워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국내에서도 행복예산 도입 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표4> 재무부의 삶의 질 프레임워크(LSF;Living Standards Framework)
<표5> 재무부 LSF 대시보드의 행복 지표
재무부는 기 개발된 이 LSF를 2021년에 갱신하여 마오리족 등 원주민의 세계관을 더 잘 반영하고, 아동 행복에 중요하며, 문화가 복지에 기여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반영한 틀을 개발할 계획이다. LSF를 고정된 틀로 두지 않고 계속 변화발전 시켜 나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 재무부는 LSF가 기존 예산계획 과정에 사용했던 기존의 분석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보완재’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LSF 자체를 사용하려면 경제성과 경험적 능력에 대한 정교한 이해가 필요하며, LSF는 정부에 보다 포괄적인 경제 정책을 조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말이다.
한국에 행복예산제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기재부 공직자들의 생각도 이와 같기를....
※ 참조
https://treasury.govt.nz/publications/wellbeing-budget/wellbeing-budget-2019-html#section-1